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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서의 추억 #1

아랍 에미레이츠(UAE)의 화물 항공회사에서 일했던 시절...

by 체스터 Chester

여러 나라, 다른 문화권으로 돌아다니며 살다보니 재미있던 일도 참 많았다.. 기억에 남은 걸 적어보자. 잊어버리기 전에…

제일 먼저 아랍 에미레이츠(UAE)에 대해 적어보자...


캐나다 런던의 집을 떠나 UAE에 도착했을 때가 한 밤중이었다. 회사에서 픽업 나온 사람이 있어 두바이공항에서 그를 만나 안내해 주는 차에 올랐다. 고속도로를 한참 달려 숙소에 도착했고 내 방을 배정받았다. 도시 이름은 알 아인(Al Ain), 회사 숙소이름은 Midex Complex란다.

방 2개짜리 아파트였는데 집 안에 에어컨이 4개인가 있었다.


첫 밤을 지낸 후 다음 날 아침, 숙소의 문을 열고 나왔을 때 보이는 바깥 풍경… 모래 언덕이 건물 앞에 바로 있다…

영화와 TV에서나 보았던 모래 언덕.. 그게 내 눈 앞에 바로 펼쳐져 있다니. 건물의 옥상에 올라가 보니 오 마이 갓~… 정말 별천지였다.


[Midex Compl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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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dex Complex 앞의 모래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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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낼수록 방 안으로 고운 모래가 들어온다는걸 느끼게 되었다. 창문을 테잎으로 모두 밀봉하고 공기청정기를 구입했다. LG 공기청정기가 제일 좋다고들 했지.


동료 중 먼저 도착한 누군가가 렌트한 차를 타고 쇼핑센터로 나가는데 도로에 왜 그리 회전교차로가 많던지.회전교차로를 거기서는 Roundabout라고 불렀었는데 내겐 익숙하지 않았던 회전교차로를 지날 때마다 한쪽으로 차가 핑~ 쏠리고.. 빙 돌고나면 어디로 가는건지 방향 감각이 마구 흔들렸었다...


쇼핑센터에 도착해 광장 앞을 바라 보고 있는데 시커먼 물체 여럿이 쇼핑센터 쪽으로 오고 있다… 정말 까만 그 모습들.. 알고 보니 아랍여자들이 두루는 아바야. 정말로 좀비 같아 보였다.

그렇게 시커먼 천으로 자신을 완전히 가린 모습과는 달리, 쇼핑센터 안에는 섹시 속옷을 파는 가게가 많던지.. 일부다처제 이다보니 다른 와이프들보다 더 눈에 띄게 해야 한다나 뭐라나.. 정말 넌센스 였다.. 더 웃긴건 섹시 속옷 가게 점원들이 대부분 남자였다. 최고의 직장인 듯. ㅎㅎㅎ


두바이의 쇼핑센터 안에 있었던 스키장도 희안했다. 사막 한가운데에 실내 스키장을 만들어 놓는 똘아이 정신이야.. 우리는 사막의 냉동고라고 불렀다.

두바이에 새로 개장한 쇼핑센터 지하층에 있었던 수족관, 아쿠아리움은 엄청난 규모였다. 그 거대한 수족관 안에 다양한 물고기들이 있어 신기했지만, 만약 유리가 깨진다면 어디로 대피해야 하나라고 우리는 걱정 아닌 걱정을 헸었다..


두바이의 상징인 벌즈 칼리파(Burj Khalifa) 초고층 빌딩이 삼성건설에 의해 건설되는 모습도 장관이었다. 건설 막바지 단계였기에 그 꼭대기의 크레인을 어떻게 철거하나 참 궁금했었지. 관련 기사가 신문에 실리곤 했다.

하루는 두바이공항 바로 옆에 위치한 샤르자(Sharjah)공항에서 두바이공항으로 우리 A300 화물기를 옮기는 비행을 할 때 Burj Khalifa 빌딩 바로 위를 낮은 고도로 지나간 적이 있었다.. 그 높은 건물과 휘황찬란한 도로, 두바이의 야경은 정말 멋있었다..


쿠웨이트에서 레이오버할 때 처음에는 공항에 바로 붙은 호텔이었는데 형편없다고 다들 투덜대고 그랬었다. 다행히 나는 그 호텔에서 머물 기회가 없었는데 그 이후 시내의 호텔로 옮기게 되었고 그 새 호텔은 정말 럭셔리 그 자체였다. 스위트 룸이 왜 그리 넓으며 호텔 조식은 너무나 종류가 많았다. 거기서 아침 식사를 하다보면 점심 때까지 머물러 앉아 있게 되었었다.. ㅎㅎㅎ


아프카니스탄의 바그람(Bagram) 미공군기지로 비행갈 때마다 느껴졌던 미국의 엄청난 국방력.. 정말 천조국이라고 불린만 했다. 바그람 공군기지의 취항시간(Slot time)은 매우 엄격하게 관리해서 우리가 출발이 지연되어 비행 자체가 취소된 적도 있었다.

바그람 미 공군기지에 대해서는 별도로 써야겠다..


바레인에서였던가? 이집트인 화물적재사(Load Master) 아재가 짐을 잘못 실었다며 두번이나 실었다 내렸다 했었다. 그 덕에 Slot Time을 놓쳐 비행은 취소되고 그 아재는 파면되었던 것 같다. 인도인 젊은 친구들은 일을 아주 잘 했었는데, 그 이집트인 아재는 항상 문제였었다.

인도인들은 Yes라고 답할 때도, No라고 답할 때도 고개를 좌우로 까딱거려 익숙해질 때까지 오해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어.


UAE에 있을 때 수메르에 대한 글을 처음 읽게 되었었다.

현대 종교가 태어난 지역이 중동지역이었기에 난 당연히 중동지역의 기후와 환경에 장점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중동에서 지내보니 왜 그 지역이었는지 알 수 없었고 그 이유가 궁금해 찾아보다 보니 수메르를 알게되었었다.

수메르에 관한 자료를 읽다보면 인장(Seal)의 그림에 대해서도 자주 나오던데, 하루는 바레인의 박물관에 갔더니 실제 수메르 인장을 볼 수 있었다. 예상보다 작아 혼돈스럽긴 했었지만 정말로 대단했다..


수메르 기록에 에덴동산을 틸문이라고 했던 것 같았는데, 바레인 화물 항공사 DHL(Bahrain)의 무선 호출부호(callsign)가 딜문(Dilmun)이라 아주 특이했다. 공중에서 DHL 비행기가 딜문이라고 교신할 때마다 수메르 기록을 떠올렸으니…


한국식당이나 일식집이 없는 알 아인에서 한식이 그리울 때마다 두바이로 갔었다. 내 애마 벤츠를 몰고 한시간 반을 가서 점심을 먹고, 저녁을 포장해서 올 때면 정말 뿌듯했었지.

두바이에는 주소 제도가 없어 목적지를 찾을 때 정말 힘들었었다. 이정표가 될만한 큰 건물(랜드마크, Landmark)의 어느쪽, 이런식으로 말하니 참… 몇 년 후엔 주소제도가 시작되었다고 했던거 같기도 하다.


[중고로 샀던 벤츠와 회사 숙소 경비원. 이집트 사람이었는데 영어를 열심히 배우는 착한 사람였다. 내가 나가고 들어올 때마다 자상하게 봐주기에 찍어줬던 사진. 이집트의 자기 집으로 보내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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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알 아인에 도착해 정부의 신체검사를 하러 갔었을 때가 기억나네.

우리는 멋도 모르고 가서 줄을 서 있었는데 그 날 마치질 못했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누가 그러다러고. 유니폼을 입고 가라고.. 그 다음날 승무원 유니폼을 입고갔더니 곧바로 진행해 주었었다.. 역시 조종사 제복의 힘은 위대했다~ ㅎㅎㅎ


라마단도 빼놓을 수 없겠네. 이슬람 국가에선 최고 중요한 행사니까.. 그런데 그 기간 동안 외국인들에겐 정말 힘든 기간이지. 다행히 알 아인에는 UAE 왕자가 외국인 전용으로 꾸며 놓은 지역이 있어 거기에 가서 우린 점심도 술도 먹을 수 있었다..

그 구역 안에는 골프장, 승마장, 사격장, 수영장, 레스토랑 등등이 있어 우리 같은 고소득(그 나라 현지인 기준으로 보면 별거 아니지만) 외국인들에게는 파라다이스 그 자체였다.


UAE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는 좋은 자동차 번호판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했다. 현지 신문에도 실렸었는데 고급 차량 가격의 몇 배를 훌쩍 뛰어넘는 번호도 많다고 했지.


가난한 나라에서 중동으로 일자리를 찾아와 누구나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는 이들도 많았다. 주로 필리핀인, 시리아인, 요르단인, 이집트인 등등 이었고 필리핀인은 여자가 대부분이었다.

이 사람들의 급여는 정말로 낮았지만 중동 현지인들의 삶을 대하면 그 때까지 살아오며 쌓아왔던 가치관이 마구 흔들렸었다. 조종사의 급여가 대부분의 나라에선 봉급생활자 상위에 속했지만 UAE 현지인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졌다.

쉽게 많은 돈은 받음으로 인해 학업이나 근로 욕구를 저해하기도 했지만 정치적으로 대항하지 못하게 하는 마약 같은 거라고 우리들은 평가했었다.


벌써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 요즘의 UAE 모습은 어떤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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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allonboard7654/vid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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