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바이디~, 꼽짜이라이 #3

라오스 라오항공에서 일했을 때의 추억들...

by 체스터 Chester

비엔티엔에 있을 때 식생활 해결은 밥집과 여울, 그리고 가끔씩 다른 곳에서 했는데 주로 밥집이 있는 시홈(Sihom)으로 갔다. 여행자거리와, 그리고 은행 등 편의시설과 가깝기도 했고..

시홈으로 나갈때는 처음엔 툭툭을 탔었고, 툭툭기사들과 요금흥정하기가 싫어졌을 즈음 쏭테오라는 현지인들이 애용하는 버스아닌 소형트럭이 있음을 알았다.

왓따이야이 앞 도로에 서 있다가 쏭테오가 오면, 씨홈하고 행선지를 말하고 뒤에 가서 타는 방식이었지. 내릴 때 운전수에게 돈을 지불하고. 외국인이라고 앞좌석에 앉게 하는 경우도 많았네.

쏭테오의 트럭칸에 현지인들과 타고 가면 항상 나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주곤 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차량에 외국인이 타니.. 한국인의 위상은 매우 높았다. 특히 라오스에선..

23.jpg 왓타이야이 앞 도로, 베엔티엔 시내와 공항을 연결한다

어느날은, 쏭테오 트럭칸에 올랐더니 맹인이 홀로 탑승해 있었다. 깡마른 체구에, 낡은 맹인용 지팡이를 들고. 신발은 다 닳아져 발바닥이 다 들어나고... ㅠㅠㅠ

후진국이다보니 장애인에 대한 지원이 얼마나 허술한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뭔가를 도와주고 싶은데, 말도 안되고, 맹인이니 보여줄 수도 없고, 주위엔 아무도 없고.. 그러다 목적지에 도달해 내려버렸는데 며칠 동안 마음이 찌~잉 했다… 괜히 미안스럽기도 했고...

라오스에선 이런 느낌을 여러 번 받았었는데, 그 몇 년 후 머물었던 캄보디아에선 그런 적이 없었다.


어떨 때는 시내버스가 오기도 했는데 언제 다니는지 운행시간을 알 수 없었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시간표하고 너무 다르니.

그 녹색 시내버스는 일본에서 원조한 버스로 일장기가 그려져 있고, 실내에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잘 나왔다. 쏭테오와 같은 가격에 시원하기까지 하니..


시홈에서 숙소로 돌아올 때는 쏭테오를 주로 탔는데 여름날 쏭테오가 올 때까지 길가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게 참 힘들었다. 너무 더워서..

26.jpg 밥집 사장님이 아이스박스에 저녁꺼리를 넣어주신 어느 날 쏭테오를 기다리며..

저녁 시간엔 툭툭을 타기도 했는데 바가지 요금에 짜증이 나 그냥 숙소까지 걸어오기도 했다.

메콩강 강가의 제방을 한국정부의 원조로 공사했다고 한다. 그 뚝방길을 따라 40분 정도 걸으면 숙소에 도달할 수 있는데 시내쪽엔 식당들이 있다가 점점 조용해졌지.

길가의 민가에선 개들을 많이 키웠는데 이놈들이 사납게 짖고 해, 몽둥이와 후레쉬 라이트를 갖고 다녔다.

비포장이라 차가 지나가면 흙먼지가 자욱했지..

메콩강의 석양이 참 멋있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노래도 부르며 그 길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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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선 소매치기가 극성인데, 라오스에선 그 길을 외국인이 혼자 걸어가고 있어도 아무도 피해를 주지 않았고, 그런 소리도 듣질 못했었다.



시홈에서 한식당 '밥집'을 운영하시는 성사장님. 대한항공을 은퇴하시고 우연히 라오스에 들렀다 비엔티엔에 자리잡고 식당을 운영하신다. 대한항공 때부터 요리 동아리에서 활동하실 정도로 요리에 관심이 많으셨다네. 비엔티엔에 처음 올 때 영지형에게 소개를 받았었지. 그리곤 대한항공에서 근무했었다는 공통점으로 얘기를 많이 나눴었고..

비엔티엔에 머물 때 날씨가 괜찮으면 항상 시홈의 밥집에 들러 점심이나 저녁식사를 해결했다. 숙소보다 인터넷 속도가 높아 노트북을 들고가 시원하게 컴퓨터 작업이나 인터넷 서핑을 하곤했네..

DSC_9161.JPG 성사장님과 밥집의 명물 벽화


밥집에는 프랑스인 부부가 그려준 벽화가 있다. 여자는 한국인 입양아였다는데 태국과 라오스를 여행하다 밥집에 들러 너무 맛있게 먹었다고 그렸다나.. 그림 속과 실제 성사장님의 모습엔 조금 차이가 있긴 하다. ㅎㅎㅎ

사진 속의 밥집은 이전하기 전 위치이다. 임대 문제 때문에 옆 건물로 옮겨야 했지. 현재의 밥집은 새 단장 후 이전한 곳이다. 이전할 때 급전이 필요하셔 내가 빌려드리기도 했었네..

우한폐렴으로 라오스의 관광산업도 붕괴되어 버렸지만 성사장님은 아직 식당을 열고 계신다. 한식당 중 2곳만 연 상태라고..

얼른 정상 상태로 회복이 되어야 비엔티엔 밥집도 다시 북적일텐데.. 거기다 성사장님 연세도 있으시고..


왓타이야이 숙소 근처에 한국 식당이 하나 있었다. 여울.

이사장님이 운영하시는 곳인데, 사장님은 현지인과 재혼하셔 늦둥이 어린 아들이 하나 있으셨다. 한국식 고기부페집인 여울 식당이 아주 잘 되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현지인들이 주손님이었고.. 해병대를 막 제대하고 온 아들이 열심히 일하면서 라오스 말을 배운다고 끙끙거리고 있었다.

이사장님은 라오스 생활 초기에는 자동차(오토바이던가? 헷갈리네) 사업을 하시다 식당을 개업을 하셨지. 매일 손님들의 주차문제가 날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이사장님은 숯사업도 하셨다. 남쪽 어느 지역의 숯가마 여러 개를 장만하고 거기서 비장탄을 만들어 한국으로 수출하신다고 하셨지.

식당 안에는 고기굽는 냄새가 많이 나서 나는 항상 식당 앞의 Patio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는데 그 주변에 돌아다니는 길고양이가 자주 오곤했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나에게 당연히 엄청 구박을 받았고.

페티오에 앉아 있을 때 종종 비가 왔는데, 정말 장관이었다.. 그냥 쏟아 붓는 방식의 라오스 장대비...


라오항공에서의 근무패턴은 6주 근무/2주 휴가였다..

아지매가 2번인가 3번 라오스엘 왔었다. 근데 울 아지매는 비엔티엔을 좋아하지 않았다. 동남아가 처음이라 아무래도 그랬지..

그런 아지매가 비엔티엔 시내에서 좋아 했던 곳은 JOMA 베이커리나 시눅(Sinouk) 커피숍이었다. 조마는 캐나다 사람 부부 두 쌍이 운영하는 곳으로 현지 커피를 씀에도 맛이 좋다고 했고, 시눅은 커피도 좋고 매니저가 아주 친절했다. 안경을 쓴 친군데 어느 때부턴가 우리를 알아봐주고 정겹게 굴었지.

19.jpg 조마 베이커리와 가게 앞 매듭 장수

비엔티엔 조마 베이커리 앞에 장애인 매듭 장수가 자주 있었다. 사라고 외치지도 않아 계속 매듭을 만들고 있었다. 이 아저씨한테서 한 번인가 두 번인가 매듭을 샀었네..


울 아지매는 루앙 프라방을 좋아했다. 비엔티엔하고는 차이가 많지. 인근의 꽝시폭포도 좋아했었고. 양기장과 목사님의 오토바이 뒷자리에 타고 까오삐약 국수, 요구르트를 먹으러 다니기도 했었네.. 코스가 항상 정해져 있었다..


라오스에 머물다 보니 의료가 가장 큰 문제였다. 내 마음 같아서는 딸내미를 데려와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과 살아볼 기회를 만들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의료라는 아주 높디 높은 장벽이 있었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의료의 중요성, 라오항공의 승무원이 사망한 일을 보고 뼈져리게 느끼게 되었지..

라오항공의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여직원이 있었는데 그녀의 남편은 사무장이었다. 그녀도 승무원이었지만 임신하곤 사무실에서 근무하게 되었더라고.

그런데 그 여직원이 출산하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아버렸다. 출산할 때 무슨 일이 생겼는데 그걸 비엔티엔의 병원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강 건너편의 태국으로 국경을 건너야 하건만 야간의 국경 출입 제한으로 인해 제때에 건너지 못해 숨지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그 남편의 상심함도 컸겠지만 나에게도 충격적이었다. 21세기에 애기를 낳다가 죽다니..

그 사무장은 얼마 후 임무로 복귀했고, 언젠가부터 메콩강가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내가 시내에서 강가로 걸어오는 그 구간에 있어 종종 만나곤 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중국 항공사에 지원하게 되었다. 중국으로 가지 않으려고 노력했건만 아무래도 중국스럽긴 해도 중국이 나을 것 같았다. 그 시기엔 중국의 번영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과 책자가 많았기에 거기에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겠다.

중국으로 가기로 결심하고 나니 중국 조종사 필기시험 공부를 해야만 했다.. 50살이 넘어 또 시험공부를... 이 때는 이게 마지막이다 싶었는데 그 이후 일본에 가서 또 시험공부를 해야만 했다.. 조종사란 직업은 공부와 뗄래야 뗄 수가 없어.. ㅠㅠㅠ

인천 레이오버 비행이 있을 때마다 인천공항 옆의 운서 도서관에 가서 중국 시험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리챠드 기장 얘기도 써야겠네.

라오항공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얼마 후, 영국 태생으로 미국에서 자란 리챠드 기장이 합류했다.

거의 환갑 나이였는데, 아시아나항공에서 근무했었다며 나에게 엄청 친하게 대했다. 밥집에서 몇 번 식사를 같이 했지. 한국음식은 내가 사야 하는거라며 계산은 내가 했고.

그런데 이 양반은 한번 입을 열면 별의 별 이야기를 다하며 끊임없이 이야기를 했다.. 주위 사람들이 적절한 방법으로 멈추게 해야만 했다.


한 번은, 자전거를 갖고 오겠다고 하더니 휴가 때 LA 집에서 실어왔다고 했다. LA-->인천행 때 운송비를 많이 지불해야만 했다고 투덜거리며.. 그런 자전거는 한국에서 사서 라오항공으로 그냥 실어와도 될걸 뭔 고생을 했냐니까 별로 답이 없었지..


리챠드 기장은 라오항공에서 회항(Diversion)을 두 번 했던 불운의 기장이었다. 그것도 이륙 후 얼마 안되어..

한 번은 부산 출발 비엔티엔 도착 일정이었는데, 김해공항에서 이륙하고 한국 공역(FIR) 경계 쯤에 다다랐을 때 ‘중국 통과번호’가 있냐고 한국 관제사가 묻더란다. 그래서 알려줬더니, 그 정보가 틀렸고 중국쪽에선 허가사항이 없다고 했단다. 그래서 공중에서 돌면서 기다렸는데 결국 김해공항으로 되돌아와야만 했었다. 알고보니 운항관리사가 UTC 날짜 계산을 잘못해 벌어진 소동이었다.

그리고 몇 달 후, 리챠드 기장이 인천을 출발하여 비엔티엔으로 향할 때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인천공항 이륙 후 중국쪽에서 비행계획서의 항로가 비정상이라며 통과를 거부했다고 한다. 그 날은 태풍이 지나가는 관계로 항로를 변경했거든.. 그 날도 공중에서 기다리다 결국 인천공항으로 되돌아왔다.

남들은 평생 한 번 생길까 말까한 일인데, 그게 몇 달 사이에 두 번 벌어지다니.. 비운의 리챠드 기장..


라오스의 신년 축제를 본 적이 있었다. 루앙 프라방이 제일 볼만하다더라고..

라오스 설날이 다가 오던 시기, 스케줄러에게 부탁하여 루앙 프라방에서 그 날을 쉴 수 있게 되었다.

거리에서 물축제가 벌어지는데, 아이고.. 이건 광란 수준이었다. 낮시간 동안 계속된 물 싸움 해방구. 대단했다.


낮에는 라오항공 구내식당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시홈에서 장사하는 언니.

회사식당에서 항상 웃으며 일하고 친절하게 대하던 얼굴이 시홈에서 장사를 하고 있더라고.. 반갑기도 하고 부지런하게 살기에 근처를 지날 땐 꼬치구이를 여러 번 팔아줬다. 난 먹지 않기에 밥집 성사장님한테 가지고 가면 사장님이 엄청 좋아하셨지.. 현금 찾으러 자주 들렀던 편의점의 ATM이 뒤에 보이네..

이 언니처럼 열심히 사는 라오스인도 많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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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홈 밥집 앞의 과일쥬스 아가씨

망고쥬스를 만들어 달래서 자주 마셨는데, 얼음을 넣지 말고 물은 꼭 내가 가져간 걸로 해달라고 했었다. 태국산 망고를 쓴다고 했는데 정말 맛있었다. 지금도 생각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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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항공에서 일한 기간은 딱 12개월 밖에 되질 않지만 이상하게도 좋은 기억에 많이 남아 있다.

그 이후 중국에선 그 두 배의 기간 동안 머물렀지만 추억거리고 느껴는게 별로 없네... 라오스는 사람은 참 편하게 만드는 그런 곳이다. 특히 루앙 프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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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allonboard7654/vid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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