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놈펜의 가빈식당에 들러 손칼국수를 먹으며 읽었던 한인 정보지, '캄푸치아 신문'.
첫 면에 이런 제목의 글이 실려 있었다. '앙코르 왓트 외국인 낙서는 아주 오래 전에 쓴 것'..
"아주 전"이라면 언제??
돋보기 안경을 휴대하지 않았기에 아지매에게 읽어 달라고 했다...
중간 쯤부터의 내용은 충격 그 자체였다..
"오래 된" 낙서란 약 400년 전인 1632년이고 그 낙서를 한 사람이 일본인이란다..
[그 낙서 모습. 그리고 내용.
출처: 요시아키 이시자와(Yoshiaki Ishizawa)의 자료]
그 내용을 옮겨 보면,
"나는 1632년 정월 이곳에 처음 도착했다. 내 이름은 모리모토 우콘다유 카즈푸사이며, 히슈(현재의 규슈) 출신으로 바닷길 수천리를 여행하여 이곳에 왔다.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영혼의 죄를 씻고 정화하기 위해 불상 네 점을 바치기 위해서다. 아버지인 모리모토 지다유의 안녕을 위해 글을 쓴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서도 쓴다. 1632년 정월 20일."
모리모토 우콘다유 카즈푸사(森本右近太夫一房)의 아버지 모리모토 지다유는, 에도 시대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 가등청정)가 거느린 가신 중 한 명이란다. 가토 기요마사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제2선봉장으로 침공했던 일본의 장수로 유명하지..
1632년이면, 1598년에 임진왜란이 끝났고 곧 청나라의 침략을 받아 조선은 암흑기와 마찬가지였는데, 일본은 어떻게 그 시대에 개인이 해외로 여행을 했으며, 불상 네 점을 개인이 봉헌할 정도로 경제력이 있었는지...
그리고, 1632년과 1636년 사이에 일본인 통역관 켄료 시마노는 캄보디아를 방문해 앙코르 왓트를 그렸다고 한다. 네델란드 선박을 타고 왔다고 하네.
[아래 그림은 요시아키 이시자와(Yoshiaki Ishizawa)의 자료에 나오는 것으로, 켄료 시마노가의 원래 그림을 1715년 경 다시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캄푸치아 신문의 내용에 충격을 받아 구글로 검색을 좀 해보았더니 더 많은 내용이 나온다.
일본인이 1612년에서 1632년 사이에 앙코르 왓트를 방문하고 남긴 낙서가 14곳이 있단다.
낙서를 남긴 일본인들의 출신지역은 여러 곳인데, 히고(肥後), 히젠(肥前国), 히라도(平戸), 나가사키(長崎), 사카이(堺), 오사카 (大阪)라고 한다.. 오사카는 워낙 잘 알려진 곳이고, 사카이는 일본 피치항공에서 교육을 받던 시절 자주 지나쳤던 곳이다. 오사카의 바로 남쪽에 있지..
얼마나 많은 일본인이 17세기 초반에 앙코르 왓트를 방문했기에 아직도 그 당시 글이 남아 있을까? 돌에 글을 새겨 놓은 것도 아니고, 잉크(먹물인지 모르겠다)로 써 놓은 것들이라고 하는데...
17세기 초반 1,500명 정도의 일본인이 캄보디아에 거주하고 있었다는 내용도 있다. 상인, 기독교인 그리고 사무라이까지.. 현재의 프놈펜과 피나루 지역 위주로..
기독교인들은 예수교 사제 3명이 관리했고, 그 사제들은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마카오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고 한다.
앙코르 왓트에 낙서를 남긴 것으로 유명한 모리모토 우콘다유 카즈푸사(森本右近太夫一房)는 1674년 교토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1632년에 앙코르 와트에 글을 쓰고 42년 후..
그 당시 일본은 일본의 선박으로 동남아 여러 국가로 항해하며 무역을 했다고 하네.. 당시 선박을 주인선으로 불렀고 무역허가 문서를 갖고 다녔다고 한다.
명나라의 정화가 원정에서 완전히 돌아온게 1433년. 그 후 중국은 해양 활동을 완전히 접었지만, 유럽 국가들에 의해 일본까지의 항로가 열려있었지.. 일본도 그 항로를 충실히 이용했었나 보다.
17세기 초, 일본의 동남아 무역은 최소 19개국이란다.
필리핀의 루손, 캄보디아, 태국, 남 베트남, 인도네시아 자바, 북 태국의 파타니.. 등등등..
그리고 그 곳마다 일본인 사회를 조성했는데, 보통 7천명 정도씩 거주했다고 한다.. 그 시절에 이렇게 국제적으로 살았었다니..
그러다 일본 막부 정부가 해상무역을 금지하면서 쇠퇴했다고 하네..
세계는 이렇게 돌아가고 있었는데, 조선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항상 들게되는 의아함...
임진왜란/정유재란을 겪고도 정신을 못차려, 1627년에 청나라에 침공당하고... 곧이어 병자호란까지 당하는 조선. 침략을 당하고도, 조선이 그렇게 무시했던 일본은 앙코르 왓트를 개인이 찾아 "낙서"를 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조상님들이지만, 한민족의 역사에서 '조선' 부분은 삭제하고 싶다.. 한글 창제 만 제외하곤...
한마디로 X신들이었지.. 내 조상님들이지만 객관적으로는 그렇게 평할 수 밖에 없다.
유교의 극단주의에 함몰되어 어쩌면 그렇게도 우매하게들 살았는지.. 시야를 드 넓은 외부로 돌려보질 못하고, 내부에서 자기들끼리 지지고 볶고 살았다. 나아진게 뭐가 있나?? 500년이나 존속했다는 정권의 말기에는 알거지 상태였다지? 인류 문명의 발전에 끼질 못했으며 자국민의 거의 절반을 노비로 삼았으니 더 말할나위 없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항상 주의깊게 살펴야 함에도 조선 시대부터의 한반도 거주민은 늘 암흑 속에 있었으니 그럴 수 밖에...
어쨋든 모리모토상이 앙코르 왓트에 남긴 낙서로 또 다시 충격을 받은 하루였다..
임진왜란 이전부터 일본이 멕시코와 무역을 했었다는 글과, 자신들이 만든 배를 타고 태평양을 넘어 미국을 거쳐 로마 교황청을 방문한 일본인 단체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19세기에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기념 촬영을 한 일본인이 있다는 글을 봤을 때 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https://www.youtube.com/@allonboard7654/vide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