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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효진 Mar 14. 2024

#4 쌍알의 행운

인생 미용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4화)


 사실 하루의 시작부터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웬일로 일찍 일어나 챙기지 않던 아침을 먹고, 하필 여러 개의 계란 중 쌍알을 집어 들었다. 그 후 생각지도 못했던 합의와, 눈앞에 펼쳐진 아빠의 움직임.. 역시 쌍알의 행운이었을까?




 중호가 깨어난 건 기적이었다. 


의사가 말하길 중호처럼 6개월 이상 코마가 지속된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는 결과는 회복부터 죽음까지, 또는 식물인간으로의 삶이라고 한다. 현재 그의 상태는 몸 곳곳에 경직이 있기는 해도, 재활로 충분할 거라는 답변을 주었다. 다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동공이 빛에 반응하지 않았다. 후두엽은 시각적으로 물체를 구분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곳인데, 외상으로 심한 충격을 받아 시각피질이 손상되었다고 한다.


진료실에서 나온 성태의 표정은 복잡 미묘했다. 아빠가 깨어나 기쁘다가도, 평생 앞을 볼 수 없다는 현실에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드르륵-


 "서..ㅇ 태..?"

아직 온전하지 않은 중호가 어눌한 말로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얼마 만에 듣는 아빠의 목소리인지, 성태는 목이 메었지만 애써 가다듬었다.


 "응.. 나야! 컨디션은 좀 어때?"

곁으로 다가서니, 보이지 않는 두 눈을 깜빡이는 그의 모양새에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26살의 지금까지 자신의 기억 속에서 이렇게 약한 모습의 아빠를 본 적 없는 성태였다.


 "좀 쉬면서 하지.. 왜 그렇게 무리를 했어..! 혹시라도 아빠 잘못됐으면 나는 어떡하라고!! 사람들은 쑥덕대고, 피해자는 둘이나 되지, 합의도 해야 하는데 날 사람 취급도 안 해!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알아?"

 

성태는 마치 어린아이로 돌아간 듯, 아빠의 옷자락을 붙들고 울분을 토해냈다. 중호는 아들의 어깨를 토닥여주지도, 따뜻하게 바라봐 주지도 못하고 그저 미안하단 말을 되뇌었다.




 중호가 깨어난 지 어언 두 달. 그는 다행히 합의를 받아, 벌금형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이러나저러나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일 평생 아들을 위해 모아둔 돈, 그 아들이 밤낮 편의점과 대리로 힘들게 번 돈을 벌금과 합의금으로 순식간에 떠나보냈기 때문이었다. 주머니에 한 푼도 남지 않자 중호는 허망함이 미친 듯이 몰려왔다. 비록 자신이 잘못한 일이지만, 여태 정말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앞으로 아들에게 병원비를 축내며 짐만 되어야 한다는 처지가 괴롭고 또 괴로웠다.

 

 성태는 그런 아빠의 모습에 더 밝게, 더 열심히 지낼 수밖에 없었다. 나를 위해 살았던 아빠이기에, 이제는 내가 당신을 위해 살아야 했다. 여전히 돈에 허덕이고 심지어 부정 가득한 아빠의 기분까지 달래줘야 했지만, 혼자가 아닌 사실만으로 큰 위안이었다.




 "밖에 비 많이 온다. 오늘 재활은 너무 무리하지 말고, 저녁에도 잠깐 들를게"

성태는 편의점에 가기 전 아빠와 인사를 하고, 대리운전을 뛰기 전 아빠를 확인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게 일상이 되어버린 매일은 조금 부지런한 사람이 된 느낌일 뿐, 크게 힘들지 않았다.

 

 "아빠는 든든하겄어 아들이 허구한 날 오고~ 내일은 깔끔하게 좀 와~ 머리가 잘생긴 얼굴 다 가리네!"

알록달록 질척이는 낙엽들을 쓸던 청소부 김 씨 아저씨는 매일같이 성태에게 인사를 했다. 처음엔 자꾸 말을 걸어오는 그가 귀찮았지만, 아빠와 비슷한 연배로 보여서인지 성태는 어느새 의지를 하고 있었다.


 "알겠어요~ 아휴 고생이 많으세요. 혹시 복도에서 저희 아빠 보이면 병실로 좀 부탁드려요 아저씨."

입꼬리를 주욱 내리며 말하는 성태에게 김 씨 아저씨는 어깨를 토닥이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아침부터 요란하게 내리는 비 덕분인지, 편의점 문이 열리는 횟수는 현저히 적었다. 오랜만의 휴식이었다.


 '흠.. 머리가 길긴 하네..'

머리카락을 늘어뜨려 코에 닿는 걸 확인한 성태는 루나를 떠올렸다. 그곳에 다녀온 후, 신기할 만큼 일이 잘 풀려 한번쯤은 더 가야 한다 마음먹었었는데.. 그게 바로 오늘이었다.


 "갈게~"

야간 조와 교대를 마친 성태는 잠시 아빠에게 들러 주무시는 걸 확인하고, 미용실을 찾아 나섰다.


 '국밥집에서 나와서.. 조금 걸었던 거 같은데, 이쪽인가? 저쪽? 헷갈리네.'

 "아! 죄송합니다!"

한참을 헤매던 성태는 한 남자와 어깨를 부딪치고,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며 사과를 했다.


 '뭐야..?'

그곳엔 성태가 안중에 없는 듯, 우산도 쓰지 않은 채 흠뻑 젖은 중년의 남자가 허름한 차림으로 연신 손톱을 깨물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대체 어디 간 거야. 대체. 왜 안 보이지. 어디 갔지. 나는 어떡하라고. 찾아야 돼! 어디 간 거야."


 '.. 비가 와서 미친 거야..?'

소름이 쫙 끼친 성태는 발걸음을 재촉했고, 때마침 깜빡이는 간판이 보였다. 분명 조금 전에 지나갔을 때는 안 보였던 간판이 눈앞에 나타나 어안이 벙벙했지만, 비가 많이 내려 못 봤겠지 생각하며 문을 열었다.




긴 복도를 걷고 있자니, 어렴풋한 기억들이 하나하나 선명해졌다.

 '저 끝에 서있었는데... 어?'

길 끝에서 본 그녀를 떠올릴 때쯤, 씩 웃고 있는 루나가 보였다.

 "또 오셨네요."

성태는 멋쩍게 인사를 하고 그녀를 따라 이동했다. 미용실에는 또다시 그녀와 둘 뿐이었다. 대체 운영은 되는 건지 의아했지만, 남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저번처럼 잘라주세요."

지난번과 같은 의자에 앉은 성태는 루나와 나눈 대화가 스쳐 지나갔다. 그녀도 마찬가지인지, 성태에게 아빠의 안부를 물었다.


 "아버지는 어떠세요?"

 "깨어나셨어요! 머리 자른 다음날 바로.. 합의도 잘 되고 아빠도 회복하시고.."

그녀는 마치 자신의 일인 듯 환하게 웃어 보였다.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성태는 그날 아침에 일찍 눈이 떠진 것부터 시작해서 쌍알을 보게 된 일, 피해자로부터 전화가 온 일, 아빠가 손을 움직인 일까지 말을 늘어놓았다.


 "아! 그러고 보니 쌍알을 보면 행운이 온다던데, 아무래도 그 말이 진짜인가 봐요."

성태의 마지막 말에 정적이 흐르고, 그녀의 표정이 무서우리만치 변했다. 당황한 그는 혹여나 무슨 실수를 했나 싶어 눈치를 보다가 자연스레 벽에 걸린 그림에 시선이 갔다. 잠시 잊고 있었다. 그녀는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의 광팬이었다.


 "아! 포르투나라 했나요!!.. 행운의 여신? 그 여신이 진짜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하하"

그림으로 주제를 바꾸니 그녀는 금세 활짝 웃어 보였다. 역시 광적일 정도로 좋아하는 게 틀림없었다.


 "이제는 행복해요?"

루나는 웃음을 멈추고서 궁금하다는 듯 성태의 대답을 기다렸다.

 "행복.. 이요? 글쎄요.. 처지가 나아지진 않아서.. 아빠가 회복은 하셨는데 실명이 되셔서 많이 불안정하세요. 제가 빨리 취업을 해서 돈을 좀 안정적으로 벌어야 걱정을 안 하실 텐데."

 

재밌지도 않은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던 루나는 가위질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요? 음.. 그렇구나.. 그럼 취업도 얼른 하셔야겠네요! 머리도 예쁘게 잘라드려야겠다!"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커트가 끝날 즈음, 성태의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5분 정도 거리의 일식당에서 걸려온 콜이었다.

 "선생님! 그냥 대충 말려만 주세요 저 얼른 가봐야 해서요!"


다급히 나온 밖은 비가 그쳐있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온 콜에 성태는 걸음을 빨리했다. 식당 앞에는 고급스러운 차들이 줄지어 주차되어 있었고, 성태의 곁으로 한눈에 봐도 비싸 보이는 옷과 장신구를 걸친 남자가 다가왔다.


 "대리 기사님이신가요?"

그 중년의 남자는 성태를 흘긋 쳐다보고 그중 가장 좋아 보이는 자동차 뒷자리에 올랐다. 성태는 처음 타보는 비싼 차에 잠시 주눅이 들었지만, 이내 운전석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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