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라오항공에서 일했을 때의 추억
숙소의 관리인 미스터 롬(Rome). 롬은 미국에서 산 경험이 있었다고 했지만 영어구사능력은 아주 낮았다. 그래도 의사소통을 하긴 했지.. 숙소의 실질적 관리는 아줌마가 했는데, 아주 씩씩하셨다..
그 집에 두 마리의 똥개가 있었는데, 이 놈들이 자주 짖어 나한테 뒤지게 혼난 적이 여러번였다. 나만 보면 이놈들은 피해다녔다..
내 방은 2층에 있었고, 그 숙소에는 라오항공 조종사 여러 명이 살고 있었다. 미국인 떠버리 리챠드 기장하고 부기장들(태국 2, 필리핀)..
첫 한 달은 기아 Picanto(모닝)를 렌트해서 돌아다녔다. 방비엥 쪽으로도고 가보고.. 차를 사려고 알아보니 라오스의 자동차 가격은 엄청 비쌌다. 코라오 회사를 통해 중고차 값을 알아봐도 터무니 없이 비싸... 그리하여 차를 사는건 포기하고 툭툭이나 쏭테오를 타고 다녔다.
비행하는 날엔 라오항공 운전기사가 숙소로 픽업왔고..
라오항공에서도 총 10번의 노선 훈련을 했다. 마지막 2번의 체크를 포함해서.
바나(Vanna) 기장, 시톤 기장 등과 8번을 채우고 레인하드(Reinhard) 기장에게서 체크를 받았다. 비정밀접근을 포함해야 한다고 해서 루앙 프라방 공항에 접근하며 VOR Approach를 했다.
레인하드 기장은 오스트리아 사람인데 라오항공의 유일한 검열(TRE) 자격 소유자였다. 베트남의 비엣젯항공(Vietjet)에서도 TRE로 근무했었는데 그 회사의 안전 상태가 심각해서 거길 떠났단다.
라오항공에서 비행했던 노선은,
- 국내선으로 비엔티엔-루앙 프라방, 비엔티엔-팍세 둘
- 국제선으로, 인천, 부산, 가끔 광주 무안, 방콕, 싱가폴, 중국 쿤밍, 중국 청두, 하노이.. 이랬었다. 방콕은 아침 저녁으로 하루에 두 편이었고.
인천과 부산에선 레이오버였지. 인천은 1박, 부산에선 길 때는 3박도 있었다.
3박 부산 레이오버 땐, 새벽에 김해공항에 내려 구포역에서 KTX를 타고 청주 어머니 댁에 가서 머물다 오곤했다.
첫 부산 레이오버 때는 벗꽃이 한창일 시기였고 성용이가 빌려준 차에 우리 일행을 모두 태우고 부산의 벛꽃구경을 함께 다녔다.
광주 무안으로 비행할 경우, 무안에 도착한 다음 회사에서 마련해 준 교통편으로 인천공항에 올라와 비엔티엔행. 또는 그 반대로, 인천으로 와 교통편으로 무안으로 간 다음, 비엔티엔행, 이랬었네..
비엔티엔에서 루앙 프라방으로 비행한 후, 루앙 프라방에서 오후 시간을 쉰 후 그 날 밤에 인천으로 출발하는 편도 있었다.
루앙 프라방에서 하루를 자고 그 다음날 비엔티엔을 거쳐 싱가폴로 비행하는 경우도 있었기에 루앙 프라방에서 아주 자주 레이오버를 했다.
루앙 프라방 레이오버 때마다 들렀던 야시장의 크레페 아줌마.
다른 건 넣지 말고 망고만 넣어 크레페를 만들어 달라고 그랬었는데 그 다음부턴 나를 알아보고 자동으로 그걸 만들어 줬다..
루앙 프라방에 갈 때마다 양기장과 함께 식사를 같이 하곤 했다.
빅트리 카페, 김삿갓 식당, K-마트에서 돈까츠, 현지식인 까오삐약 국수 등등
정창용 목사님이, 댁에서 수제비를 끓여 같이 먹은 적도 있었네..
양기장은 라오항공에 ATR72 터보프랍 부기장으로 입사하여 기장으로 승격된 케이스였다. 외국인을 기장으로 승격시키는 경우가 드문데도 양기장은 그걸 해냈다.
부기장 때는 비엔티엔에서 살았는데, 기장이 된 후부터는 루앙 프라방으로 베이스를 옮겼고.
회사에서 제공해준 호텔(쩌쩔런 호텔)의 양기장 방에 가면 시원한 날에도 에어컨을 틀어 놓고 담배를 피곤 했지..
성격이 좋아 호텔의 완전 VIP 투숙객였다. 외부인이 호텔 시설을 사용할 경우 유료지만, 양기장 이름을 대면 모두 통과.. ㅎㅎㅎ
루앙 프라방에 파견나온 KOICA 대원들이 양기장 덕을 참 많이 봤다.
양기장은 루앙 프라방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는데 까오삐약을 먹으로 가거나 루앙의 명물 요쿠르트를 먹으러 갈 때 양기장 오토바이의 뒷자리 신세를 많이 졌었다.
K-마트 사장님이 직접 튀겨 만드신 돈까츠를 먹으면 그 다음은 요구르트집..
라오항공 직원들도 양기장을 무척 좋아했다. 직원들에게 도움도 많이 줬으니.
라오항공의 조종사 스케쥴 담당자는 펭빌라이였다.
펭빌라이 딸의 심장에 이상이 있음을 알게된 후 양기장이 비엔티엔의 KOICA 등등으로 발품을 팔아 한국으로 후송되어 수술을 받는 라오스 어린이들 명단에 펭빌라이의 딸이 포함될 수 있었다.
펭빌리아의 딸이 한국으로 향할 때, 보호자 1명만 동행할 수 있다하여 펭빌라이 와이프가 아이와 함께 한국으로 갔다. 라오항공에선 펭빌라이에게 한국행 좌석을 줬고..
서울 신촌에서 머물 수 있는 싼 숙소를 찾으며 고민하던 모습을 보고 내가 신촌 부근의 숙소를 잡아줘, 한국에서 머무는 동안 딸아이가 치료받고 있는 세브란스병원에 매일 오갈 수 있게 해줬다. 그 후 딸아이가 회복하여 비엔티엔으로 돌아왔을 때, 뿌리와열매의 교재를 한 박스 가져다 주기도 했다.
몇 년 후 들렸더니 딸아이가 아주 건강하게 자랐다고 알려주더라고.. 다행이여~
정 목사님은 루앙 프라방에 정착하여 청소년을 대상으로 선교하는 일을 하고 계셨다.
한쪽 다리가 불편하여 어렸을 때는 방황을 하기도 하셨다고 했다. 영국 런던에서 머무신 적도 있었고.
루앙 프라방에서 목사님 오토바이의 뒷자리 신세를 지기도 했었네.
요즘엔 정목사님 캠프에 청소년들이 많이 늘었다고 하신다.
어느 하루는, 양기장과 친한 루앙 프라방 공항의 관제사가 사격하러 같이 가자고 해서 동행한 적이 있었다. 루앙 프라방에서 쉬는 날이었는데, 관제사의 친구가 경찰 사격장의 뭐가 된다며 우리가 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놨단다.
관제사의 작은 차에 모두 타고 한참을 달려간 사격장.. 80년대의 한국 군사격장보다 못한 시설이었다. 하지만 아주 재미있게 사격을 했네..
거기서 AK47 소총 사격은 처음 해봤다.. 예상보다 매우 잘 맞았다. 가늠자가 둥그렇게 생겼는데, 과녁을 조준하기가 아주 쉬웠다. 총알 한 발로 표적 3개가 날아가는 솜씨를 보여줬지~
사격장 안으로 닭들이 돌아다녔는데, 닭을 쏘면 돈을 내야한다고 그래 한바탕 웃기도 했다. 주위의 과일 나무도 마찬가지.. 권총사격도 했고 앚 재미있는 날이었다..
관제사와 친해져 루앙 프라방 공항에 인바운드할 때 이 친구가 관제조이면 알아보고 항상 정겹게 교신하며 대해줬네..
양기장의 발은 정말이지 넓고 정이 많다..
2017년엔, 뿌리와열매에서 갖고 있던 불필요한 교구재 재고를 양기장을 통해 라오스로 보냈다. 한국에서 양기장이 택배로 받고 그걸 라오항공편으로 공수해 비엔티엔을 거쳐 루앙 프라방으로 이송. 그리곤 루앙 프라방의 학교에 기증했다고 한다. 뿌리와열매의 작은 힘이 라오스 어린이들의 교육에 도움이 되었길 기대한다.
그러고 보니, 빅트리 카페 사장님네 두 아이의 한글 공부에 도움이 되라고, 형네 한글교재를 얻어다 준 적도 있구나..
2017년 초, 아지매와 똥깡이 쿤밍에서 출발해 하노이를 구경하고 루앙 프라방 여행을 했다. 그 때도 양기장이 가이드 역할을 해줬고..
그런 다음, 나와 비엔티엔에서 만나 라오항공 식구들과 식사를 같이 했다. 미스터 시폰, 바나 기장, 펭빌라이, 뚜니, 그 이외에.. 캡틴 킴은 언제든지 원하면 라오항공으로 돌아오라고 미스터 시폰이 그랬지.. 이 양반은 영어가 엉망이지만 그래도 의사소통은 한다.
그 때 행정일을 보는 그 친구도 같이 나왔다. 이름이 뭐더라??
라오항공에 있을 때 사무실에 들르면 그 친구의 닳아진 구두가 거시기해 내가 갖고 있던 싣지 않는 구두를 준 적이 있었다. 근데 신고 보니 발이 나보다 약간 크더라고.. 눈대중으로 보았을 때는 같아 보였었는데..
다른 직원이 한국에서 중고 휴대폰을 사다 달라고 부탁해서 들어 주었을 때, 이 친구의 폰은 완전 구닥다리였다. 그런데 2017년에도 보니 그 폰을 그대로 쓰고 있더라고. 그럴 줄 알고, 내가 쓰던 삼성 A5 폰을 챙겨갔었는데 전해 주니 입이 찢어졌다.
다음 날, 우리 가족이 비엔티엔을 떠날 때 운전수인 루시아가 호텔로 픽업왔는데, 우리 가족보고 입으라고 라오항공 티셔츠를 꼼꼼히 챙겨 보냈더라고..
라오스 사람들은 공짜에 익숙해져 있기도 하지만, 도와주면 감사함을 표현하는 사람들이다.
참, 그 날 루시아에게 근황을 물어보니, 그 몇 년 사이에 결혼했고 아들을 낳았단다.
내릴 때 차에 달러를 좀 놓고 내리며 아들 축하하는거라고 했더니 루시아 특유의 미소로 대답한다. 캡틴 킴 고맙다고 하며..
라오항공에서는 시뮬레이터 훈련을 방콕의 방콕에어(Bangkok Air) 훈련센터에서 하였다.
라오항공에서의 첫 시뮬레이터를 바나(Vanna) 기장, 부기장 푸타삭과 함께 갔다.
방콕 수바나품공항에 내려 이들이 가는 데로 호텔엘 따라가곤 충격에 빠졌었다.
호텔은 커녕, 여인숙 수준이었고, 기장과 부기장은 방 하나를 같이 쓰는 거였다. 기장이어도 라오스인의 급여는 매우 낮았기 때문에 경비를 최소화하고 나머지 차액은 본인들이 챙기는거였나 보더라고..
이틀 밤을 거기서 자는데 머릿속에서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었다.
그 다음부턴, 레인하드 기장한테 괜찮은 호텔 정보를 받아 그 곳으로 했지.
바나 기장은 나와 동갑인데 사람이 참 좋았다. 인상도 아주 너그럽게 생겼고, 다른 사람들한테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 타입이었지.
양기장을 신뢰하고 밀어주기에, 양기장은 ‘아짠(아저씨 또는 삼촌)’이라고 불렀었다.
바나 기장의 와이프는 옛날 라오스의 왕족 출신이라고 했다. 루앙 프라방에 땅이 많다고.
라오항공에 한국인 승무원이 4명 있었다. 다들 미인이었지..
인천-비엔티엔 노선에만 탑승하고, 비엔티엔에선 하루나 최대 이틀을 묵다가 인천으로 돌아가는 패턴이었다. 가끔, 루앙 프라방을 거쳐 인천으로 가야하는 경우도 있었고.
그 4명 중 한 명이 라오스인 라오항공 머스마 승무원과 사귄다는 말이 있었다. 어떻게 된 인연인지는 모르지만 나나 양기장 모두 엄청 걱정했었네.. 나중에 라오스를 떠난 후 들으니 깨졌다고 했다. 남의 일이 안풀렸는데 반가운 경우였지.
라오스를 떠나며 한국인 승무원들과 저녁 식사를 했는데, 그 날은 왜 그리도 비가 많이 오던지. 우기도 아니었건만...
https://www.youtube.com/@allonboard7654/vide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