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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효진 Mar 07. 2024

#3 눈먼 행운의 여신

인생 미용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3화)


 예명일지 모를 그녀의 이름은 루나였다. 루나는 성태를 여느 미용실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공간으로 안내했고, 혼자서 운영하는 듯 매장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성태는 잔잔히 들려오기 시작하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술집을 찾던 자신이 왜 이곳에 들어오게 됐는지도 잊은 채 편안해졌다.


 "원하는 스타일 있으신가요?"

 "아, 네 뭐 그냥.. 다듬어 주세요."

그는 대충 대답을 얼버무리고 거울 속에 비친 루나를 살폈다. 검은색은 아니지만 잘 보일까 싶은 컬러 안경에 유난히 하얀 피부, 의중을 알 수 없게 짓고 있는 저 미소까지. 왜인지 자꾸만 힐끔이게 되는 외모였다. 루나를 한참 살피고 있자니, 그녀의 뒤로 한 점의 그림이 눈에 띄었다.

 그림에는 눈을 가리고 서있는 여자를 중심으로 둥근 바퀴가 있고, 그 주변으로 제각기 다른 모습의 사람들이 그려져 있었다. 권위 있게 앉아 있는 사람, 고꾸라지는 사람, 네발로 깔려 있는 사람, 오르는 듯 위를 쳐다보는 사람. 마치 타로카드 같기도 하고... 이런 곳에서 볼 법한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에 성태는 의아해졌다. 문득 걸어온 통로를 다시 떠올려보던 그는 확실히 다른 미용실과는 다르다는 판단을 내렸다.


 "저.. 선생님, 뒤에 있는 그림은 뭐예요?"

성태는 간질거리는 입을 참지 못하고 루나에게 물었다.


 "아! 포르투나요?"

 "포르.. 네.?"

루나는 성태의 질문이 반가운 듯 얼굴에 화색이 돌며 말을 이었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운명의 여신이에요! 인간의 물질적 부와 행운을 관장하는데, 한편으로는 눈먼 행운의 여신이라고도 불려요. 전혀 가치가 없는 사람의 운명을 갑자기 최고의 위치로 끌어올리기도 하거든요! 매력적이죠?"


안경을 추켜올리며 줄줄 늘어놓는 루나의 모습은 마치 자신이 포르투나라도 되는 듯 우쭐해 보였다.


 "와 진짜요? 저도 운명 정말 좋아해요! 그런 여신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하.. 최고의 위치로 끌어올려준다니... 간택이라도 당하고 싶은데요? 하하.."

 운명이라... 성태에게도 충분히 반가운 주제였다.

한숨을 쉬던 성태는 헛웃음이 삐져나왔다. 정말 존재한다면 자기 운명을 구걸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래요? 힘든 일 있으세요? 술도 한잔 하신 거 같고.."

미소를 짓고 있던 루나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간택 당해 최고로 올라간 자신을 상상하느라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지 못한 성태는, 든든히 마신 술에 용기가 났는지 처음 본 루나에게 자신의 처지를 조심스레 얘기했다.


 "가족이라고는 아빠 하나뿐인데, 지금 많이 아파요. 교통사고가 났거든요. 아, 아빠가 사고를 내셨어요.. 피해자는 합의해 줄 생각도 없고, 아빠는 다발성 골절에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벌써 6개월째 못 깨어나시네요. 아빠가 정말 잘해주셨는데.. 그래서인지 철 없이 놀기만 했죠 뭐, 하하... 혹여나 잘못돼서 사라진다 생각하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커트보에 넣어둔 손을 꺼내 눈가를 살짝 매만지는 성태였다. 그의 딱한 사정에 측은하게 쳐다보던 루나는 멈췄던 가위질을 시작하며 다시금 원래의 미소를 지었다.  


 "다 좋아질 거예요. 머리 예쁘게 잘라드릴 테니 기운 차리세요."

 ".. 감사해요. 말하고 나니 좋네요."

특별할 것 없는 그녀의 말에 이상하게 위안이 되는 성태였다.


 "그러고 보니 늦은 시간까지 영업하시네요? 제가 시간을 확인도 안 하고 들어와 버려서.."

마무리 드라이를 받던 성태는 핸드폰을 확인하고는 11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 당황한 기색을 비췄다. 그녀는 별일 아니라는 듯 활짝 웃었다.


 "아유, 아니에요.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늘 환영이죠. 궁금하잖아요, 누가 찾아올지?"

고개를 끄덕이던 성태는 그녀의 의미심장한 마지막 말에 갸웃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감사합니다."


 샹들리에가 반짝이는 긴 통로를 함께 걸어 문 앞에 왔을 즈음, 손잡이를 잡던 성태에게 루나는 금색의 명함을 건네며 히죽이 웃었다.

 "제 명함! 조만간 또 봬요."

 "아.. 네네 머리 자를 때 되면 올게요."

 "에이~ 지나가시다가 언제든 오셔도 환영입니다."


매장에서 나와 돌아본 간판은 환한 불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성태는 그대로 한참을 벙쪄있다가 고개를 내젓고 발걸음을 옮겼다.

 '언제든 환영은 무슨.. 역시.. 좀 이상한 미용실이야?'




 날이 밝아오고, 성태는 웬일인지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을 떴다. 술을 마신 다음날의 컨디션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는 상쾌함에 가장 신선해 보이는 계란 하나를 꺼내 아침 준비를 시작했다.


 "오! 쌍알!"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쌍알을 본 게 처음이었던 성태는 복권이라도 맞은 듯 설레었다. 그는 알이 터지진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프라이를 완성시키고, 즉석밥을 뜯어 행복하게 한입을 가득 채웠다. 평소와는 다른 하루에 만족스러운 성태였다.


 출근 준비를 하며 혹시 어제의 일이 꿈이 아닐까 싶었지만, 거울 속 짧아진 머리와 바닥에 벗어놓은 정장 사이로 보이는 명함에 의심을 멈췄다. 다만 조금 이상했다. 금색의 종이인 줄로만 알았던 명함은 이름도 없이, 미용실에서 본 그림만이 한 면 가득 그려져 있었다.


 '뭐야? 이름도 없고.. 하여튼 이 그림 엄청 좋아하시네~'

성태는 다시 갈 일 없다는 듯 명함을 대충 던지고 집을 나섰다.


삐리리리리- 삐리리리리-


 발신자는 상대방 운전자의 아내였다. 성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매번 안부 겸 찾아가는 자신을 문전박대하던 그녀였는데, 어쩐 일인지 먼저 전화를 걸어왔기 때문이다.

 

 "네! 전화를 다 주시고..! 안녕하세요! 몸은 괜찮으시죠?"

 "예 뭐.. 그건 그렇고 저는 죽어도 싫은데, 남편이 합의 문제로 얘기하고 싶다네요."

늘 냉소적인 태도로 자신을 대하던 그녀의 목소리가 한풀 꺾여있었다.

 "와! 정말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몇 시까지 갈까요? 아, 아니에요 지금 바로 갈게요!"

성태는 기쁘면서도, 갑자기 이게 뭔 일인가 싶어 얼떨떨함이 몰려왔다.


병원까지 한달음에 도착한 그는 상대방 운전자와 긴 대화를 나누고,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합의금 마련에 대한 막막함은 여전히 제자리였지만, 할 수 있음에 한결 개운했다.


삐 삐 삐 삐 삐-

 

 소식을 전하려 들어선 병실에는 기계음만이 규칙적으로 흘렀다. 성태는 터벅터벅 걸어가 간이침대에 걸터앉아 아빠의 손을 살며시 잡고 입을 뗐다.


"아빠, 오늘은 좋은 소식이야. 드디어 합의해 주기로 했어.. 우리 상황 이해해 주셔서 금액도 우려했던 정도는 아니더라. 정말 좋은 분이야.. 그렇지?"

성태의 작은 목소리에 침묵이 답을 하던 그때, 잡고 있던 손에선 낯선 움직임이 느껴졌다.


"아.. 빠?"

떨리는 목소리로 중호의 손을 바라본 성태는 벅찬 기분에 끝없이 눈앞이 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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