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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효진 Feb 29. 2024

#2 큰 비가 지나간 자리

인생 미용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2화)


 인간은 행복을 추구한다. 성태도 그랬다. 취업이 보장된다는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별다른 성과 없이 요행만 바라며 살아왔지만, 그 또한 그가 추구하는 행복이었다.



 

'지난밤 전국적으로 천둥 번개를 동반한 큰 비가 내렸습니다. 오전 중에 비는 그쳤지만 내일까지 강한 바람이 예상됩니다. 오늘 아침 영하권으로 기온이 떨어지면서 많이 추웠는데요. 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날씨가 많이 요란스럽습니다. 안전사고에 유의하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김기자였습니다.'


 큰 비가 지나간 자리는 티가 나게 되어있다. 마른 가지에 간신이 붙어있던 나뭇잎들은 사방으로 흩뿌려지고, 길 잃은 쓰레기들은 이리저리 차이기 바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온통 진흙탕이 된 바닥은 바짓가랑이를 적시며 온몸을 묵직이 끌어내린다.


서늘한 바람을 품에 안고 교대가 이루어지던 병원의 아침도 티가 났다.


 "폭우에, 강풍에 난리도 아니네. 어제 택시 환자는 아직이야?"

간호사들 사이에는 졸음운전으로 사고가 있었던 어제의 사건이 화제였다. 그중 한 명의 간호사는 야간 당직을 서며 보고 들은 게 많았던 터라 주 축이 되어 그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네.. 아직이에요. 교수님 얘기 들어보니 예후가 좋을 거 같지는 않다고 하더라고요. 아! 다행히 상대방 운전자는 깨어났어요! 그래도 골반이랑 왼쪽 다리 전체가 골절돼서 심각하긴 한가 봐요."

 "치료가 길어지시겠네. 최성태 님은 어디 계셔?"

 "중환자실 앞에 앉아있다가 좀 아까 나가던데요? 아침에 보험사랑 얘기하는 거 들어보니까 그 사람 백수인가 봐요. 피해자들은 보험처리로 어떻게든 된다 해도, 당장 아빠 수술비에 생활비에.. 아휴 저라면 정신 못 차릴 거 같아요.. 아 맞다 합의금도... 에잇! 아 수간호사님!"


멀찍이 앉아 컴퓨터를 두드리던 수 간호사는 눈치 없이 떠들어대는 그녀의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주의를 주었다.

 "그만 좀 해라. 잘 이겨내시겠지, 이제 일들 하자."


성태의 처지는 이 사람 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며 부탁하지도 않은 위로와 걱정을 받게 되었다.




  '좀 쉬면서 하지.. 왜 제대로 잠도 안 자고 운전을 해서 이 지경을 만들어..'

퉁퉁 부어버린 눈을 지그시 감을 때면 착잡한 기분이 성태의 온몸을 휘감았다. 비바람에 질퍽하고, 신발은 점점 묵직해지는 게 마치 운명이라는 신이 자신을 끝없이 끌어내리려는 것 같았다.


 "저.. 병문안 가려는데요.."

 "안녕하세요~ 이 앞 소망병원으로 가세요?"

 "네.."

 "병원 규정상 생화가 병실에 반입이 안 돼요. 알레르기 반응 일어날 수도 있다 뭐 그런 이유로? 저희는 생화랑 유사하게 만든 조화 많이 추천드리고 있는데…"

꽃집 사장은 익숙하다는 듯 주절주절 늘어놓으며, 한눈에 봐도 비싸 보이는 조화를 건넸다.

 "현금가로 작은 건 3만 원, 큰 건 5만 원!"


성태는 피해자에게 합의를 받아야 했다. 평소 꽃이라고는 장미 한 송이도 사 본 적 없는 그였지만, 피해자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면 돈이 대수냐는 생각으로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허나 그의 손에 잡힌 건, 달랑 만 원짜리 지폐 한 장과 꼬깃꼬깃하게 구겨진 어젯밤의 복권 종이뿐이었다.

 

 "저 현금이 조금 모자라서요.. 다음에 다시 올게요.."

 "이 앞에 ATM기계 있어서 금방 다녀오면 될 텐데?"

 "아.. 아니에요 다음에 올게요."


주머니의 깊은 사정을 알 리 없는 사장은 성태가 떠난 자리를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에잉 쯧쯧.. 안 살 거면 더럽히지나 말든가, 바닥이 온통 진흙 투성이네 투성이야!!"


이번엔 작은 슈퍼 앞에 다다른 성태가 괜한 신경질에 흙 묻은 발을 탁탁 구르며 문을 당겼다.

 "아이고 놀래라! 안녕하세요."

놀란 아주머니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먼지 묻은 음료세트를 옷에 닦아 계산대에 올리는 성태였다.




똑똑-


 ".. 안녕하세요. 최중호 씨 아들 최성태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여기.."


피해자의 아내로 보이는 여자는 잠에 든 남편의 몸을 닦아주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성태의 낯짝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내 손으로 시선이 향했다.


 "과일 한 바구니를 사 와도 모자랄 판에... 됐어요, 합의 안 합니다."

마찬가지로 퉁퉁 부은 눈을 한 그녀는 성태를 흘기며 중얼거리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정말 죄송해요.. 아빠가 아직 깨어나지를 못하고 계셔서 대신해서 먼저 사과드릴게요.."

눈치를 보던 성태는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넙죽 허리를 접었다. 아침에 보험사가 한 말이 끊임없이 성태를 괴롭히고 있었다. 


 '중앙선 침범은 12대 중과실에 해당돼서 보험이나 합의 관계없이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어요... 안타깝게도 현재로서는 상대측에서 합의 의사가 전혀 없네요. 그나마 합의를 받아야 피해자가 용서했다고 받아들여져서 감형이 될 텐데.. 휴 저희도 노력은 해볼게요.'

 

그녀는 성태의 간절한 마음을 알고 싶지도 않은 듯 요지부동이었다. 성태는 아버지가 어서 깨어나 혼자인 자신과 함께 지금 이 상황을 헤쳐나가 주길 원했다. 


 신이 있다면, 바라건대 자신에게 행운을 부어주기를...




 무심하게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아무것도 해결된 건 없었지만, 성태의 모습은 꽤 변해있었다. 낮에는 편의점에서 일을 하며 틈틈이 취업공부를 하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며 돈을 모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돈과 별개로 혼자라는 외로움도 자꾸만 덮쳐왔다.


 하루는 우연찮게 지인의 소개로 면접을 보게 된 날이었다. 결과는 안 봐도 처참했다. 상기된 표정만 봐도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는, 자존감이 낮아 보인단 말을 면접관에게 직접 듣고 말았다. 자괴감에 빠져있을 무렵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삐리리리리-


 "어 왜, 나 바빠."

 "바쁘긴! 오늘 면접 봤잖아~ 고생했어. 넘어와 술 사줄게."

아빠의 사고 소식을 함께 들은 재민은 툭하면 성태에게 전화해 술을 사주겠다고 했다. 그 만의 위로인 걸 모를 리 없었지만, 괜한 자존심에 비꼬기 일쑤였다.


 "됐어, 내가 너처럼 편하게 술 마실 시간이 어디 있냐."

 "그러지 말고 얼른 넘어와 우리 맨날 가는 국밥집이야."

재민은 그런 성태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 위치를 알리고 전화를 끊었다.


 "아이씨.. 또 이러네."

지난번 성태에게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더니, 혼자 술에 만취해서 식당 아주머니에게 전화가 온 일이 있었다. 그때의 악몽을 떠올리던 성태는 한숨을 내쉬며 재민에게로 발걸음을 돌렸다.


 "힘내라!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다!"

술이 한껏 오른 재민은 비워진 성태의 잔에 술을 가득 따라주며 눈을 끔뻑였다.

 "그래~ 네 말이 정답이다! 고맙다 친구야!"

어느새 그들의 옆에는 네다섯 개의 빈 병이 나뒹굴고, 성태는 마지막잔이 넘칠세라 허겁지겁 입을 가져다 대고 단숨에 넘겨버렸다.


 "다음에도 전화하면 오늘처럼 바로 뛰어나와라!"

 "알겠다니까~ 그 말만 몇 번째야! 얼른 가 잘 먹었다."

성태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재민의 주정에 '이제는 쟤도 늙었구나' 생각을 하며 피식 웃는다.


하지만 여유도 잠시 뿐이었다. 

주위의 화려한 술집 조명 아래 삼삼오오 즐비하게 늘어진 사람들이 자신과는 달리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기 때문이다. 또다시 스스로의 바닥을 알아채기 전, 술로 이 찌질한 마음을 씻어 내리고 싶었다. 공허함도 불청객이었다. 


 성태는 또 다른 술집을 찾으려 거리를 비틀댄다. 풀어진 넥타이가 어깨 위로 간신히 걸쳐져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게 두리번거리며 걷던 그는, 마치 자신처럼 희미하게 깜빡이는 낡은 간판에 시선을 멈췄다. 


[인생 미용실]


 "하.. 인생 미용실? 거지 같은 내 인생이나 좀 어떻게 해줘라!"

성태는 애꿎은 머리카락을 신경질적으로 쓸어 넘기며 소리쳤다. 순간 왁자지껄 하던 주변이 수상하리만치 고요해지고, 간판은 빠르게 깜빡이며 환한 불빛을 뿜어냈다. 그는 홀린 듯 빤히 쳐다보고는 손잡이를 천천히 잡아당겼다.

 낡은 간판에 가려진 문 안의 공간은 성태의 두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어둡고 긴 복도에는 빛 한 줌 들어오지 않았고, 휘황찬란한 샹들리에 조명만이 값비싸 보이는 액자들을 비추고 있었다.


"저기요.. 계세요..?"

벽을 타고 울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길 끝에 닿았을 즈음, 난데없이 칠흑 같은 긴 생머리를 올려 묶은 여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컬러안경 뒤 어스름히 보이는 눈동자로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성태는 깜짝 놀라 눈을 비비며 바라보고, 그녀 또한 성태와 눈을 맞추며 씩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인생 미용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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