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기 면허증 따러 미국으로... #3

세번째 과정, 사업용조종사 면허(CPL)

by 체스터 Chester

90년 여름방학 동안 미국에서 계기비행 과정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항공대 항공기계공학과 3학년 2학기 생활이 시작되었다..

또 다시 미적분을 따지는 공학의 세계로...


수도전기공고에 다닐 때는 대학에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고등학교 동창들 대부분이 그랬듯이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었으니..

우리가 스스로를 '가난한 집의 천재들'이라고 부르기도 했었지. 입학 지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중학교 때 상위 10%에게만 주어졌으니 그럴만도 하다.. 똑똑한 아이들이 참 많았다..

그 당시 수도공고는 독특한 교육철학이 있는 학교였다. 대학진학을 목표로 하지 않기에 인성교육을 제대로 시키고자 하셨다. 교장선생님이 엄청 강조하셨지.

국어 시간엔, 교과서 공부보다 신문사 주간으로 은퇴하신 분을 모셔 한문 사자성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러다보면 인생에 대한 얘기로 넓어지게 마련이었고..

영어 시간엔, 미국 미시간(Michigan)대학에서 출판한 영어회화책으로 어학실(Lab)에서 회화 학습을 했다... 80년대에 어학실이 있는 고등학교가 얼마나 되었을까? 미국인 원어민 교사도 2명 있었다.

민병철 생활영어 책을 기준으로 시험을 보기도 했었고.. 완전 실생활 영어학습이었지. 발음을 그 때 잡을 수 있었으면 정말 좋았을텐데.. 그 시절엔 그걸 중요하게 여기질 않았었으니..

수학 시간엔 어떻게 했었는지 별로 기억이 나질 않네... 미적분은 커녕, 통계에 대해서도 다루지 않았었다..

음악 시간엔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셨었지.. 스피커 시설이 엄청 좋았고, 세계의 유명한 클래식 음악은 다 들었던 듯 하다.


미시간대학(Univ. of Michigan at Ann Arbor)에서 펴낸 고등학교 때의 그 영어회화책 때문에 미시간은 어떤 곳일까 늘 궁금했었다. 캐나다로 이민하고 보니 우리 주(온타리오주) 바로 옆의 미국 주가 미시간이었다.

시카고에 오가며 두 번인가 앤 아버(Ann Arbor)에 들렀던 것 같다. 어릴 때의 추억을 되새기기에 좋은 도시였지.


수도공고에서 그런 "진짜" 공부를 하고 울산화력발전소와 영광원자력발전소에서 몇 년간 터빈(Turbine) 정비직으로 일했으니 "학교" 공부와는 아주 거리가 먼 삶이었다. 대졸사원과의 차별이 싫어 나도 대학 졸업장을 따자고 뛰쳐 나와 대입학원에서 10달간 공부했던게 "학교(원)" 공부의 다였지...


공대 3학년 2학기. 수학은 점점 어려워지는데, 수학이 딸려 참 고생을 많이 했다. 수학을 잘 하는 친구들한테 많이 배웠네. 특히 범신이가 자신있게 설명을 잘 해주었어.


학교의 전공 공부와 함께 개인적인 비행공부를 계속했다. 다행히 사업용 면장에선 자가용 면장과 중복되는 내용이 많았다. 하지만 필기시험집은 달달 외워야 했지. 미국에 가자마자 필기시험을 치뤄야 하니.


그러던 어느 가을날 이었다. 날씨가 화창한 날이었는데, 열심히 강의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창밖이 뭔가 어수선했다.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강의실 안으로 다 들릴 정도.

밖에 나와보니, 항공대 실습 비행기 한 대가 날고 있었는데 랜딩기어 한쪽이 없어진 상태였다. 오 마이 갓.. 그날 문수가 솔로비행을 할거라고 들었었는데... 혹시 문수인가?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문수가 맞네...

이정모 교수님이 다른 비행기를 몰고 공중에 올라가 문수와 나란히 몇 번 착륙 연습을 했다.. 그리곤 문수 혼자 시도하여 착륙에 성공. 우린 박수를 치고 환호했었다. 한쪽 다리가 없이~~ 휴~

문수가 단독으로 이착륙 연습(touch & go)을 하다, 활주로에 있던 장애물을 쳤다고 한다.

정말 시껍했던 하루였다.


문수는 경상도 머스마로 동갑인데 84학번 복학생이었다. 요리를 잘하는 문수의 자취방에서 여럿이 같이 먹곤 했다.. 수색역 앞에 살다가 항공대 뒷동네로 이사했었지.

축구, 야구, 족구 다 잘했다. 그 땐 족구를 참 자주했었는데 문수가 훨훨 날았었다..

문수는 기계공학과를 다니다 홍종, 명수와 함께 3학년 때 항공운항과로 전과하여 비행생활을 시작했고, 대한항공에 입사해 꾸준히 다니고 있다. 지금도 B777을 몰고 있고.


시간은 빨리 흘러 벌써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다.

나와 다른 한 명(이름이 기억 안나네. 키 큰..), 이렇게 둘이서 미조리주 Joplin의 Mizzou Aviation으로 출발했다.

이번에도 유나이티드(United) 항공. 역시 여러번 경유해야 했다. 김포-샌프란시스코-콜로라도 덴버-미조리주 스프링필드.. 그 다음엔 버스로 Joplin.


덴버에서 스프링필드로 향한 비행기가 착륙을 시도하다 공중으로 다시 솟구쳐 올라갔다. 두 번 더 시도 후, 기상(눈) 때문에 덴버로 돌아간다고 방송이 나왔다. 덴버에 도착하니 유나이티드항공에서 숙소를 잡아줘 그 날 밤을 거기서 묵었고.

그 다음날, 전날과 같은 시간에 같은 편의 비행기에 올랐다.. 이번에도 스프링필드에 착륙하지 못했다. 그리곤 미조리주 북쪽의 칸사스 시티(Kansas City)에 내렸다. 그리곤 유나이티드에서 마련한 버스를 타고 밤새 달려 스프링필드 공항에 도착했네..

덴버로 회항했던게 두 번였을 수도 있다. 유나이티드항공에서 하룬가 이틀을 재워줬던 걸로 기억이 나는데 확실하지가 않네.. 이래서 바로바로 적어놓고 해야 하는건데...


그 사이 언젠가, 공항 터미널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같이 갔던 그 친구가 담배를 피기 위해 건물 밖으로 나가려다 비상대피용 문을 열고 말았다. 문엔 비상용이라고 빨간 글씨로 써 있었건만... 곧 알람경보가 요란스럽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잠시 후 공항경찰 여러 명이 출동했고.

그 애는 영어에 익숙하지 않았기에 경찰에게 좌초지정을 내가 설명하고 겨우 상황해제 된 적이 있었다. 챙피해 죽는 줄 알았다. 그 구역에 있던 모든 승객은 우리 둘을 쳐다보고 있고..


스프링시티 공항에 도착한 다음 그레이하운드 버스터미널까지 가야 하는데, 대중교통이 마땅치 않았다.

할 수 없이 택시를 탔는데 차가 눈에 빠져 한참을 고생했었다. 차에 오르자마자 '이런 날씨엔 눈에 빠져 고생하는 띨빵한 운전자들이 많다'며 이 말 저 말을 늘어 놓던 기사가 자신의 차를 눈에 빠뜨렸지.. 한 겨울에 땀을 뻘뻘 흘리며 간신히 끌어 냈다.

간신히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최종 목적지인 Joplin에 도착했다.


여름에 왔다가 겨울에 다시 온 나를 Mizzou Aviation 사람들이 엄청 반겼다.

그런데 사장 왈, 그 해의 날씨가 너무 좋지 않아 방학기간 안에 마칠 수 없을거라고 여겨지니 다른 곳을 찾아보란다.. 헐...


희망을 안고 멀리 왔건만 앞이 캄캄해졌다.

그래도 면허를 따야지. 큰형이 어떻게 번 돈인데...

한국의 영지형한테 연락하고 아는 분들에게 연락했더니, 캘리포니아에서 비행훈련 중인 군출신 선배를 소개 받을 수 있었다. 그 분한테서 LA에서 비행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연락처도 받게 되었고.

며칠 사이에 정보를 수집하고 결정을 내리고 이동까지 해야 하니 피가 마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중하고 넉넉하지 않은 돈이 질질 새고 있으니..


대한항공 객실승무원을 그만두고 조종사 면허증을 따기 위해 LA에 벌써 와 있던 종철 형과 통화 후 LA로 가야겠다고 결정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LA 공항에서 종철 형을 만나 같은 하숙집에 머물게 되었고...

그 때 미국이 이라크와 전쟁을 하고 있던 걸프전 모습이 하숙집 TV에 매일 중계방송 되고 있었다.

그 다음 해, 종철 형은 제주도의 대한항공 기초비행훈련원에 입소했다. 나랑 그 때 제주도에서 만났었지. 그런데 신체검사에 이상이 발견되어 훈련 중 중도 퇴소되고 말았다. 형은 고향인 대구에서 식당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종철이 형 소개로 LA 밴나이스(Van Nuys)공항의 Flying Club에서 비행을 시작했다. 제일 렌트비가 싼 파이퍼 토마호크(Piper Tomahawk) 2인승 짜리로..

화면 캡처 2021-10-16 135336.png 파이퍼社 토마호크(Tomahawk)

비행 시간을 쌓아야 하기에 그걸 타고 샌디에고 쪽으로 비행하며 탑건 영화에 나온 미라마 해군비행장을 지나쳐 가기도 했다. 동쪽의 계곡(Valley) 사이를 통과해 지나 가기도 했고, 근처의 산타 모니카 비행장에서 ILS 연습을 하기도 했다. 혼자 타니 바람이 세게 불면 비행기가 엄청 흔들려 겁이나 일찍 내려 오곤 했지..

샌디에고엘 갈 때 LA 공항을 통과해야 했는데 그냥 지나갔다. 그리곤 돌아왔더니 LA 공항을 지나갈 땐 특별한 관제 절차가 있다면서 그걸 지키지 않고 다녀온 경우는 처음봤다고들 그랬지.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 제일 용감했네..


쌍발 엔진(Multi Engine) 비행기 경험이 필요하여 롱비치(Long Beach) 공항에서 낡은 비행기를 타기도 했다. 롱비치 부두에 있는 퀸 메리(Queen Merry)호 상공으로 날라다니며..

파이퍼 아파치(Apache)란 이 쌍발 비행기는 나와 나이와 같았다. 물론 그 땐 20대.. 비행할 때마다 조종실에 기름이 새서 그걸 닦는 티슈가 챙겨져 있는 비행기였다. 대신 렌트비가 많이 저렴했고.

그 비행기를 탈 때마다 결제했는데 어느날은 돈을 안냈다고 주인이 박박 우겨 대판 싸우기도 했었네.. 그 후론 그 비행기와는 바이바이 했다.

화면 캡처 2021-10-16 111258.png 파이퍼社 아파치(Apache)



Van Nuys Flying Club에는 스카이 다이빙을 즐기는 한국인 여자가 한 명 있었다. 재미교포인데 거기서 자주 한다고 했다. 씩씩한 여성~

주말마다 비행을 배우러 나오는 재미교포 배관공도 있었고..


LA과 그 인근에서 비행시간을 쌓고 사업용 면허시험을 통과했다.. 그 때가 1991년 2월 말.

기분이 정말 날아가는 것 같았다~~~

초기에 날짜를 까먹긴 했지만 방학 기간 안에 마칠 수 있어 천만다행이었다.. 휴우..


Van Nuys 근처의 비행장에서 자가용 면장 과정을 하고 있던 항공대 학생 승범이가 자기네 이모집으로 초대했다.. 그 날이 LA 갈비를 처음 접한 날이었는데 이래서 LA 갈비구나 싶더라고..

그 이모 댁의 승범 사촌 여동생은 아주 미인이었다. 글래머.

나중에 대한항공에 다닐 때, 그 사촌 여동생이 한국에 나온 적이 있었지. 이쁘긴 한데 내겐 부담가는 스타일.


쌍발 비행기를 타는 등으로 예상보다 지출이 컸다. 중간에 돈이 떨어져 작은형에게 부탁해 긴급 송금을 받기도 했다. 작은형에게도 신세를 많이 졌지..


과정을 다 마치고 조종사 날개(Wing) 뱃지를 하나 샀다. 짧은 기간 동안 면허를 딴 내 스스로 대견스럽기에.. 한국에 와선 그 윙을 꽂고 다녔었네.

화면 캡처 2021-10-16 102249.png


이렇게 해서 그 당시 한국 대학생으론 처음으로 FAA 사업용 면허증(CPL)을 갖게 되었다. 후원한 형들도 당연히 무척 자랑스러워 했다.


조종사 면허 취득이 훨씬 수월해진 요즘, 사업용 조종사 면허까지 따는데 보통 1년~1년 반 정도 걸린다고 하던데, 나의 경우엔 방학기간 3번을 이용했으니 6개월이 걸린 셈이다. 물론 그 기간은 미국에 있을 때만이고, 한국에서 자습하고 준비했던 기간은 포함되지 않았다.

어쨋든 엄청 짧은 기간에 면허증을 다 딴거지..


항공대 항공운항과를 졸업하면 (겨우) 자가용 조종사 면장을 따는데, 기계과 놈이 (훨씬 높은 단계인) 사업용, 그것도 미국 FAA 걸 따왔으니 학교가 시끌시끌했지..

항공대에 출입하는 기자의 귀에도 들어가 91년도 언젠가 스포츠지에 커다랗게 실리기도 했다.. 어떤 신문였는지는 기억이 안나네.


사업용 조종사 면허를 따고 오자마자 시작된 공대 4학년 생활.

미국에서 돌아오며 챙겨왔던 전세계 항공지도를 테이블에 펼쳐놓고 명수와 우리의 꿈을 하늘 높이 펼쳤었다.. 후원사를 찾아, 둘이서 경비행기로 전세계일주를 해보자고.

가장 첫 단계로 미국 대륙을 크게 한바퀴 도는 계획을 세웠고, 'Pan America 비행'이란 기안서를 만들어 대한항공 홍보실로 찾아갔다. 그 때가 여름 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을 시기였네..

대한항공 직원은, 회사와 컨셉이 딱 맞는데 그 해의 예산 집행이 이미 끝났단다. 아이고... 하긴 우리가 계획을 준비하며 시간을 너무 오래 끌기도 했다. 우리도 처음 해보는 일이었으니..

여름 방학 즈음부터는 취업준비로 바빠져 이 Pan America 비행 계획을 더 이상 진행을 하지 못했다. 세월이 지나도 참 아쉽다.


몇 년이 흘러, 재미교포 이주학씨가 대한항공의 후원으로 전세계 경비행기 일주를 하였다고 한다. 중앙일보사도 후원사였고..

그 때가 1998년. 명수와 내가 계획했던건 1991년이었는데... 젊은 충청도 두 촌놈의 포부는 참 높고도 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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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allonboard7654/vid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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