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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효진 Sep 12. 2024

택배 상자.

 

띵-동-


 "딸, 택배하나가 왔는데.. 이름이 없네?"

 "나한테 택배올 게 뭐가 있어..."

 "글쎄, 작은 선물 상자인데.. 엄마가 열어봐?"

 "됐어, 책상에 올려놔.."


 하.. 선물 상자라고..? 어이가 없네..


 내 나이 32살. 나는 죽어가고 있다. 아마도 몇 주.. 많으면 한 달..? 췌장암 진단으로 항암치료까지 진행했지만, 남은 수명은 겨우 그 정도였다. 더 이상 손쓸 방법이 없어 집으로 돌아왔으니 기대조차 없었다.


이런 나한테 택배라니.. 전혀 달갑지 않았다. 더군다나 곧 죽을 거라는 사실을 주변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저리 예쁜 선물 상자라니.. 날 놀리는 건가?


 침대에 박혀있다시피 누워 책상 위에 놓인 상자 옆면을 보고 있자니, 화가 솟구쳤다. 아직 화낼 힘이 남아있구나 싶은 마음에 살짝 놀랍기도 했다. 나는 아파서인지 상자 때문인지 모를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 몸을 일으켜 책상 앞에 털썩 앉았다.


 내게 온 택배 상자는 리본까지 메어진, 오랜만에 보는 예쁜 것이었다.


소중히 열어보고 싶지는 않았다. 죽음을 앞두고 소중함은 사치였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리본을 풀어헤쳐 뚜껑을 열었고, 그 안에는 또 하나의 상자가 들어있었다. 4개의 비밀번호를 필요로 하는 굳게 잠긴 금속 상자. 그리고 작은 메모지 하나가 함께 들어있었다.


[당신을 살릴 치료제가 들어있습니다.

이 상자를 열 수 있는 사람은 당신뿐입니다.

당신이 가장 행복했던 날은 언제인가요?]


 '이게 무슨...'


 병원에서 조차 치료를 포기했다. 기적 따위 믿지도 않았다. 나는 내 앞에 놓인 이 금속 상자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굳이 엄마에게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 딸이 살 방법이 있는 거냐며 헛된 희망을 품을게 눈에 선했다.


 '행복했던 날...'

보낸 이도 없는 상자에 화를 내도 모자랄 판에, 머릿속은 어느새 행복했던 때를 찾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게 지푸라기가 배송된 듯하다.


 0.7.2.3 삐이이이-- 가장 행복했던 때는 탄생이 아닐까 싶어 생일 네 자리를 차례로 눌렀다. 상자는 열리지 않았다.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입학했던 날짜도, 원하는 직장에 들어갔던 날짜도, 첫 차를 구입한 날짜도 전부 아니었다.

 

나는 서랍 깊숙이 손을 넣었다. 그리고 다시는 열어 보고 싶지 않았던 다이어리를 펼쳐냈다. 빽빽하게 적혀있는 지난 삶.. 역시나 울분을 이기지 못하고 엉엉 울어버렸다.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내 삶의 조각들이 내 눈에 가득 담겨 우수수 추락해 버렸다.


다이어리에 적힌 글 중 어느 곳에도 내가 죽을병에 걸릴 만큼의 죄를 지은 날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열심히 살아온 흔적뿐이었다. 헛된 희망일지 모르는 택배 상자 속의 굳게 잠긴 지푸라기가 절실했다.


 나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행복이라 적힌 글을 찾아 비밀번호를 풀기 시작했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삐이이이-

 '내가 행복했다는데 왜 자꾸 아니래?‘

다이어리에 적힌 무수한 행복의 날들은 오답이었다.


 '하.. 내일 마저 찾아보자..'

내 마음 작은 곳에 희망이란 상자가 피어올라, 매일 포기했던 내일을 기약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라는 명대사를 기억한다. 이제 투병도 하지 않는 내게는 뜬구름 같은 대사가 되어 버렸지만, 왠지 오늘만큼은 내일의 가능성을 기대하고 싶었다.


 온몸을 휘젓는 고통과 함께 하루가 시작되었다. 몸 곳곳에 도사리는 시한폭탄이 다행히 터지지 않고 기다려주었다. ’분명 내가 놓친 행복이 있을 거야..’


 다시 펼친 다이어리에는 문득 한 글자가 눈에 띄었다.

‘나’, ‘내’

내가 잘한 날, 내가 진급한 날, 내가 축하받은 날.. 내가.. 내가.. 오직 나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누구와 무엇을 하고, 누구와 어디를 가고 가 아닌 온통 나 혼자 하고 혼자 이뤄낸 일 들이었다. 이게 문제가 되나 싶다가도 찾아볼 수 없는 '우리'라는 단어에 퍽 외로움이 밀려왔다.


 나는 늘 혼자가 편한 사람이었다. 생각해 보면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개인주의 성향‘이라는 평을 받았던 거 같기도 하다. 같이 하는 일은 늘 귀찮았고, 성가셨고, 나만의 성과가 아니라 생각했다. 힘들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오롯이 혼자의 시간이 필요했다. 혼자 웃고, 혼자 뿌듯하고, 혼자 자축하고. 혼자 쉬고..


혼자가 쌓여 만들어낸 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나였다. 아프고 나서는 메시지로나마 형식적인 동정들이 오갔지만 정작 얼굴로, 표정으로 받은 위로는 없었다.


띵-동

 

 ”딸, 누가 찾아왔는데..?'

 "나를?"

생각지 못한 방문은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엄마 나 빗질이라도 좀 해줘.. 땀도 좀 닦아주고.."

 

방에 들어온 사람은 전혀 친하지 않은 회사 후배였다.

 "어..? 지은 씨가 여기까진 어쩐 일로.."

 "아프시단 말을 들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어요."

 "아.. 고마워요. 생각지도 못했네요."

 "그러실만해요..! 음.. 저는 예전에 선배님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요..! 몸이 정말 아픈 날이었는데, 끝내야 하는 일이 있어서 병원도 못 가고 버티고 있었거든요. 주변에서는 전부 어떡하냐고, 괜찮냐고 위로해 주는데 갑자기 선배님께서 흔쾌히 업무를 대신해 주셨어요.. 얼른 병원이나 가라고 하시면서.. 하하.. 그 후로 친해지고 싶었는데..."

 "친해지고 싶었는데..?"

 "이런 말 죄송하지만.. 항상 날이 서계셔서 다가가기가 어려웠어요.. 근데 갑자기 퇴사를 하시고, 많이 아프시다니까.. 찾아올 수밖에요.."

 "그건.. 지은 씨가 워낙 아파 보였으니까.. 업무는 내가 하는 일이랑 연관이 있어서 도움도 될 거 같았고.."

 

극심하게 몰아치는 복통도 잊은 채, 우리는 한참 대화를 나눴다. ‘우리’라는 것에서 오는 이 간질간질한 기분이 어떤 감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느껴보는 요동침이 나쁘지 않았다. 지은 씨가 돌아간 후, 엄마는 내게 다가와 뜻밖의 말을 했다.


 "다녀간 아가씨랑 친했나 봐? 기분이 엄청 좋아 보이네. 우리 딸 이렇게 예쁘게 웃는 거 처음 보는 거 같아."

 "내가? 웃어?"

 "얼씨구, 여기 봐바. 생기가 도는데?"

엄마가 건넨 손거울을 받아 들고 얼굴을 비추니, 꽤나 즐거워 보였다.


 나는 순간 아차 하는 마음이 들었다.


 "엄마! 책상 위에 상자 좀 줘봐! 오늘이 며칠이지?"

 "자 여기. 오늘이.. 9월 12일."

 

0.9.1.2

띠리리링 철컥.



[생각이 흐르는 시간- 초 단편 ‘택배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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