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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효진 Sep 19. 2024

모태솔로.


 모태와 솔로가 합쳐진 인터넷 신조어, 일명 모태솔로.


뱃속에 있을 때부터 단 한 번도 연애를 해본 적 없는 사람을 뜻한다. 연애가 곧 사랑이란 감정이라면 나의 어머니와 오래도록 나눈 모자의 정도 포함일 테지.. 하지만 애석하게도 사전적 의미의 연애란, 성적인 매력에 이끌려 서로 좋아하여 사귄다는 뜻을 가진다.


 그 점에서 나는 명명백백히 모태솔로이다.


 덕분에 내 가슴에,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 심장엔 굵은 스크래치가 몇 줄 그어져 있다. 여자친구도 만들지 못하냐는 조롱의 한 줄, 손은 잡아 봤냐며 무시의 두 줄, 애정 어린 스킨십은 해봤는지에 대한 성적 수치심까지. 무던히 잘 살아가고 싶은 나에게 관심의 오지랖은 끝이 없었다.


딱히 반박은 할 수 없었다. 어쭙잖게 '난 여자에 관심 없어~'라거나, '연애를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야'식의 변명은 스스로 초라해지는 지름길이기에...


 종종 희망을 북돋아 주는 이성도 없지 않아 있었다. 연애 경험이 없어 모든 행동에 서투른 것이 오히려 순수함의 매력으로 다가온다나 뭐라나. 소위 숙맥 같다며 썸 타는 시절에 잠깐 귀여워해 주었다. 물론 거기서 끝이었지만.


숙맥. 좋게 봐서 순수함이지, 그냥 사리 분별 못 하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다. 서툴고 언변이 부족한 사람. 이성과 있을 때 유독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사람. 결국 그 모든 건, 바로 '나'라는 사람.


 이런 모태솔로+숙맥인 내게, 어느 봄날 그녀가 나타났다.


날이 좋아 핸드폰을 들고 꽃이며 구름이며, 다시 열어보지도 않을 풍경 사진을 넘치게 찍던 날이었다. 흐르는 봄이 아쉬워 손가락과 눈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어쩐지 카메라 앵글 안에 자꾸만 한 여자가 스쳐 지나갈 때였다. 흩날리는 벚꽃이 날 담지 않겠느냐 맘껏 표현하는 와중에도, 내 앵글은 동그랗게 말린 단발머리의 여자를 쫓았다.


 눈이 마주치는 듯한 기분 좋은 착각이 연속될 즘, 하늘하늘 한 그녀가 점점 카메라에 들어찼다.


 ".. 안녕하세요! 혹시 저도 사진 한 번만 찍어주실 수 있을까요? 꽃이 너무 예뻐서 한 장 남기고 싶네요."

 "아! 아 네. 어어.. 네..!?"

 "하하하, 찍어주신다는 거 맞죠?"

 "아! 네. 네.. 맞습니다..!"

 "와아! 감사합니다!"

 

나무 아래 선 그녀는 꼭 만개한 벚꽃처럼 화사했고, 어느새 스며들어 내 마음 사이사이 피어올랐다.


 그녀는 모태솔로력이 풀로 채워진 나를 전혀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어설픈 말주변을 답답해하지도 않았다. 늘 기다려주고 웃어주고 좋아해 주었다.


설레는 봄이었다.


 난생처음 성적인 매력에 이끌려 서로 좋아하여 사귀게 된 나의 연애는, 다른 이들의 흔한 연애 스토리와 다르지 않았다. 가득 찬 사랑에 행복해하고, 가득 찬 서로의 이기심에 불행해하는. 사랑이 무슨 감정인지, 어떤 설렘의 수순을 밟아가는지 배울 수 있었다.


 그렇게 연애란 것에 익숙해지던 또 다른 봄날, 그녀가 이별을 고했다.


 "이제 다 된 거 같아. 우리 헤어지자."

 "뭐..? 내가 잘못한 거 있어? 좋았잖아 우리.."

 "아니야, 잘못은 무슨. 오히려 정말 잘 따라와 줬는걸.. 오빠 많이 변했어. 좋은 쪽으로."

 ”근데.. 대체 왜..”

 "곧 알게 될 거야. 그리고 다 괜찮을 거야. 눈.. 잠시만 감아볼래?"

  

도통 알 수 없는 말을 하곤 눈을 감아보라는 그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갑자기 눈을 왜 감아 이 상황에.."

 "부탁이야. 한 번만 감아줘."

 "하.. 진짜.."


부탁이라는 말에 어쩔 수 없이 감아주던 찰나, 우주 같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이상한 픽셀의 형상들이 움직이는 미지의 공간이 펼쳐졌다. 마치 손바닥으로 두 눈을 꾹 누르고 있는 것과 같은 현상이었다.


정신마저 아득함에 빨려 들어갈 즈음. 공간 저 멀리 눈을 떠도 된다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햇살을 가득 머금은 냥 찡그리며 뜬 눈앞에는, 나를 등지고 걸어가는 여자가 보였다.


 이상했다.


분명 방금 한 이별에 슬프고 마음이 아린데, 정작 그 대상이 뚜렷하지 않았다. 그저 피어올라 활짝 만개하고, 절정에 이르러 흩날리며 떨어지는 벚꽃 나무.. 그 벚꽃 나무 사이를 걸어가는 여자의 뒷모습. 딱 그 정도였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친구라는 사람☎]


 "어. 왜?"

 "야 괜찮냐?"

 "뭐가?"

 "너.. 그.. 잘 헤어졌지?"


친구의 말에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보고 있는 게 아니라면 절대 알 수 없는 나의 이별.


 "어떻게 알았냐? 괜찮긴 해.. 어.. 되게 뭔가 슬픈데, 또 아무렇지도 않아."

 "와. 대박 이거 진짜인가?"

 "뭔데?"

 "내가 다크 웹 좋아하잖아. 구경하다가 [모솔 탈출! 이젠 나도 연애 고수!]라는 문구를 본 거야. 너가 생각이 안 날 수가 없잖아. 썸부터 이별까지 연애에 대해 확실하게 알려준다길래 너 이름으로 신청을 했지. 대신, 이별 후 아픔까지 가르치고 사랑했던 대상은 까맣게 기억을 없애준다는 조건. 근데 신청하고 얼마 안 돼서 너가 연애를 시작하네? 우연인가.. 긴가민가 하다가 신청한 거도 잊고 있었지. 오늘 갑자기 무슨 이용이 종료됐다고 문자가 와서 그제야 다크 웹이 기억난 거야. 대박이지 않냐? 이게 진짜였네?"

 "... 이런.. 씨 미친놈을 봤나.."

 "아 미안 미안! 근데 결과적으로 잘 됐잖아~ 저번에 보니까 여자 앞에서 말도 잘하고 장난도 잘 치던데? 이제 너도 모솔 탈출! 연애 고수여~"


... 미친 듯이 열이 올랐지만, 확실히 전보다는 훨씬 나아져서 할 말이 없었다.


 "하.. 그래, 고맙다. 나도 이제 모태솔로 탈출이다!"



[생각이 흐르는 시간- 초 단편 '모태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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