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그럴 때가 있다.
세안제 거품이 얼굴에 닿을 때, 한 번 두 번 왜인지 모르게 멈출 타이밍을 알 수 없어 몇 번이고 문지르는 내 손길이 느껴진다. '이런, 이번이 마지막!' 하면서 또 한 번 문지르게 되고, 그때부터는 모든 감각이 낯설어진다. 눈 깜빡임을 인지하는 순간 무겁고 어색해지는 눈꺼풀처럼 말이다.
내게 한글은, 이처럼 낯설게 다가왔다.
이 세상에 태어나 가-나-다-라, 엄마, 아빠, 학교, 친구. 많은 글자를 익혔다. 한 살 두 살 성장함에 따라 그 수는 몇십 배, 아니 몇백 배는 되었겠지. 사랑, 친절, 우정, 행복 예쁜 단어를 지나 미움, 시기, 질투, 불행 못난 단어도 알아가고 그렇게 어른이란 가면을 쓴 삼십 대가 된 어느 날이었다.
운영하는 미용실 고객 창출을 위해 블로그를 만들고, 미용과 일상에 관한 글로 가득 채웠다. 측근에 있는 사람들은 올라오는 글이 좋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처음으로 글자라는 게 내 마음에, 손에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하루는 새삼 나의 과거가 궁금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어떤 글을 써왔을까. 엄마가 고이 모아 놓은 일기장을 펼쳤다.
때는 1999년 1월 22일 토요일, 초등학교 1학년 시절.
[오늘 저녁부터 눈이 오기 시작핵다. 오늘 아빠가 오시는 날인데 눈때문에 아빠가 못오시면 어떻하지 참 걱정이 된다. 아빠 빨리 와주세요. 보고싶어요. 그런데 엄마가 오늘 아빠가 안 올수도 있다고 하셨다. 나는 아빠가 더 보고싶어졌다. 난 아빠가 꼭 올거라고 믿는다. 나는 아빠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그냥 자기로 하였다. 내일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아빠를 봐야지.]
어린날의 글을 보고 있자니, 해외여행을 알아보던 중 발견한 어느 웹사이트의 리뷰들이 떠올랐다. 한국인이라면 읽히는, 한국어를 암호화한 괴상한 리뷰들. '숛속 짇쨕 덥럭웍요, 2불 밑빠닦엔 콤퐝이가 읶써요.' 내 일기도 맥락은 비슷했다. 띄어쓰기와 맞춤법이 틀려도 뜻은 통하는 글. 아빠가 보고 싶다고 정성을 다해 표현한 그 일기가 꽤나 마음에 들었다.
블로그 포스팅으로 받은 칭찬은 그저 빈 공간을 메우던 글자에 날개를 달아주었고, 나는 한글에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나아가 브런치 스토리의 작가로 활동하며 한글과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다. 글로 생각을 옮기고, 마음을 표현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무궁무진한 세계. 때로는 엉망일지라도, 뜻이 통하는 괴상한 세계.
글을 쓰기로 작정한 내게, 한글은 연인과도 같았다. 알다가도 모를 글자에 사전을 찾아보는 정성을 들이고, 같은 단어가 가진 다른 뜻을 깨달으며 내 것으로 품어간다. 글 안에 희로애락을 담아 마음껏 표현하고 또한 분출한다.
가만히 살펴보면 어딘가 어색하고 이상하게 생긴, 늘 새롭게 다가오는 한글. 다시 갓난아기로 돌아가 가-나-다-라부터 배워간다면 느낄 수 없는, 세월의 익숙함에서 오는 낯섦.
나는 서른이 넘은 이제야 비로소 한글과 진한 사랑을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