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관문, 자가용 조종사면허(PPL)
항공대학 기계과 2학년이던 1989년에 비행을 배우기 시작했다. 홍종, 명수와 함께..
항공대 운항학과의 이정모 교수님이 주셨던 전화번호로 연락해, 조성기씨를 강남 신사동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조성기씨는 미국 FAA 비행교관(CFI) 자격이 있었고 오산 미군비행장의 Aero Club에서 비행하고 있다고 했다. 키가 작고 마른 형에 검정 안경을 꼈는데 말을 좀 함부로 하는 스타일이었다. 어떻게 그 당시에 FAA CFI 자격을 취득했고, 어떻게 미군 기지인 오산비행장에서 비행할 수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조종사 면허증을 어떻게 따는지 전혀 모르는 우리는 그가 일러주는대로 했다.. 신사동의 조성기씨 사무실에 들러 비행책자에 대한 설명을 듣고, 오산비행장으로 같이가 에어로 클럽에서 비행을 하곤했다.
조성기씨는 검정색 코란도 지프를 갖고 있었는데 우리 셋이 함께 타면 차가 꽉 찼다. 송파 어딘가로 기억이 되는데, 비행을 마치고 그의 집에 도착하면 우리가 세차를 하곤 했네.. 왜 그랬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오디오 장비에 관심이 많아 집 안에 앰프, 스피커 이런게 많았었다..
오산비행장에 나가 에어로클럽 세스나로 비행을 했는데 우리에겐 정말 힘들었었다.. 비행 그 자체보다, 관제교신(ATC)이 정말 힘들었다. 비행도 쌩 초보인데다, 오산비행장의 미군 관제를 알아듣고 응답해야 했으니.. 영어도 이렇게 빠른 영어가 있나?? 종이에 적어 달달 외우며 익혀갔다.
에어로클럽 근처에는 F-16, F-18 등의 미군 전투기가 자주 있었는데 전투기를 그렇게 가까이서 본건 처음이었다. 기대보다 너무 작아서 좀 실망하기도 했었고..
그 때 권영지 형을 처음 만났다. 형은 그 때 미군 GI로 근무처는 서울 쪽이었는데 비행을 배우기 위해 오산 에어로클럽에 나오고 있었다.
조성기씨를 따라다니며 비행을 배우다 보니,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우리 모두에게 들었다.
지나고 보니, 그도 우리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잘 몰랐던 것 같기도 하다. 요즘이야 비행을 배우는게 보편화되어 있고 정보도 많지만, 그 당시엔 전혀 존재하고 있지 않았으니.. 인터넷의 '인'자도 없던 시절이기도 하고.
조성기씨와 결별하고 홍종과 나는 그 해(1989년) 겨울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미국 뉴욕으로 향했다. 홍종의 사촌형님이 플러싱에 살고 계셨는데 거기로 가서 비행학교 정보를 찾기로 했다. 요즘 같으면 인터넷으로 순식간에 검색할 수 있었을텐데 그 땐 참 거시기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형님이 우릴 태우고 뉴욕 시내를 돌아다녔던게 기억난다. 록펠러센터 앞에선가는 주차료가 비싸기에, 고장난 것 처럼 차 본네트를 열어놓고 두 명씩 사진을 찍으러 다녀왔었다. 그 유명한 록펠러센터의 아이스링크도 구경하고.
뉴욕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뉴저지주 서섹스(Sussex)라는 작은 마을에 있는 Flying Club하고 연락이 되었다. 그리곤 우리 둘이서 그 동네로 향했지. 아마도 형님이 태워다 주셨을 듯 하다.
아주 작은 동네였는데 중국식당이 하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거긴 볶음밥이 있었으니.. 가격이 싸기도 하고..
이 동네의 유일한 여관, 서섹스 인(Sussex Inn)에서 처음 며칠을 묵었다. 들낙거릴 때마다 우리보고 매번 아이디를 달라고 해서 좀 귀찮았었다. 그러다 동네의 한 집에 민박을 구했고.. 그 집에서 비행장으로 걸어서 다녔다. 서섹스의 겨울은 눈이 많이 오고 무척 추웠는데 그런 줄 알았나?
한 번 다녀오면 눈에 신발이 다 젖어 엉망이 되었고.. 그래서 우리가 제일 먼저 샀던게 방한 부츠였다. 루마니아에서 만든 부츠가 제일 싸서 그걸 샀는데, 싼게 비지떡이었다. 방수기능이 약해서…
어쨌든 우리는 30분 정도 걸려 비행장으로 걸어다녔다. 운이 좋으면, 지나가는 차가 태워준 적도 있었고.. 그 당시만 해도 미국의 인심이 참 좋았었지...
서섹스 비행클럽에서 우리랑 같이 비행했던 교관은 북유럽에서 온 젊은이였다.교관면허(CFI)증을 따고 비행시간을 쌓기 위해 교관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친구였다.
눈이 오는 날에는 우리의 애마, 파이퍼(Piper) 체로키(Cherokee) 비행기 날개를 빗자루로 쓸며 쌓인 눈을 치웠네.. 3월 초 3학년 1학기가 시작되기 전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우리가 머물 수 있는 날이 정해져 있어 가능한 모든 날 비행을 했다..
그러다 첫 단독비행(Solo)도 나갔고.. 홍종이 먼저 나갔던 것 같다. 그 때 그 교관 친구와 공중에 떠 있는 홍종의 비행기를 계속 지켜봤었네.. 내 차례가 되어 혼자 몰게되니 교관하고 같이 타다 오른쪽 자리가 비게 되어 어색하기도 했지만 '혼자'라는 공포아닌 공포를 이겨내야 했지.
눈이 많이 오는 지역에서 크로스 컨츄리(Cross Country) 비행을 했을 때의 멋짐도 기억에 남는다.
서섹스 비행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의 산 정상에 무슨 기념비가 있었는데 (Monument라고 불렀다) 그 근처를 비행하면 온통 흰색으로 뒤덮힌 산과 언덕, 들판이 정말 멋있었다. 물론 이런 날엔, 지상의 참조물을 확인하며 비행해야 하는 우리에겐 방향을 잃어버리기 쉽상이었만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1989년 여름의 교통사고로 앞 치아가 모두 의치로 바뀌었는데, 서섹스에서 비행하다 그 앞 의치가 떨어져 엄청 당황했던 적이 있었다. 갑자기 의치가 떨어져, 비행클럽 주인인 할아버지(이름이 기억안나네)에게 전화하고 할아버지가 근처의 치과로 데려가서 다시 붙였지.. 접착제가 약했었나 보다. 의치를 만들었던 청주 치과의사는 서울대 치대를 나왔다며 요란을 떨었건만 실력은 꽝~이었다. 학력보다 실력이 중요하건만 한국에선 학력을 더 중시한다..
중간에 쉬던 날이 있었는데, 차를 렌트해 홍종과 둘이서 뉴욕 시내로 나와 구경을 했었다. 내가 운전을 하고, 홍종이 지도를 보며 항법사 역할을 했다. 뉴욕의 번잡한 도심을 운전하고 다니긴 그 때도 매우 어려웠다. 내비게이션 장비가 있던 시절이 아니었으니.. ㅠㅠ. 그래도 길을 잃지 않고 촌놈들이 잘 다녔다. 아, 홍종은 운전면허증이 없었다. 자동차 운전면허보다 비행기 조종면허를 먼저 딴 친구야~
뉴욕은 정말 별천지의 세계였다.
30 몇 년을 사용하다 사망한 세이코 시계를 그 때 샀던 거구나. 시계 작동이 부자연스러워져 수리점에 갔더니 이런 시계를 아직도 쓰고 있냐고 하더라고... 싸지만 잘 작동하면 되는거 아닌가??
렌트카를 몰고 두 번인가 뉴욕엘 다녀왔던 것 같다.
드디어 우리 둘 모두 FAA Private Pilot License(자가용 면장)을 취득했다.. 그 때가 1990년 2월. 채 두 달이 걸리지 않았다. 80시간 정도 비행을 했고, 필기시험을 거쳐 구술(Oral) 시험 전부를 무사히 통과했지.
통과했다고 하면서, '당신은 이제 조종사'란 말을 하며 시험관이 임시면허증을 건네주었다. 임시면허증이 너무나 간단한 거라 놀라기도 했지. 작은 종이에 사진도 없고 이름, 주소, 시험관(Examiner) 등의 내용을 기입하면 끝~..
어쨌든 우리 둘은 너무나 기뻤다.. 항공대학 학생 중 FAA 면허증을 딴 최초의 순간이기도 했다. (그 다음 해에 FAA Commercial License를 땄는데 이건 당시 한국 학생 중 처음이었다. 그래서 신문에 실리기도 했지. 당시에 젊은이들에게 인기 높았던 스포츠 신문)..
뉴욕으로 돌아와 홍종 형님네에서 신세를 잠시 진 후, 나는 Rochester에 이민 정착한 인흥네에 들렀다 귀국하기로 했다. 인흥이는 같은 공고를 졸업하고 발전소에 잠시 근무하다 미국으로 이민한 친구다.
뉴욕 맨하탄의 그레이하운드 터미널에 가서 버스를 탔다. 커다린 보따리 가방 2개를 부치고 울러매는 가방을 갖고 버스에 올랐지.. 그러고 버스는 한참을 달렸다. 그러다 운전기사가 뭐라고 하고 곧 버스가 어느 터미널 같은데 서더라고. 승객 여러 명이 내렸다. 다들 자기 쓰레기를 챙겨 가더라고.. 아주 신기..
그레이하운드 버스의 화물칸이 열리고 짐을 내리고 싣는 소리도 들렸다. 승객 여러 명도 타고.. 그리곤 다른 운전기사가 올라타더니 버스를 출발시킨다.. 촌놈은 창 밖을 내다보며 미국 도시를 구경하고 있고... 아, 여기서 잠시 쉬었다 가나보다..
또 한참을 달려 어느 작은 도시에 들어서자 운전기사가 뭐라고 그런다. 지명인 듯 한데 지도가 없으니 알 수가 없지. 버스가 정류소 몇 군데 서더니 승객들이 다 내렸다. 다들 대학생들처럼 보이더라고. 자기 쓰레기는 역시 다 챙겨가더라고..
승객이 다 내린 버스를 다시 출발시키기에, 운전기사에게 다가가 내 목적지 Rochester는 언제쯤 도착하냐고 물었다. 밖은 깜깜한 밤, 한밤 중이다.. 운전기사가 Rochester냐고 몇 번을 묻더니, 깜짝 놀라며, 아까 버스 운전기사가 바뀔 때 버스를 갈아탔어야 한단다.. 아니 뭐라고라?? Rochester간다는 버스를 탔는데 중간에 다른 버스로 갈아타야 된다고요? 한국 촌놈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질 않네.. 그리고 그 순간 짐으로 부친 내 가방은 어떻게 되지?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그러면서 버스는 계속 움직였다.. 맨 앞 자리에 앉아 어쩌나 걱정을 하고 있으면서..
잠시 후 버스 차고지에 도착하니, 운전기사가 설명해준다. "아침에 여기서 출발하는 버스를 자기가 모니까 Binghamton(갈아타야 하는 도시)까지 그냥 태워줄께. 그리고 거기서 Rochester로 가는 버스를 타라. 네 짐은 벌써 Rochester에 도착해 있을테니 내일 찾아라. 그리고 오늘 밤은 그레이하운드 회사가 재워줄테니 걱정마라". 그러면서 그레이하우드 운전기사가 묵는 호텔로 데려가 하루밤을 재워줬었다. 그레이하운드 버스회사에서 지불하는거라고 하며.. 땡큐, 썰~! 너무너무 고마웠다.
그레이하운드 버스표는 학생 할인으로 샀던 건데, 그 호텔의 숙박비를 보니 버스비의 두 배 정도였다. 아이고...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비행기 면허증을 땄다는 애가 버스 갈아타는걸 몰라 미아가 될 뻔했던 사건.. 참나...
그렇게 해서 들렀던 동네가 이타카(Ithaca)시.. 유명한 코넬 대학이 위치한 곳이었다. 그 날 밤은 덕택에 일정에 있지도 않았던 이타카와 코넬 대학 주위를 구경할 수 있었다. 늦은 밤이었지만 학교 곳곳은 환하고 학생들은 분주했다.
다음 날, 같은 운전기사가 모는 같은 버스를 타고 Binghamton에 도착해 버스를 "잘" 갈아타고 Rochester로 올 수 있었다. 버스 터미널에는 인흥이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고.. 하루 늦게 갈거라고 전화는 해두었지만, 늦게된 스토리를 해주었더니 배꼽을 잡고 웃는다~... ㅎㅎㅎ
조종사면허를 따러 미국에 처음 갔을 때를 회상하면 항상 그레이하운드가 떠오른다. 그 버스기사분은 참 다정하기도 했다. 흑인분이었는데..
https://www.youtube.com/@allonboard7654/vide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