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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효진 Mar 21. 2024

쨍하고 해 뜰 날.

인생 미용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5화)

 

 비에 젖은 땅에 바퀴 감기는 소리가 유난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성태는 매일 술에 절어 진상짓이나 안 하면 감사한 손님들의 차를 운전해 왔었다. 오늘의 첫 콜은 평소와는 달랐다. 둘만의 공간에서 오는 정적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엄숙했다. 술에 취하기는커녕, 술냄새도 전혀 나지 않았다.


 '이상하네, 술냄새가 안 나네?'

룸미러로 눈동자를 슬쩍 올리며 남자를 확인하던 성태는 그의 용모에 눈이 갔다. 많아봤자 50대 중반..? 적당한 숱에 깔끔히 쓸어 넘긴 머리, 정돈된 눈썹, 빳빳한 셔츠 깃. 특히 소매 끝에 잠깐씩 반짝이는 저것은 성태가 복권에 당첨되면 무조건 손목에 장착하리라 다짐했던 시계였다.


  '와 씨, 미쳤다 진짜...'


끼이익-

고개가 점점 룸미러 쪽으로 향하던 성태는 주황불로 바뀐 사거리 신호에 깜짝 놀라 브레이크를 밟았다.


 "아! 죄송합니다!"

덜컹이는 차에 소스라치게 놀라 반사적으로 쳐다본 시선 끝에는 평온하게 무표정으로 일관한 그가 눈을 감고 있었다.

 "앞에 보셔야죠."

 "아! 네네!"

점잖은 행동과 차분한 말투, 이것이 바로 부자구나를 새롭게 느끼는 성태였다.




도착한 곳은 전용 주차장이 있는 커다란 단독 주택이었다. 조심스레 주차를 한 뒤 내린 성태에게 그는 지금 막 발권한 듯한 신권 두장을 건네며 뜻밖의 얘기를 꺼냈다.


 "혹시 낮에도 해요?"

 "네..? 어떤 걸.."

당황한 성태의 대답에 미세하게 황당한 표정으로 바뀐 남자가 말을 이었다.

 "뭐겠어요. 대리죠. 오래 맡아주시던 기사님이 계시는데, 일이 있어서요. 운전 스타일도 비슷하고 젊으셔서 아플 일도 없을 거 같고. 뭐, 빤히 쳐다보는 것만 빼면 좋네요. 어때요?"


거울로 훔쳐본 걸 들켰다는 사실에 부끄러워할 새도 없이, 남자의 마지막 말이 심금을 울렸다. 그가 지금 하는 얘기는 더 이상 대리운전이 아니었다.

 "취... 직 인가요?"


 "하하하. 일단은 그렇네요. 생각 있으면 내일 아침 8시까지 여기로 와요. 자세한 건 내일 다시 얘기하죠."

놀란 토끼눈의 상대가 귀여운지 호탕하게 웃고는 성태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대문 안으로 사라졌다.


성태는 철컹 소리를 내며 잠기는 높다란 대문을 바라보며 벙찔 수밖에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던 그때, 조금 전 루나에게 한 자신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아! 포르투나라 했나요!!.. 행운의 여신? 그 여신이 진짜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하하"]


 그렇다. 이건 분명, 운명의 수레바퀴가 밑바닥에서 기고 있는 나를 끌어올리는 게 틀림없었다.




 어제 만난 부자 아저씨는 성태 인생의 마지막 콜이 되었다. 원하던 회사는 아니었지만, 취직이 되었다는 사실은 들뜨기에 충분했다. 성태는 가진 옷 중 가장 좋은 면접 정장으로 골라 입고, 대충 던져 놓은 미용실 명함을 내리쬐는 햇빛 앞으로 높이 들었다.


 '이상해 이상해, 진짜 바퀴가 구르고 있어. 오늘부터 다시 복권 좀 사야겠는데?'

 

성태는 구두소리를 비트 삼아 콧노래를 부르며 병원으로 향했다. 젖었던 땅은 개운하게 말라있었다.

 "김 씨 아저씨! 좋은 아침이에요."

청소 카트를 끌던 김 씨 아저씨는 번듯해진 성태의 모습에 환하게 웃었다.

 "봐라 깔끔하니까 얼마나 보기 좋아~ 최 씨는 잘생긴 아들 얼굴도 못 보고.. 아이고 아침부터 별소리를 다하네. 속상해서 그려~ 얼른 올라가 봐!"


다소 쓸데없는 말로 성태의 마음 한편을 건드렸지만, 오늘은 괜찮았다. 얼른 취직 소식을 아빠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드르륵-


 '맛있게 아침 드시겠지?’라는 기대와 달리 식판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누워있는 중호의 모습이 보였다.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아빠를 기쁘게 해 줄 무기가 있었기에 성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빠, 나왔어. 왜 밥도 안 먹고 있어! 아침 재활 가려면 든든히 먹어야지!"

중호는 미동이 없었다. 성태는 중호의 손을 잡고 자신의 머리, 어깨 순서로 내려가며 말을 이었다.


 "머리 어때, 깔끔하지? 옷도 정장이야. 오늘은 내가 봐도 좀 멋있는 거 같아?"

 "피식-"

성태의 능청스러운 장난에 중호는 그제야 웃음을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웬일이야~ 멋있네 우리 아들."

천천히 더듬어 아들의 몸을 만지던 중호의 눈가에 금세 물이 맺혔다. 아빠의 모습에 목이 메어오는 성태였지만, 호흡을 가다듬고 소식을 전했다.


 "나 취직했어! 오늘 첫 출근. 내가 운전에 소질이 있나 봐, 돈 엄청 많은 회장님 같은 분이 운전기사를 부탁하더라고? 돈도 많이 줄 거 같아서 해보려고. 이제 힘들게 이일 저일 안 해도 되니까, 아빠도 내 걱정 말고 몸 좀 챙겨..!"


가만히 듣던 중호의 표정이 성태의 말에 따라 시시각각 변했다. 분명한 건, 마냥 기쁘지만은 않아 보였다.

 "그래, 몸 조심하고. 이제 밥 먹어야 되니까 얼른 가.“

들떠있는 성태가 아빠의 그 세심한 표정을 알아챌 리 없었다.




 밝은 곳에서 마주한 대저택은 실로 대단했다. 대문 앞을 서성이니 철컹하는 소리와 함께 틈이 생겼고, 사이로는 매끈한 잔디와 푸른 나무들이 장관을 이뤘다. 작은 틈 사이로 성태의 공간과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들어오세요."

작은 인터폰에서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울렸다. 성태는 설렘반 긴장반의 마음으로 싱긋 미소를 띠며, 작은 틈을 점점 넓히고 발을 내디뎠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집안에는 어제 본 남자가 소파에 앉아있었다. 그 옆으로는 아내로 보이는 꽤나 아름다운 중년의 여성이 과일을 깎고, 성태를 맞이한 사람은 앞치마 차림의 아줌마였다. 그녀는 남자의 곁으로 성태를 안내했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무슨 호칭을 해야 할지 망설이던 성태는 사장님이라는 담백한 호칭으로 씩씩하게 인사를 했다. 그는 명함 한 장을 건네며 말했다.

 "할 일은 크게 없을 거예요. 동선에 맞춰 움직여주기만 하면 돼요. 출근은 평일 오전 8시, 퇴근은 스케줄에 따라. 주말에도 스케줄 생기면 같이 움직여줘야 하는데 괜찮죠? 급여는 세후 500 생각해요."


그의 어투는 점잖지만, 어딘가 모르게 강압적이었다. 명함에는 대표이사라는 직책이 적혀있었고, 묘하게 그의 행동이 설득되는 성태였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500이라니, 사회 초년생인 성태에게 말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와..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

꿈을 꾸는 듯 황홀함에 빠져 굽신거리는 성태의 뒤로, 잔잔한 발소리와 톡 쏘는 앳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이번에는 또 어디서 데려온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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