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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천중 Chester Sep 14. 2021

새색시 앞에서 진땀났던 조종사

폼 잡으며 비즈니스석으로 마련했던 신혼여행

결혼하던 95년, 회사(대한항공)에 알아보니 해외로 신혼여행을 갈 경우 비즈니스석을 주는 제도가 있다고 했다. 단, 확정석이 아니고 스탠바이..


신혼여행은, 내가 많이 다녀봤던 캐나다의 밴쿠버-밴프(Banff)와 로키산맥으로 가리라 마음먹고, 회사의 예약상황을 조회해 보니 김포공항 <--> 밴쿠버 좌석에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 밴쿠버<-->캘거리 구간은 에어 캐나다로 구입했고..


대구에서의 결혼식을 마치고 김포공항 국내선에 도착해, 그 옆의 국제선으로 이동했다. 밴쿠버행의 출반시간은 저녁 타이밍이었다. (인천공항이 없던 시절)

예약상황을 조회했을 때 넉넉했기에, 비록 스탠바이 조건이지만 우리의 보딩패스를 일찍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체크인 카운터의 직원 왈, 승객이 많기 때문에 아직은 보딩패스를 발행할 수 없으니 마감 30분 전에 오란다.. 오마이 갓.. 별문제 없이 밴쿠버행에 탑승할 거라고 새색시인 아지매한테 떵떵거리며 말을 해 놨건만.. ㅠㅠㅠ


어쨋든 마감 30분 전에 체크인 카운터에 갔더니 아까의 그 직원 왈, 손님 3쌍이 그 시간 현재까지 노쇼(No show)라 우리 보딩패스를 발행해 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만약 그 3쌍이 다 체크인을 하게 되면 우리가 비행기에 타고 있더라도 그 손님들에게 좌석을 양보해야 한다고 한다... 

에구구.. 새색시 앞에서 완전 낭패다, 낭패..


우리의 얼굴은 완전히 구겨졌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나마 노쇼 승객 덕택에 보딩패스를 받았음에 감사해야 할까??

서둘러 출국수속을 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밴쿠버행 대한항공 비행기는 B747 점보였다. B747-300의 비즈니스 클래스는 어퍼덱(Upper Deck)에 있어 그곳의 우리 좌석에 앉았지만 이 비행기는 문 닫을 생각을 안한다. 계속 승객을 호출하는 방송을 하는데, 우리는 혹시나 우리 이름이 불리워 질까봐 완전 노심초사 상태였다..

그렇게 한참을 끌더니 출발시간을 훨씬 지나 출입문을 닫는다는 방송이 나왔다.. 휴~ 이제 가나보다.. 이제부턴 릴렉스다~


인천공항이 없던 90년대의 김포공항은 매우 혼잡했었다.
게이트에서 활주로에 진입하는데 보통 30분 이상씩 걸렸었지. 국내선도 마찬가지였고..


그날도 한참을 걸려 활주로(Runway 32R) 이륙 대기선(Holding Line)에 도달했다..

그리곤 우리가 활주로에 들어갈 타이밍이라고 여겨질 때 엔진 출력이 높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 이제 활주로에 진입하는구나.. 

그런데 엔진소리가 평상시 보다 훨씬 높다. 그러다가 갑자기 엔진소리가 낮아지고.. 다시 엔진 소리가 마구 높아지더니 다시 낮아진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했지만 비행기는 제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아, 무슨 일이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 즈음 어퍼덱 앞쪽의 조종실 출입문이 열리며 기장, 부기장, 기관사가 비행가방을 들고 나와 아래 층으로 내려가네..

잠시 후 비행기 기체 이상으로 비행기를 바꾸기로 결정했다는 방송이 나왔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 B747 비행기의 브레이크(Parking Brake)가 풀리질 않았다고 한다.


얼마를 기다린 후 모든 승객이 그 활주로 이륙 대기선(Rwy 32R Holding Line)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국제선 청사 쪽으로 이동했다. 

공항의 유도로(Taxiway)를 밟아 본 조종사도 별로 없을 텐데, 일반인이 그것도 활주로 바로 앞에서 유도로를 밟아 볼 경우는 얼마나 될까?? 좌우지간 그 날 밤, 밴쿠버행 승무원과 승객은 활주로 바로 앞 유도로를 밟아볼 수 있었다.


[김포공항의 젭슨 챠트]

[우리 비행기는 노란색 유도로로 진행했다. 오른쪽 맨아래의 녹색 화살표가 지시하는 부분이 이륙 대기선.

90년대의 김포공항은 현재와 다르게, 자그마한 국내선 청사, 국제선 1, 국제선 2 청사 이렇게 있었다.국제선 2청사는 대한항공 전용이었고.]


[구글맵으로 본 모습. 아랫 부분 녹색으로 표시한 구역이 밟아본 그 곳~]


현재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의 김포공항은 밤 11시부터 새벽 6시까지 공항이 닫혔었다. 일명 통금, Curfew Time.

그날 밤 새 비행기에 옮겨타고 이륙했을 때 시간은 밤 11시를 넘었었다. 공항당국으로부터 특별허가를 받았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밴쿠버에 도착했고, 밴쿠버 관광 후 캘거리로 날아갔고, 거기서 차를 렌트해 밴프 로키산맥을 돌아봤다.

밴쿠버에서 캘거리 구간도 비즈니스석이었는데 에어 캐나다였다. 직원할인표라 가격이 엄청 싼 대신에 스탠바이 조건..

[그 시절의 에어 캐나다 색상(Livery). 요즘 디자인보다 훨씬 멋있었는데 왜 바꿨는지 모르겠다..]


이제 로키산맥 여행을 마치고 밴쿠버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캘거리 공항 에어 캐나다 체크인 카운터에서 비즈니스석 보딩패스를 받고 공항을 구경하다가 탑승 마감 5분 전 쯤에 게이트로 뛰어갔다.

헉헉거리며 탑승권을 보여주니, 직원이 하는 말.. 우리는 이 비행기에 못탄단다... 헐... 뭔 말씀??

왜냐고 물었더니, 항공사 직원할인표이고 비즈니스석인데 우리가 청바지를 입고 있어서 그 표의 드레스 코드와 맞지 않는단다. 지금 빨리 갈아입고 오면 탈 수 있는데 하겠냐고 한다. 우리의 옷을 넣은 가방은 벌써 부쳤고 달랑 핸드백 하나 들고 있는데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그럼 탑승이 안된다고 하며 탑승 마감이란다..

그 비행기는 그렇게 문을 닫고 출발했다.


항공사에 근무하는 신랑을 자랑스럽게 따라나섰던 울 아지매. 또 한 번의 황당함...

하지만 지체할 시간이 별로 없다. 밴쿠버에서 한국으로 가는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야하니. 우리 짐은 에어 캐나다 비행기에 실려 밴쿠버로 벌써 떠났고..


캘거리 공항에 있는 항공사 매표소마다 들러, 니들 바로 밴쿠버로 출발하는 비행기 있냐? 그리고 청바지 잆고 있어도 탈 수 있냐?고 물었다.

그렇게 해서 캐나디언 에어라인즈(Canadian Airlines) 일반석을 급매했다. 예약없이 공항에서 발권하니 정상가격을 다 지불해야 했다. 아이고... 

아까워할 틈도 없이 얼른 탑승하여 아까의 그 에어 캐나다 비행기를 뒤따라갔다.  

그 당신 캐나다에는 이 두 항공사가 경쟁을 하고 있었기에 비슷한 시간에 비행편이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이민한 후 에어 캐나다가 캐나디언 에어라인즈를 흡수 합병했지.

캐나디언 에어라인즈로 밴쿠버에 도착해, 대한항공 카운터로 쫓아가 체크인했다. 이번에는 자리가 넉넉해 곧바로 보딩패스를 받았네... 

청바지에 대해 물어봤는데, 괜찮단다... 휴~ 살았다...


신혼여행 때를 생각하면 비행기 때문에 곤욕을 두 번이나 치뤘던 기억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ㅠㅠㅠ

새색시가 처음 타보는 국제선 비행기여서 조종사 새신랑이 폼을 엄청 잡았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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