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나라에서의 배스킨 라빈스 31

캐나다 런던에서 BR 점포 2개를 열었던 우리 가족 이야기

by 체스터 Chester

우리집 캐나다 생활에서 배스킨 라빈스가 빠지면 안되지... 이 또한 잊어지기 전에 글로 남겨 놓자..


캐나다 이민 초기에 어떻게 해야 하나 이것저것 참 많이 알아봤었다. 샌드위치 가게를 운영해볼까부터 시작해서 토론토 피어슨 국제공항(Pearson Airport)의 항공기 제빙작업(De-icing)회사에 취직도 했었고, 볶음밥 가게에서 잠시나마 일해보기도 했었다. 여전히 한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사업을 하고 있는 중이었지만 나도 캐나다에 정착해야 할 필요성이 더 높아지고 있었다. 자라고 있는 딸내미와도 함께 있어야 했고..

그러다 우연히 BR이 대화 소재로 떠올랐지. 이 추운 캐나다에도 배스킨 라빈스가 있더라..

말 나온김에 캐나다 배스킨 라빈스 회사에 연락했고, 미시사가(Mississauga)의 김사장님을 소개받았다.. 김사장님은 미시사가에서 BR 가게 3곳을 운영하고 계셨는데 그 중 한 곳은 캐나다 BR 부동의 1위 점포였다. 그 땐 우리가 브램튼(Brampton)에 살 때였고, BR 본사의 마이클 구딩에게 프랜차이즈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실질적인 내용은 김사장님께서 자세히 해주셨고 BR 가맹점주가 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 때부터 어디로 장소를 정해야 할지 연구에 들어갔다. BR 캐나다 본사에서 가맹점별 매출액 자료를 받고 토론토 광역시(Metro Toronto) 전 지역을 돌아다니며 어떤 곳에 가게를 열어야 할지 분석해 보았다. 분석에 분석을 할수록 답은 분명했다. 캐나다의 쇼핑 스타일이 파워센터(Power Centre) 형식으로 바뀌고 있으니 몰(Mall) 보다는 파워센터로 가야겠다는 거였다. 그런데 토론토 동쪽 끝인 오샤와(Oshawa)로부터 서쪽 끝인 밀튼(Milton)으로 다녀봐도 적절한 장소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 부부의 생각이 런던까지 넓혀졌고 런던을 여러 번 오가며 상권 분석을 해봤다. 바로 이곳이여~ 우리 여기로 이사하자~.


런던에 BR 가맹주와 점포 몇 군데가 있었으나 10년 전 쯤 사라졌다고 한다. 그 이유는 모르겠네..

런던 시장을 분석해 보니 북서쪽의 Hyde Park & Fanshawe Parkway 거리에 새로 들어서는 파워센터가 최고였는데 터만 닦아 놓은 상태라 앞으로 2년 정도를 더 기다려야 했다. 그 동안 미시사가의 김사장님께 부탁드려 하트랜드(Heartland) 쇼핑센터의 김사장님 가게에서 무급으로 일하며 실무를 배워갔다. 아지매는 캘리포니아로 가맹점주 교육을 다녀왔고.. 아, 그 기간에 나는 딸내미를 한국으로 데려가 미원초등학교에 다니게 했었네. 교장선생님의 특별허락을 받고 2주 동안 1학년에 청강생으로 다니며 한글을 마스터했지. 장한 딸내미... 캐나다에선 2학년 1학기였었는데.

김사장님 내외, 사모님 동생(Sophie)한테는 너무너무 신세를 많이 졌다. 사모님과 같은 성씨라 더 잘해주셨기도 했고... 우리 부부가 런던으로 이사하기 위해 김사장님네 가게를 그만 두던 날, 사장님이 돈을 담은 봉투를 주셔서 너무 감동하기도 했었다. 우리에게 생생한 일을 경험하게 해 주신 것만해도 엄청난 고마움이었는데.. 감사합니다~!


런던의 Hyde Park & Fanshawe Parkway 거리에 들어서는 파워센터는 캐나다에서 제일 큰 쇼핑센터 업체인 스마트 센터(Smart Centres)사 소속이었다. 전국 쇼핑센터를 리오 캔(Rio Can)과 양분하는 거대기업이었지..

예전에는 점포 계약을 BR 캐나다 본사가 해줬기에 가맹점주는 수월했다고 했다. 점포 위치를 정하면 본사에서 건물주와 해결해 주었으니. 그런데 우리가 BR에 합류할 시기에는 가맹점주가 알아서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단다. ㅠㅠㅠ

캐나다내 경력이 전무한 내가 이 회사로 연락하니 답변이 밋밋했다. 그래도 해야지. 이-메일과 전화, 그리고 회사로 직접 쫓아다니길 얼마나 했는지... 거의 1년을 들들 볶아 댄 듯 하네..

그러다 드디어 계약을 해주겠다고 담당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개인과는 거래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Smart Centres 회사랑 해결했다니.. 뿌듯뿌듯~~

담당자들끼리 협의하곤 노출이 더 잘되는 쪽으로 우리 가게를 재배치해 주기도 했다.. 신경을 많이 써주었지.

그 회사 담당자들이랑 얼마나 메일을 많이 주고 받고, 얼마나 쫓아다녔는지, 지금도 기억이 선~하네.


BR 본사에 계약 사실을 알려주었더니 막상 BR의 담당자는 그 위치에 허가를 못내주겠다고 했다. 파워센터임은 잘 인지했지만 완전히 새 동네라 데이터가 없다고..

그 담당자랑 싸우고 싸웠는데 자기는 승복을 못하겠단다. 거기에 질 내가 아니지. 그 장소를 관찰한게 2년인데... 나 또한 포기할 수 없는 장소라 해줘야 한다고 계속 강하게 요구했다. 그 길고 긴 말싸움은 한 쪽이 지지 않는 한 해결방법이 없어 보였건만...

결국 BR 캐나다 최고 책임자가 런던으로 직접 와 사이트를 둘러보게 되었고 내가 모든 책임을 진다면 허가하겠다고 했다. 나야 당연히 예스.. 그 동안 살펴본 바로는 반드시 성공하는 장소니까..


BR의 계약사를 통해 설계를 마치고, 런던 시청으로 허가 받으러 쫓아 다니고, 장비 발주를 내고, 인테리어 공사를 할 Contractor를 구해 공사를 하고, 간판업자한테 간판을 맡기고.... 드디어 그 가게를 오픈했다. 2006년 2월이었나??

자신이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심정에 아르바이트생을 한 명만 뽑아 놓고 오픈했는데, 오픈하자마자 난리가 났다... 우리 부부는 손목 보호대를 급하게 사다가 끼고 스쿠핑을 해댔다... 손목이 너무 아팠지.. 몰려드는 인산인해.. 아르바이트생은 우리가 가르쳐 줄 새도 없이 손님들을 처리하다 보니 저절로 익숙하게 되었다. ㅎㅎ

그러다 우리의 친구 페피(Pepe)네가 와줬고 큰 딸 줄리아(Julia)가 우리가게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 때 조안(Joan)의 도움으로 런던 지역신문에 우리 가게와 우리 부부의 스토리가 실렸다. 그 기사 때문에 내가 다시 비행으로 돌아오는 계기가 되었네.. 인생이란 참...


한국 BR에서는 본사에서 아이스크림 케잌을 만들어 배송을 하는데 반해, 캐나다 BR에서는 점주가 아이스케잌을 직접 만들어야 했다. 그러니 점포마다 다 제각각이었지.

미시사가 김사장님네는 사모님과 베트남인 여사님이 함께 만드셨는데 정말로 예쁘고 값나가게 잘 만드셨다. 베트남 여사님은 부자임에도 소일거리로 일하는 거였지만 아주 성심껏 일했다. 베트남인답게 손재주가 참 좋으셨지.. 사모님과 베트남 여사님의 실력은 막상막하였다. 북미 배스킨 라빈스 중에서 최고의 솜씨~!

울 아지매도 두 분한테 배워 아이스크림 케잌을 잘 만들었다.

케잌을 만드려면, 미리 해당 맛(flavor)의 아이스크림 통(Tub)을 크기에 맞춰 잘라야 하는데, 이런건 내가 했구나.. 자른 아이스크림 덩어리에 아이싱(icing)을 씌우고 냉동실에 넣어 더 얼리고.. 장식하고 무늬넣고... 맨 마지막의 글귀는 내가 거의 항상 썼다.. 아이싱으로 쓰는 글씨라도 글씨야 워낙 잘 쓰는 편이니.. ㅎㅎㅎ


아이스크림 배달이 1주일에 한번씩(겨울엔 2주 간격), 대형 트레일러 트럭으로 운반되어 왔다. 여름철에는 100통 이상씩 받아 재워 놓아야만 했지만 가게 냉동실이 커서 다행이었다.. 한국 BR 가게를 보니 몇 통씩도 갖다주곤 하더라고.. 한국 BR 가게는 북미의 BR 가게와 규모부터 차이가 엄청나다..

아이스크림 통(Tub) 재고 관리가 꽤나 어려웠다. 냉동실에 매번 들락거릴 수 없어서 우리 가게에서만의 방식으로 관리했지. 컴퓨터에 재고관리 프로그램을 깔아놓고 아이스크림 통을 꺼내올 때마다 통에 써 있는 숫자(4자리)를 입력하도록 했다.. 영하 20도의 냉동실에 들어갈 횟수를 줄이게 되었지만 그래도 발주 전에는 냉동실에 들어가 재고점검을 해야했지.. 스키복에 스키모자, 두툼한 장갑을 끼고..


아이스크림 가게에는 바나나가 많이 필요했다. 바나나 선데이(Banana Sundae), 바나나 로얄(Banana Royale), 바나나 스플릿(Banana Split) 처럼 바나나로 장식하면 손님들도 좋아하고 더 비싸지기도 하기에..

가게를 운영할 땐 좋은 바나나를 고르는 선수였다.. 샘스 클럽이나 코스트코 또는 가까운 수퍼마켓에서 사왔었다.


우리 가족은 코스트코에서 파는 크로와상을 좋아했는데, 이 크로와상을 반으로 갈라 거기에 자모카 아몬드 퍼지(Jamoca Almond Fudge) 아이스크림 두 스쿱(Kiddy scoop으로) 정도 넣어 먹으면 환상적이었지.. 이건 BR 점주만이 느낄 수 있는 맛이리라..

아이스크림 중에서는 Peanut Butter n Chocolate과 피스타치오 아몬드를 좋아했건만 한국에는 Peanut Butter n Chocolate 맛이 나오지 않아 그립다. 캐나다에서는 베스트 셀러 중 하나라 항상 비치해 놓는 건데..


가게가 바쁜 날엔 우리 똥깡님도 함께 일한 적도 많았다.

초등학생이라 힘이 안되 스쿠핑은 할 수 없었지만, 계산대의 금전등록기를 다루는데는 아주 능숙했다. 키가 안자라 발받침을 놓고 거기에 올라가 신나게 일했지. 조잘거리기를 좋아하는 녀석이라 손님들과도 아주 잘 어울렸다.

이 녀석이 지금도 그 때를 기억하려는지 모르겠네..


아이스크림 케잌 주문이 자주 전화로 왔다. 울 아지매는 이민와서 영어회화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전화 주문도 척척 잘 받았다. 신기신기.. 전화로 주문을 받는게 까다로운 거였는데... 주문 양식이 있어도 꽤 신경이 쓰이거든..

효율을 높이려고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어 그걸 활용하기도 했다. 가끔씩 그 홈페이지를 통해 주문이 들어오기도 했네..


어쨌든 그 가게는 너무너무 운영이 잘 되었다. 손님들도 너무 나이스 했고..

캐나다 BR은 매월 실적 순위를 발표했는데 이 가게는 10위권에 거의 상주했었다. 물론 빠질 때도 있었지..


우리 가족이 런던으로 이사가니 몇 집 건너에 한국인 가정이 있었다. 그 집 가장은 나와 같은 대학을 나온 동갑내기였고. 물론 내가 대학을 5년 늦게 들어갔으니 만나본 적은 없던 사이였지만.. 자동차 부품 설계회사에서 일했었는데 그 친구가 갑자기 암에 걸려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고, 남편이 떠난 그 아주머니(XX엄마)에게 우리 가게에서 일할걸 제안했다. 아무래도 일을 하는게 나아보였기에..

그러다 두번째 가게를 열게 되어 XX엄마에게 첫번째 가게의 매니저를 맡아 달라고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내가 비행 생활을 재기하기로 결정했지. 아무리 XX엄마가 매니저로 일을 해도 울 아지매 혼자서 두 가게를 운영하기엔 너무 힘들었다. 그렇게 고민을 하다 XX엄마에게 첫번째 가게를 사겠냐고 물었더니 그렇게 하겠단다. 매매 가격을 얼마로 해야할지 몰라 미시사가의 김사장님께 상담을 받았고 매도 가격에 대해 XX엄마도 동의했다.. 그런 결정을 하고 XX엄마는 미국으로 건너가 BR 가맹점주 교육을 받고 돌아왔고 첫번째 가게를 넘겨 주었다. 내가 셋업하고 운영하던 방식 그대로였지. 기존의 데이터를 모두 포함하여..


[첫번째 가게 오픈하고 며칠 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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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가게가 너무 잘 되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런데 BR 본사에서는 가게를 더 열라고 자꾸 압력이 들어왔다. 런던시 전체를 우리 계약 범위에 넣어 두었거든.

시간이 날 때마다 좋은 점포자리가 있는지 알아보러 다녔다. 마음에 드는 자리가 계속 나타나질 않아, 현재로서는 열 수 없다고 BR 본사에 응답하길 몇 번이나 했던가??


그러던 중 예전에 봐왔던 쇼핑센터에 빈 공간이 났다고 알려왔다.. 여기라면 괜찮을거여..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두번째 가게는 위치가 별로였는지 신통치 않았다. 내 눈에 안개가 씌인 상태에서 결정을 한 듯 하였다. 작은 규모의 성공이라도 성공을 거두면 그 다음에 실수하기가 쉽다고들 하는데 그게 나에게도 적용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지..

UAE의 Midex Airlines 휴식기에는 집에 돌아와 두번째 가게를 돌보곤 했는데 활력을 찾지 못한 가게에 계속 매달리기엔 바람직해 보이질 않았다. 여러 마케팅 방법을 적용하며 우리의 판단이 적절한지 검토해 보고 최종적으로 가게를 닫기로 결정했지.

캐나다의 경우, 점포 임대를 10년 기간으로 계약하기에 임대 승계가 가장 걱정스러웠지만 다른 업종으로 쉽게 인계되었다. 천만 다행이었다..

큰 장비들은 세인트 토마스(St. Thomas)의 편의점 사장님네 창고로 옮겨 보관하다가 조안(Joan)이 식당을 개업한다고 하여 기증했다. 작은 장비들은 필요로 하는 분들께 전했고 아직도 POS 장비를 포함한 몇몇은 집 지하실에 남아 있다.


[두 번째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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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BR을 운영해 보니 주위에서 좋게들 평가해 주셨다. BR 점주라고하면 반응이 아주 좋았지.

미국으로 국경을 넘어가던 어느 날, 직업이 뭐냐고 미국 이민국 공무원이 묻기에 BR 프랜차이지라고 했더니 여권 심사를 하다말고 아이스크림 얘기를 늘어 놓더라고.. 내 차 뒤에 다른 차들이 쫘~악 서 있어요, 아저씨...

캐나다에 오면 우리 가게에 들르라고 했더니 박장대소를 하며 꼭 가겠단다..


방학 바로 전날엔 딸내미 학교에 아이스크림을 돌렸었다. 학교 전체는 아니고 딸내미네 반만..

손님 중에 미스터 킴, 미세스 킴을 찾고 고맙다는 말을 많이들 했었지.. 딸내미 기분도 최고였겠지?


아이스크림 가게라 겨울엔 당연히 잠잠해진다. 아주 고요한건 아니지만 가게를 열어둘만큼은 손님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조용한 겨울이라 문을 닫고 멕시코 캔쿤으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1주일간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잘 쉬며 충전하고 왔더니 BR 본사에서 연락이 왔다. 가맹점주 맘대로 문 닫고하면 안되는거라고.. 그랬나? 쏘리~ 몰랐어. 다음부턴 계속 열어둘께..

그런 적도 있었다. 그렇게 갔었던 멕시코 캔쿤.. 우리 가족의 겨울 일과로 정착하게 되었지. 추운 캐나다 겨울에서 벗어나 일주일만 머물다 와도 활력이 되살아 났으니.. 물론 가게는 열어 놓고 다녔다~


우리 가족은 지금도 BR 앞을 지날 때면 그냥 지나쳐지질 않는다. 참 신기하게도..

그리고 한국이나 미국, 캐나다, 중동 등등에 있는 BR 점포 아무데나 들어가서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는다. BR 매뉴얼보다 더 청결하게 가게를 관리하시던 미시사가 김사장님의 방법을 배웠고 우리 가게에서도 동일하게 해왔었다. 그러니 BR 가게에 딱 들어서자마자 그 가게의 청결도를 자동으로 평가한다... 우리 기준을 통과한 곳에서만 '피스타치오 아몬드 한 스쿱 주세요~'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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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allonboard7654/vid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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