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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효진 Sep 05. 2024

환생.


 '환생.' 還 돌아올 환, 生 날 생. 되살아 남. 육체는 소멸하지만 영혼은 불멸하며, 죽은 후 영혼이 다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게 된다는 사상.

 

내게 있어 환생이란 단어는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에나 있을법한 허구일 뿐이었다. 옥상 난간에 올라 밑으로 몸을 던지는 그 순간까지 절대, 단연코 꿈꿔 본 적 없었다. 심지어 질긴 목숨을 겨우 끊은 내가, 대체 여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곳은 환생을 도와주는 공간입니다.'


희망이 돋아날 것만 같은 푸른 초원에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여 그 끝을 알 수 없는 곳이었다. 하늘은 온통 검푸른색의 소용돌이가 소름 끼치도록 잔잔하게 돌아가고, 그 안에서의 나는 처참했다.


두개골이 조각나 피를 흠뻑 뒤집어쓴 얼굴, 꺾인 사지와 뒤틀린 골반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나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죽으면 그저 사라지거나,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올 줄 알았건만.. 미디어로 접한 좀비가 따로 없었다. 이 처참한 모습은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거울에 실시간으로 비쳤다.


 생전에 지옥의 모습을 그린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커다란 칼날에 알몸으로 누워 찔리는 지옥, 똥물이 담긴 솥에 넣어 펄펄 끓이는 지옥, 엄청난 크기의 빙하에 갇히는 지옥, 독사들이 온몸을 감아 물어뜯는 지옥. 그 외에도 많은 지옥의 형상을 기억한다. 허나 내가 실제로 겪고 있는 이 지옥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벌이었다.


멀쩡한 정신으로 괴물이 되어버린 내 모습을 끊임없이 보며, 당시의 아픔을 고스란히 느껴야 한다니... 이곳은 실로 지옥이었다. 근데 도대체 뭐 때문에 환생을 도우려는 걸까. 순수하게 지옥의 역할에만 충실해야 했다. 자살은 모두가 입을 모아 죄라고 말하는데 환생이라니, 가당치 않았다.


 "악!!!!! 내 얼굴.. 얼굴이 왜 이래...!!! 안돼!! 끄악!!!!"


 한쪽에서는 얼굴을 움켜쥐며 괴로워하는 여자가 보였다. 목을 매달았는지 얼굴엔 온통 핏줄이 터져있었고, 찾아주는 이 없이 장시간 매달렸는지 구멍마다 구더기가 들끓는 모습이었다. 이 상황에 할 말은 아니지만, 죽기 전 꽤나 예쁜 얼굴을 가졌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여자가 눈이 온전치 않음에도 자꾸만 거울 속 자신을 보며 괴로워하는 걸 보면 말이다. 하하


내 모습을 까맣게 잊고 그 여자의 역겨움에 홀려 정신이 빠져있을 때, 또다시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방송처럼 울림이 퍼졌다.


 '이곳은 환생을 도와주는 공간입니다.'


목을 맨 여자는 돌연 울림을 찾아 뛰기 시작했다. "시켜주세요! 하겠습니다! 환생하게 해 주세요!"라는 멍청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여기보다 더한 지옥으로 되돌아 가려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느끼는 고통을 숨죽이고 그녀를 뒤따랐다. 궁금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용기를 발휘해 죽은 우리를 환생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이곳은 대체 무슨 꿍꿍일까.

 

여자는 한참을 뛰더니 고개를 쳐들고 소용돌이 앞에 섰다. 쳐든 턱 밑으로 가로 줄이 깊게 파여, 뒤로 젖혀진 목이 댕강 떨어질 것 만 같았다. 여자는 허공의 무언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 나는.. 부유한 집에서 잘 먹고 잘 자면서 부족함 없이 살고 싶어.."


그 무언가의 목소리가 들리지는 않아도, 여자의 표정과 말을 들어보니 대충 원하는 삶을 물어봤구나 알 수 있었다. 대답이 끝나자 초원의 풀이 화려하게 여자를 감싸 안았다. 소름 끼치게 잔잔했던 소용돌이가 크게 일렁이고, 여자는 둥실 떠올라 하늘로 향하며 점점 형체를 바꿔갔다.


 '아.. 작고 귀여운 강아지가 되셨네.. 쯧 그래. 개팔자가 상팔자랬지. 요즘 같은 반려동물시대에 딱이네.'


 다른 이의 환생을 지켜보는 걸로는 궁금증이 해결되지 않았다. 여자처럼 허공의 무언가와 대화를 하고 싶었다. 그냥 환생을 하고 싶다며 뛰어가면 되는 건지, 아니면 그 전의 행동부터 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아 모방을 해보기로 한다.

 

먼저 거울 앞에 다가가 흘러내리는 뇌를 주어 담으며 소리쳤다.

 "꺄아아아악, 내 머리가 다 터져버렸어요!!!!!"


 '이곳은 환생을 도와주는 공간입니다.'


 "저요! 저 시켜주세요! 환생하고 싶습니다!!"


나는 정말 환생할 마음이 쥐꼬리만큼도 없었을까. 이리도 하고 싶단 연기가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걸 보면 여자의 환생을 보고 마음이 동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누구든 행복하게 살아보고 싶은 건 당연할 테니..


힘껏 소리치고 몸부림치는 내 앞으로 살아있을 적 모습의 밝게 웃는 내가 나타났다.

 '아.. 이런 거였구나.. 내가 이렇게 웃을 줄도 아네..?'


허공의 존재는 바로 나였다. 살아생전 언제 봤는지도 까마득한, 활짝 웃는 나.


활짝 웃는 허공의 나란 존재는 형체를 알 수 없이 잔뜩 망가져버린 내게 질문을 던져왔다.


 "어떤 삶을 살고 싶어?"

앞선 여자를 보며 더 구체적으로 최고의 조건을 말해야겠다는 생각과 다르게 멋대로 입이 움직였다.

 "이렇게 웃으면서 살아보고 싶어.. 한 번만 더 나라는 사람으로.. 새롭게 살고 싶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몸에는 부서질듯한 고통이 찾아오며 초원의 풀이 나를 감싸 안았다. 아차 싶었다. 내가 미쳤지. 또다시 나로 살고 싶다니... 후회해도 이미 늦은 뒤였다. 소용돌이는 요동치고, 나는 이미 두둥실 떠오르고 있었다.


팟-


 지끈거리는 머리와 함께 눈을 떴다. 꿈을 꾼 건지.. 분명 많은 일이 있었는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번에도 실패였다.


어젯밤, 약을 그렇게 목구멍에 쑤셔 넣었건만 여전히 살아있었다. 조금만 더 용기를 내서 확 뛰어내려 버렸어야 했는데.. 근데 웬일인지 몸이 가벼웠다. 약 때문일까? 혹시 실수로 영양제를 다량 먹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개운했다. 옆에 있던 물 한잔을 마시고 거울 앞에 섰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근사해 보이는 얼굴에 기분이 좋아져 입꼬리가 올라간다.


 꼭 다시 태어난 것만 같았다.


 "뭐야? 입꼬리 왜 이래? 내가 왜 웃지? 하.. 하하. 뭐야.. 나 이렇게 웃을 줄도 알았잖아.."


 '생.'

換 바꿀 환

바꾸다. 교체되다. 새롭게 하다. 새로워지다.

歡 기쁠 환

기쁘다. 기뻐하다. 사랑하다.



[생각이 흐르는 시간- 초 단편 ‘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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