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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효진 Feb 22. 2024

요행을 바라는 자.

인생 미용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1화)


 25. 5. 7. 15. 16. 35  보너스 당첨 번호는...--


 삐리리리리- 삐리리리리-


 토요일 저녁, 옥탑방을 적시던 빗방울이 거세게 내리쳤다. 창을 두드리는 비바람과 당첨 번호를 놓칠세라 크게 틀어놓은 티브이 소리는 핸드폰 벨을 몇 번이고 집어삼켰다.


 "하..!! 어떻게 숫자 한 개가 안 맞냐!"

성태는 두 손 모아 쥐고 있던 복권 종이를 힘껏 구겨 바닥으로 내동댕이 쳤다. 허탈한 성태의 표정에 장난기가 발동한 친구는 구겨진 종이를 다시 펼쳐 그의 손에 살포시 올려주었다.

 

 "복권 살 돈 모아서 저한테 술이나 사세요~"

 "좀 기다려봐, 당첨만 되면 거하게 산다니까!"

매번 대박 나면 뭔들 못해주겠냐는 식의 말을 밥 먹듯이 해대는 성태였다. 친구는 그런 그가 못마땅했다.


 "네네 응원하겠습니다~ 근데 넌 취업 준비도 안 하고 맨날 복권만 맞추고 있으면 아빠가 뭐라 안 하시냐?"

 "그럼! 누구 아빠랑은 다르지~ 야, 일단 나가자. 배고파죽겠다. “

당첨이라는 행복한 꿈이 깨져버린 성태는 친구의 뼈 있는 농담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밥 먹으러 나갈 생각에 핸드폰을 챙겨 운동화에 발을 구겨 넣었다.


삐리리리리- 삐리리리리-


그때, 또 한 번 벨소리가 울렸다. 핸드폰 화면에는 아빠라는 두 글자가 적혀있었다. 성태는 친구를 흘긋 쳐다보고는 방금 전 자신의 대답에 뒷받침하듯 큰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어, 아빠! 아~ 오늘도 망했어! 아니, 복권번호가~"


하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아빠가 아닌 다급해 보이는 여자였다.

 "소망 병원 응급실입니다!! 아버님 성함이 최중호 님 맞으시죠?"

 "네??? 병원이요? 네.. 아빠 맞아요. 아빠가 왜요?"

 "아버님께서 교통사고로 실려오셨어요. 전화를 왜 이제야..! 후.. 일단 피를 많이 흘리셔서 바로 수술에 들어가야 하는데, 보호자 동의가 필요해요! 동의 먼저 해 주시면..."

그녀의 말은 총알처럼 빠르게 날아와 머리를 헤집어놓았다.


 "하.. 할게요!! 해주세요, 해주세요.."

다리에 힘이 풀린 그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최중호. 성태의 엄마가 일찍이 돌아가신 탓에 하나뿐인 가족이다. 엄마의 빈자리를 느낄 수 없을 만큼 정성과 사랑으로 자신을 보살폈고, 밤낮으로 택시 운전을 하며 생계를 지켰다. 지금 성태에게 그 사랑과 생계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머리를 부여잡고 넋이 나간 성태를 지켜보던 친구는 다급히 그의 신발을 고쳐 신겼다.




 "최중호 보호자입니다! 수술실이 어디죠?"

 "아 네네 잠시만요. 일단 서류 작성해 주시면 안내해 드릴게요."


간호사가 건넨 서류들은 수술 동의서와 입원에 관한 내용이었다. 아빠의 생사를 확인도 못한 채, 돈에 대한 압박이 종이 몇 장으로 들이쳤다. 무거운 마음으로 마지막 서명을 할 때쯤, 네모난 공무원증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경찰이었다.


 "최성태 님?"

 "아 네.. 제가 최성태인데요?"

공무원증을 빤히 쳐다보던 성태는 고개를 들어 경찰과 눈을 맞췄다.


눈물자국이 선하게 남은 성태의 모습에 경찰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아버님 사고로 몇 가지 말씀드릴 게 있는데, 지금 상황이 좀... 손님 태우고 운전하시다가 졸음운전으로 중앙선을 넘으셨어요."  

 "네!? 졸음이요? 그럼.. 가해자인 건가요..?"

 "그러네요, 반대편에서 오는 차랑 부딪쳤어요. 다행히 택시에 타고 계시던 손님은 찰과상 정도인데 반대편 차량 운전자가 아직 의식이 없어요."


성태는 믿을 수 없었다. 아빠의 사고도 날벼락인데, 가해자라니..

 "하.. 그럼 어떻게 되는 거죠..? 아니 졸음운전은 확실해요?"

 "손님이 아버님 눈 감기는 거 보고 몇 번이나 깜짝 놀라서 얘기했다고 진술했고, 블랙박스에도 녹음이 되어 있네요.."


 사고 전말을 듣는 순간, 더 이상 사랑의 아빠는 안중에 없었다. 세상사, 신과 더불어 운명에 지배된다고 믿으며 살던 성태였는데... 가혹하게도 운명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치료비 보상은 언제쯤 되냐며 벌써부터 난리 치는 택시 피해자와 의식 없는 반대편 운전자, 이런 까마득한 상황을 알지도 못하고 수술 중인 아빠까지.


그에게는 처절히 '돈'이라는 생계가 남겨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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