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기 면허증 따러 미국으로... #2

두번째 과정, 계기비행(IR)자격

by 체스터 Chester

FAA 자가용 조종사 면장을 취득하고 1990년 2월 말 한국으로 돌아오니 곧 3학년 생활이 시작되었다.


항공운항과로 과를 바꿀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들었다. 다른 과에서 운항과로 전환할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진지 두번째 해로 대한항공에서 후원하기에 졸업 후 별 다른 사유가 없는한 대한항공에 입사되는 매력적인 프로그램이었다.

다른 친구들처럼 나도 운항과로 전환하여 늦깎이 학생의 입사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싶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미국에서 맛보았던 '비행의 자유로움'을 더 넓혀 FAA 사업용 조종사 면장까지 도전해 보고 싶기도 하였다. FAA 면장에 도전하려면 돈이 많이 들기에 큰형과 상의하였고 나는 기계과에 남아 해 보기로 결정했다. 큰형의 전폭적인 후원에 두고두고 감사하다.. 감사합니다~!!


여름 방학기간 동안 계기증명(Instrument Rating) 과정을 마치려면 준비를 많이 해둬야만 했다.

미국에서 한 가방 구해 온 비행 책자를 봐야하기도 했고, 기계공학과의 과정도 따라가야만 했으니 늦깍이 대학생은 꽤나 바빴다. 거기다 어학당엘 다니며 부족한 영어를 익혀야 했고..

그래도 장학금은 꾸준히 받긴했지.. 다른 애들이 공부를 덜했기 때문이리라..


어학당은 주로 이화여대로 다녔다. 신촌의 다른 대학들에 비해 수강료가 훨씬 저렴했기에 3 학기 동안 다녔다.

이대 어학당은 후문 바로 옆 건물에 있었기에 정문으로 들어가면 학교의 언덕을 넘어 한참 걸어가야 했다. 전부 여자들만 가득한 그 길이 처음엔 당혹스러웠지만 점점 익숙해져 갔었네.. 남자 많은데 여자 혼자는 쉽게 갈 수 있지만, 여자 많은데는 남자 혼자 가기 힘들다고 하질 않던가?

어학당의 우리 반 여학생들은 나보다 4살, 5살 어렸다. 울 아지매와 같은 또래.. 그 때는 내 코가 석자여서 그랬는지 사귀고 그러질 않았다. 아버지가 대한항공 기장인 88학번 여학생을 항공대 축제에 데리고 갔던 적은 있구나.. 나중에, 그 학생이 아나운서가 되어 TV에 나온다고 들었다.


계기비행(IFR) 책을 독학으로 공부하는데 난관이 참 많았다.

영어 단어 하나 하나의 뜻은 알겠지만 합치면 도무지 이게 뭘 의미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예를 들어, Missed Approach.. 지금이야 너무나 쉬운 기본 단어지만, 그 당시엔 이런 쉬운 말 조차도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맨 땅에 헤딩하는 독학생의 어려움이었지..


미국에 가서 FAA 면허증을 따온 얘기가 퍼저, 조종사 면장을 미국에서 취득하고 싶단 친구들이 생겨났다. 그 후배 친구들에게 자가용 과정 책자를 함께 공부하며 도움을 주기도 했다.

나는 계기비행 필기시험 문제집을 달달 외워야 해기도 했고.. 이해가 안되면 먼저 외워보고 그 다음에 이해하는게 내 스타일이니..


미국에서 올 때 구해왔던 비행잡지에서 비행학교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 IFR 과정에 적합한 비행학교를 고르기 위해서는 그 많고 많은 학교들에게 편지를 써 답장을 받고 또 보내고 받고 해야 했다..

요즘처럼 인터넷이나 이-메일이 있었으면 정말 편했을텐데.. 모든걸 편지지에 쓰고 국제우편으로 부쳤어야 했으니..


그 시기엔 문산의 혜중 누나네 집에 신세지고 지낼 때였다.

문산역 종점에서 항공대가 있는 화전역까지 기차를 타고 다녔지. 완행열차 한가지 밖에 없었고. 요즘엔 깔끔한 전철이 다니지만 그 땐 디젤 기관차가 끄는 통일호 완행열차였다.. 백마, 일산, 운정 이런 역에 다 서던..


미국으로 편지를 써서 보내야 하는데 손으로 쓰니 문제가 많아졌다. 처음 몇 통이야 손으로 쓸 수 있지만 시간이 아까운 공돌이에게 수 십통을 써야 하니..

그러다 청주의 엄마한데 부탁드렸고 파란색 타자기를 구입할 수 있었다. 수정기능 이런게 없는 가장 단순형. 물론 가격도 최고 낮았고... 수정기능이 없어 오타가 나면 정말 힘들지만 그래도 손으로 쓰는 것보다는 훨씬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요즘 같으면 프린터로 지~잉 뽑으면 되는건데..

그 타자기로 정말 많은 편지를 써서 보냈다. 얼마나 편지를 많이 써 보냈던지, 파주군 우체국에서 유명했었나 보더라고.

어느 날은 편지가 배달되어 왔는데, 편지에 달랑 내 이름, Paju, Korea 이렇게 간단하게 써 있었다. 파주군에 국제우편이 도달하면 무조건 문산 누나네 집으로 배달되었었나 보다.. 혜중 누나네 주소는, 경기도 파주군 문산읍 선유리 였다.. ㅎㅎㅎ


그렇게 우편 연락을 하며 골랐던 학교는 미국 중부인 미조리주(Missouri) Joplin에 있는 Mizzou Aviation이었다. 학교라기보다는 작은 항공업체로 거기서 교육도 시키는 곳으로 교육비가 저렴하고 날씨가 좋았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기 전 종로 2가의 여행사 거리에 나가 항공권을 구입했고, 방학 시작 날 비행기에 올랐다. United Airlines.

그리곤 Mizzou Aviation에서 IFR 비행 교육이 시작되었다.


가장 싼 모텔을 숙소로 정하고 거기서 자전거로 통학했는데 너무 힘들었다. 미국 중부지역의 여름이 이렇게 더울 줄이야.. 강렬한 햇볓은 너무나 뜨겁고 따가왔다.

그러다 도무지 안되겠어서 통학길 중간 쯤에 있는 중고차 판매소에 들러 정말 싸꾸려 똥차를 샀다. 미국 영화 빈민촌에 나오는 그런거.. 그리곤 그걸 타고 다녔다.


차를 사면 처음 얼마간은 임시번호를 부여받는 걸 한국에서 봐왔기에, 미조리주에서도 그런 줄 알고 차량등록없이 다니던 어느 날, 뒤 따라오던 경찰이 나를 세웠다. 싸이렌을 울리면서...

미국 영화를 보면, 경찰이 차를 세우면 내리지 말고 양 손을 다 보이며 면허증을 보여주던데 그 때는 그런걸 하나도 몰랐으니 그냥 내려 뒤의 경찰에게로 갔다.

왜 번호판 없이 다니냐고 그러기에 설명해 주었고, 경찰 왈, 미조리주에선 바로 등록해야 한다고 하더라고.

그리곤 그 경찰이 내 차를 에스코트해 Mizzou Aviation로 행했다. 비행학교 사장에게 경찰이 얘기했고 사장은 곧바로 직원을 붙여주며 차량등록하고 오라고 했지.. 참 나도...

그 당시만 해도 미국 경찰은 요즘처럼 거칠지 않았다.


파이퍼(Piper) 체로키(Cherokee)는 날개가 아래에 달려 있어 여름의 그 강한 햇빛이 조종실로 그냥 들어왔다. 에어컨도 없고..

가뜩이나 이해가 안되는 계기비행을 그 좁고 무더운 체로키의 조종실에선 더 이해가 안됐다.

한 시간을 타고 내려오면 땀으로 완전히 다 젖어 있었지. 내 교관이었던 그 아저씨(경력이 엄청난 정말 베터랑)도 마찬가지..


HSI하고 ADF, VOR 계기, 그리고 얘들 서로의 상관관계 이런걸 이해하는데 한참 걸렸다..


Joplin에서 비행하는게 조금 나아져 뉴욕의 홍종 사촌형께도 연락을 드리곤 했었네.. 여긴 한국인이 한 명도 없는 곳이라고 하니 형수님이 김치를 보내줄까 그래셨지...

그 이후론 연락을 못드렸었는데 잘 계시는지 궁금하다.. 벌써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


Joplin에 있는 동안 내 주식은 맥도날드 빅맥 세트였다.

아침은 간단하게 먹고, 점심에 맥도날드로 가서 빅맥 세트 2개를 샀다. 콜라 대신에 오렌지 쥬스로 해서...하나는 점심용, 다른 하나는 저녁용..

요리를 하지도 못하기도 했지만, 일단 빅맥이 제일 저렴했기 때문이었다.

촌놈이 처음 겪는 드라이브 스루(Drive Thru)로 주문을 했는데, 빅 맥의 맥(Mac) 발음을 할 때는 코를 반쯤 닫고 해야 알아 듯더라고.. 역시 영어는 발음이 어려워..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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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른 후 매스컴에서 Fast Food의 단점을 줄줄이 말했지만, 1990년도 여름의 나에겐 맥도날드 빅맥은 절대적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니, 모두들 내 몸이 훨씬 좋아졌고 건강해 보인다고들 하더라고. ㅎㅎㅎ


Mizzou Aviation에 일본인 학생이 한 명 있었다. 이름이 마사오 였던거 같다. 30대 초반 정도로 기억되는데, 사업용 조종사 과정을 밟고 있다고 했다.

마사오는 일본에서 많이 알려진 레이서라고 했다. 자동차 레이서..

레이싱할 때 입는 특수복 이런거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고 그랬지.. 비행은 그냥 취미로 하는거라고 했다..

마사오는 비행 훈련비를 일본 신용카드로 결제했었다. 나는 여행자수표를 챙겨갖고 다녔었는데..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무진장 애를 쓰던..

그가 참 부럽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여유도 있었고, 경제력 이런 것도 느껴졌고.. 그 때의 나는 너무나 가진게 없었던 시절이었지.. ㅠㅠㅠ.. 물론 남들이 보기엔 비행기 면허증을 따러 미국으로 갈 정도로 유복하다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형님의 도움으로 삶의 최저선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는데..


Joplin에서 한 달 쯤 지났을 때, 영지형하고 장경식, 그리고 한 명(이름이 감감...)이 왔다.

영지형은 무슨 면장을 따러 왔었는지 기억이 안나고, 다른 두 친구는 자가용 면장을 위해 왔었다.

모두 함께 방을 쓰기로 하고 넓은 모텔로 옮겼고..


그 한 명은 며칠 비행해 보더니 자기랑 맞지 않는다며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귀국 전날, 내 차를 빌려 귀국선물을 사러 나간 그 친구가 오질 않았다.. 다들 걱정하고 있는데, 우리가 묵고 있는 방으로 경찰이 찾아왔다. 경찰이 등장해 나를 찾고 있기에 다들 놀라서 버벅 거리고 있는데, 영어에 능한 영지형이 나섰다. 역시 미군이여.. 들어보니, 내 차가 중간에 퍼져 그 친구가 꼼짝 못하고 있단다..

경찰차 뒷자리에 타고 가보니, 내 차의 트랜스미션이 고장.. 견인차는 벌써 와 있고.

Joplin에서는 왜 그리 경찰을 자주 만나게 되던지... 미국 경찰차를 다 타보기도 하고..


견인차 기사에게 얼마냐고 물으니, Twenty nine ninty(29-90) 이런 식으로 두 자리씩 띄어 말한다.

아니 그럼 $2,990불이나 한단 말이야?? 난 감당못해. 그 큰 돈을 어떻게 지불해.. 미국 물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차를 끌고 가면 되는건데 왜 이렇게 비싸게 받냐 했더니, 너희는 비싼 비행을 배우는 사람들인데 뭐 이거 갖고 비싸냐고 그러네..

알고 보니 $29.90인데.. 4자리를 그렇게 말하는지 알았나?? 한국 학교에서 너무나 교과서적으로만 영어를 배웠으니.. ㅠㅠㅠ

그렇게 내 똥차가 끌려 갔고 그 이후론 쓰지 못했다. 수리 비용이 너무 높아서.

그 사정을 알게된 Mizzou Aviation 사장이, 학교에 안쓰는 차가 있으니 우리보고 그걸 쓰라고 했다. 80년대 미국식 넓쩍하고 기다란 차였지..영지형이 주로 운전해 그 차로 많이 돌아다녔다..


내 차를 끌고 간 곳에서 나중에 연락이 왔고, 그 차의 부품을 다른데 팔기로 했다. 폐차하면서..

그 때 그 차의 Missouri 주 번호판이 캐나다 집에 아직도 있다... 짙은 고동색의 특이한 색깔 번호판.


Mizzou Aviation에는 Fresca 141이란 기초 시뮬레이터가 있어 그걸로 계기비행 연습도 많이 했고 비행시간도 늘려야 하기에 혼자서 크로스 컨츄리 비행을 자주 다니기도 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일들이 있다..


혼자서 비행하고 있었는데 화장실엘 가고 싶어졌다. 점점 급해지더라고.. 지도를 보니,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작은 비행장이 있었다. UNICOM을 운영하는 곳이었고.

씨~웅 그곳에 내려 주기장으로로 몰고 간 후 엔진을 정지하자마자 공항에서 흔히 보는 노란 카트트럭을 몰고 직원이 왔다. 그리곤 무슨 도움이 필요하냐고 묻는데, 'Sir'을 꼭 붙여 말한다. 조그만한 동양애인데도 조종사에 대한 존칭을 꼬박 붙이는게 인상적이었다. 화장실까지 그 카트트럭에 태워다줬지..

소변을 시원하게 보고 다시 공중으로 날아 올랐다~


어느 날은, 여럿이서 함께 타고 작은 비행장으로 날아갔다. 그 비행장의 얼마 옆에는 고속도로 휴게소가 있었는데, 그 휴게소는 고속도로 위로 지어진 특이한 구조였다.

비행기를 주기해 놓고, 그 휴게소로 걸어가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비행하면서, 이해 안되던 계기비행도 점점 알게되고, 그러다 계기비행 Rating을 통과했다.. 1990년 여름. 야호~

경식이도 자가용면장을 취득했지. 엄청 기뻐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엔 하와이를 경유하는 여정으로 변경하였다. IFR 면허를 취득했다고 영미 아줌마께 연락드리니 맥케이 아저씨도 너무 좋아하신다며 귀국길에 꼭 하와이를 들렀다 가시라고 그러시기에..


그 당시 여정을 변경하려면 항공사로 전화해애 했는데 엄청 번거로왔다. 통화대기 시간이 엄청 길었었지..

우린 Joplin 공항터미널의 공중전화에서 1-800 전화를 이용했었다. 항공사에 통화하려고 그 공중전화를 거의 전세내어 썼네.. 한국에 연락할 때도 그 공중전화로 콜렉트 콜을 걸었고..

그 당시엔 비행기 표가 종이로 되어 있었다. 뒷면이 빨간색으로 되어 있는...

요즘은 이-메일로 여정을 통보받고 탑승권은 QR 코드로 받곤 하는데 30 몇 년 사이에 세상은 엄청나게 변했다..


하와이 공항에 내리니 맥케이 아저씨와 영미 아줌마가 반기신다. 아저씨가 근무하시는 히캄 미공군기지에 들러 구경을 하고 Wheeler 비행장으로 가 경비행기를 빌려 하와이 오하우섬을 한바퀴 짜~악 돌았네. 계기비행(IFR) 자격이 있으니 이젠 구름 속에도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곤 다시 한국행. 항공대 기계과 3학년 2학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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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allonboard7654/vid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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