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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스터 Chester Oct 31. 2021

ALPA-K를 창립하던 시기..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

98년인가 쯤에, 대한항공에서 같이 근무하던 김종오씨에게서 연락이 왔다. 조종사협회를 만들려고 하는데 같이 일해보자고...

종오씨가 어떻게 나를 골라 연락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난 그리 활동적인 사람이 아니었는데...


90년대 당시에 일했던 조종사라면, 여러 건의 사고를 거치며 회사도 조종사도 바뀌어야 한다는건 모두 공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젊은 부기장 여러 명이 모였고 긴 대화 끝에 직업 전문성 함양을 목표로 조종사협회를 설립하자고 결론 내렸다.

고양이 목에 자신이 방울을 직접 달기보단 누군가 해주면 좋겠다고들 여기며 회사에 찍힐까봐 주저하던 시기였는데 대단한 친구들이었지.

나야 이민을 결심하고 캐나다 영주권 비자를 받아 놓은 상태였으니 참여하는데 그들보다 부담이 훨씬 적었다.


참가자들이 모여 서울 방화동에 작은 사무실을 얻었고 조종사협회 일을 보기 시작했다.

한 쪽에서는 사단법인 설립인가를 받기 위해 회장님(대한항공 이성재 기장님)이 정부 쪽으로 다니셨고, 나는 조종사협회 조직의 하나인 시설본부를 맡았다. 공항시설과 항공로 등을 다루는 부서로 그 당시 한국의 관문이었던 김포공항부터 다뤄보자고 했다.


사실, 조종사는 항공시설을 이용하는 이용자인데 우리가 시설의 이상 여부를 다룬다는 자체부터 어려웠다. 뭐가 기준인줄 알아야지. 요즘처럼 인터넷으로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으면 좋았으련만 그 당시엔 해당 책을 찾아 읽어가며 검토해야만 했었다.

그나마 비행하며 적어 놓았던 문제점 메모들이 있어 다행이었다. 이용자로서 불편하게 느꼈던 점들에 대한.. 그러고 보니, 불편하고 어려운 한국 도로에 대해 책을 발간하고 유튜브 영상을 게재하고 있는 요즘의 나도 예전과 똑같음이 느껴진다. 한국에 올 때마다 도로 어디가 어떻게 문제인지 메모를 해 놓았기에 책을 쓸 때 그리 어렵지 않았었지..

김포공항에 대한 내 메모에 더해 대한항공 운항승무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물론, 이것조차 별로 응해주질 않았었지.. 그 당시 주류였던 군출신 빨간마후라 조종사 선배분들, 사나이다움은 찾아볼 수 없고 이런 데서까지 회사의 눈치를 보냐며 참 비열하게 느껴졌었다..


나와 몇 명이 노력하여, '김포공항 문제점'을 정리하였고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A4 용지 크기로 꽤 두툼했지..

아쉽게도 그 보고서를 갖고 있지 못하다. 조종사협회에는 남아 있으려나 모르겠다.


발간한 보고서를 대한항공 여러 부서에 돌리고, 아시아나 쪽으로도 보냈다.

그 당시엔 아시아나 조종사들의 참가가 없을 때였네. 단 한 분, 이중희 기장님을 제외하곤..

그리고 교통부와 서울지방항공청(서지항) 등에도 발송했다.


얼마 후 서지항에서 연락이 왔다. 보고서 내용에 대해 설명을 해 달라고..

그리하여 이인구 조종사협회 사무장님하고 몇이서 김포공항 터미널에 있던 서지항 회의실로 찾아가, 항목별로 설명하였다.

서지항 측에서는, 서지항 역사상 조종사 집단으로부터 피드백을 처음 받는거라고 매우 반가와하였다. 공항 등의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 그 당시 존재하던 두 항공사에 물어보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사무실 담당자들이 아주 형식적으로 회신해 왔었다고 그러더구만.


우리와 간담회를 갖은 얼마 후부터 김포공항에 있었던 문제점들이 수정되기 시작했다.

Airside의 안내판(Airport Signage) 위주로..


조종사협회가 설립인가를 받은 후였는지 모르겠는데, 인천공항 건설본부에서 연락이 온 적도 있었다.

새로 건설하고 있는 인천공항 터미널 지붕이 유리인데, 이 유리에 햇빛이 반사하여 조종사들의 시야를 방해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대해 자문해 달라고..


조종사협회의 설립인가에 도움을 주고자, 홍콩 조종사협회 기장 두 명이 방화동으로 방문해 만났던 적이 있었다. 캐세이 퍼시픽(Cathay Pacific) 기장들이었지..

일본에서도 기장 한 명이 방문했었다. 전일본공수(ANA) 기장분.

우물 안에서 항공사 생활을 했던 우리들에게, 그들을 만난 건 견문을 넓히는 좋은 기회였었다..


이렇게 조종사협회 일을 하며, 나름대로 한국의 항공안전도를 높이는데 조금이지만 기여했다는 보람을 느꼈었다. 젊은 날을 활발하게 살았다는 증거이기도 하지... ㅎㅎㅎ


이중희 아시아나 기장님을 제외한 조종사협회 설립 참가자들은 모두 대한항공 조종사들이었고, 협회가 설립인가를 받은 후 거의 대부분이 대한항공 조종사노조를 설립하는데 뛰어 들었다.. 나와 몇 명만 빼곤...

노조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해하지만 한국 노조들의 과격성을 보아왔기에 거부 반응이 더 컸었지.. 세월이 지난 요즘은 민노총 세상이 되어 버렸어..

회사에서는 조종사협회 보다 노조 설립에 모든 신경을 쏟아붓고 있었지. 조종사협회야 직업 전문성에 대해 다루는 것이니까 뭐라고 할 수 없는거고.

그런데, 나는 노조 설립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았지만 대한항공 인사부서 담당자들은 나 또한 노조 멤버, 즉 요주의대상자로 여긴 듯 했다.. 언젠가부터 내 뒤를 누가 따라다닌다는 듯한 느낌을 자주 받았었지. 회사 안에 있을 때..


2000년 초, B777 기종 전환교육을 받고 있었는데 의무계약기간이 끝났다고 인사부 직원이 나에게 먼저 알려줬다. 그 당시에, 나는 의무계약기간이 몇 년인지 알지 못했었건만(입사할 때 계약 기간을 공란으로 남겨뒀었다) 의무기간인 7년이 지났으니 언제든지 사직해도 된다고 그 직원이 알려주더라고.. 회사 복도에서 만났던 것 같은데.. 그 날도 나를 따라 왔던 듯한 느낌이었지.

B777 한정자격(Type rating)을 받으면 의무기간이 늘어난다고 그 담당자가 알려줬고, 내 B777 기종 전환교육은 거기서 중지하게 되었다. 필기시험만 보면 되는 거였는데.. 그리곤 얼마 후 시끌시끌했던 대한항공 생활을 마치게 되었지..


그렇게 출범했던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ALPA-K).   

중국에서 일할 때까지는 나도 회원 자격을 유지했었건만 언제부턴가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해외에 있으니 그 필요성이 줄어들었기 때문..

한국으로 돌아왔기에 재가입을 해야 할텐데 세월아 내월아 하며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다. 설립 참가자에 대한 혜택 뭐 없소??


ALPA-K는 얼마 전부터 김규왕 기장이 이끌고 있다. 대한항공 제주기초비행원에 함께 입소했던 잘 생긴 조종사 김규왕 기장이 맡은 후 정기적으로 ALPA-K 잡지를 발간하고 있다.

면허상실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한국 공항에 설치되어 있는 좌표 표지판은 조종사들이 사용하는 방식과 다르던데 ALPK-K에서는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시설본부를 맡았던 시기라면 항공당국에 연락하여 바꿔달라고 했을텐데...

김포공항에 14번 게이트의 좌표 표지판. 조종사들은 사용하는 좌표는 N37 33.5 E126 48.1로 형식이 다르다.
시뮬레이터에서 찍은 사진. 여긴 조종사 친화적으로 나오네..


요즘 비행하다 보면 ALPK-K 표식을 비행가방에 꽂고 다니는 조종사들을 흔히 보게 된다. 설립 초기에는 감히 상상을 할 수 없던 모습이여.. 뿌듯뿌듯~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의 무한한 발전을 기원한다.


        


                    

https://www.youtube.com/@allonboard7654/vid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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