요즘 나이는 예전에 비해 더 젊게 본다고 한다. 지금나이에 곱하기 0.8을 하면 된다나. 즉, 예순이면 마흔 여덟살이라는 얘기다. 물론 마흔 여덟도 아주 젊은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말이지 요즘 환갑은 장수를 축하하며 잔치를 할만큼의 나이는 아닌게 확실하다. 우리 엄마 아빠를 봐도 그렇다.
마흔이나 쉰이 넘은 배우들이 그보다 열살도 더 어린 역할을 맡거나 성인 배우들이 고등학생 역할을 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일반인들에 비해 관리를 더 잘 한 덕도 있겠지만, 생활 패턴 자체가 예전과는 사뭇 다른 것이 주요할 것이다. 피부나 모발, 체형 관리기술도 발전하고 의학도 발전해서 웬만해서는 잘 아프지도 않고 금새 고치기도 한다.
어제는 이번에 정년을 하시는 선생님의 감사 플랜카드 아래서 우리과 선생님들이 함께 웃으며 찍은 기념사진이 SNS에 올라왔다. 우리 엄마아빠 나이의 선생님의 인자한 미소뒤에 보이는 소년같은 반짝임이 정년이라는 단어와는 왠지 어울리지 않았다. 아마 정년을 하시고도 글을 쓰시거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즐거운 꺼리를 계속해서 해주실거라 믿는다.
문득, 어느 대학 총장을 지내시다가 정년하신 분이 남긴 글이 생각난다. 정년을 하고 나서 20년을 더 살 줄 알았다면 이렇게 보내지 않았을 거라는 반성이 담긴 글이었다. 또 미국의 전쟁시기에 태어나 경제공황을 거치고 자식을 다 키워낸 후에야 공부해서 하버드에 입학한 노인은 그 후 25년 동안 하버드인이라는 자부심으로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공부가 하고싶어서 무작정 입시학원에 다니다가 한의대에 합격한 분의 이야기도 있다.(그 분은 젊은 친구에게 양보하겠다며 입학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십대 초반에 유럽 배낭여행에서 만났던 폭스바겐 퇴직자는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면서 나와 동생에게 쾰른 성당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며 자신의 무료 통행권을 양보해주기도 했다.
지금의 시대는 일과 놀이의 경계가 모호하고 공간과 시간이 가변적이며 지식과 정보의 변화가 점차 커지면서 우리 삶의 속도와 밀도는 분명히 예전과 달라졌다. 청년들은 취업준비 등으로 대학졸업을 자진유예해가면서 1,2년 더 다니고 대학원이나 인턴이나 자격증, 고시 생활 등을 거쳐 서른이 가까워서야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늘어난 수명만큼이나 살아가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지고 그만큼의 시간도 도미노처럼 연기가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예전의 약관은 약관이 아니고, 예전의 불혹이나 지천명은 1,2십년 뒤로 밀려나게 된 것 같다.
어쨌거나 마흔 넘은 나도 곱하기 0.8을 하면 서른초반이었던 거다. 어쩐지 고등학생때 엄마아빠 생각하면 지금의 나는 좀 철이 없다 싶더라니.
시간이 엿가락처럼 늘어난줄도 모르고 그 안에서 아둥바둥 살뻔 했다. 시간은 그만큼 벌어졌고 그 안에서 차분하게 자기 일을 정리하고 해나가면 될 일이다. 그러다가 아차싶은 건 앞으로 남겨진 50년을 어떻게 살것인지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졸업논문부터 마무리하고. 쫌
비로소 소장 장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