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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스터 Chester Nov 24. 2021

한국 조종사들의 특이한 교신

비행 이야기: 중학교 2학년이면 알만한 내용인데...

어느 나라에서든지 비행기를 몰며 조종사는 관제사와 교신을 한다. 조종사와 관제사 모두 무전기를 이용하고, 언어로는 영어(또는 영어식 표현)를 쓴다. 예외가 있긴 한데, 중국에선 중국인 조종사는 중국어로 관제사와 교신하고, 외국인 조종사는 영어를 쓴다. 러시아도 그런 경우가 있고 프랑스도 그렇다고 들었지만 프랑스는 직접 경험해 보지는 못했다.


교신을 할 때는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조종사도 있기에 무선통신을 할 때는 어떻게 하라고 교본이 만들어져 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서 발간한 것도 있고, 조종사들의 바이블이라고 하는 제피슨(Jeppesen, 젭슨이라고 보통들 일컫는다) 매뉴얼에도 예제가 실려 있기도 하다.

교본이 있더라도 기본 언어는 영어이기에 영어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교본이 큰 의미가 없게 된다. 반대로 영어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교본에 매달리게 되겠고..


한국에 돌아와 비행하며 항공 교신을 들을 때마다, 한국 조종사들 중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조종사가 참 많다고 느껴진다. 중학교 2학년 정도 수준의 영어 문법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정도랄까? 다름아닌 현재진행형 ing의 사용이다. 그 예를 들어보자.


제주공항이나 김포공항 등에서는 지상에서 이동하며 활주로를 건너야할 경우가 잦다. 제주공항이라면 25방향 활주로(Runway 25)를 이용할 경우 그렇게 되는데 이 경우 많은 한국 조종사들은 현재 진행하고 있는게 아니고 약간이나마 미래임에도 희한하게 "ing"를 붙여 현재 진행형으로 교신다.


젭슨(Jeppesen) 챠트의 제주공항 모습. 활주로 두 개와 그 명칭을 볼 수 있다.
제주공항의 위성 사진

제주공항 지상에서 Runway 25로 이동하려면 녹색 화살표처럼 A 또는 B 지점에서 Runway 31을 건너게 된다. 그리고 노란색 화살표처럼 이동하여 C 지점에서 Runway 25 진입대기(hold short)를 한다.

그래서 Runway 31을 건너기 전, 관제사는 'Runway 31을 건너고 Runway 25에서 진입대기하세요'라는 뜻으로 'Cross Runway 31, hold short Runway 25'라고 지시한다. 그러면, 많은 한국인 조종사는 'Cross Runway 31, holding short Runway 25'라고 hold에 ing을 붙여 응답하는데 이를 한국어로 옮겨보면 'Runway 31을 건너고 Runway25에서 대기하고 있어요'라는 식이 되어 버린다. 바로 앞 단계를 진행하지도 않았는데 그 다음 단계를 현재 진행하고 있다니???


언제부터 이런 방식의 교신을 듣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처음 들었을 때 '교신을 하고 있는 비행기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거지'라는 의문을 갖었었다. Runway 31를 건너지 않았는데 Runway 25에서 대기하고 있다? A나 B 지점에서 Runway 31을 건너는건데, 난데없이 C에서 대기하고 있다니.. 도대체 넌 어디에 있는거냐??


꼭 ing을 붙이고 싶으면 'Crossing Runway 31, hold short Runway 25'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옮겨보면, 'Runway 31을 건너고 있고, Runway 25에서 대기하겠습니다'라고.. 그런데 한국인 조종사가 이렇게 말하는건 듣지 못했다. 얼마 전 김포공항에서 하이에어(Hi Air) 조종사가 이런 식으로 하던데 얼마나 반갑던지...


Hold, Line up 등 몇 가지 단어에만 공통적으로 ing을 붙이기에 그렇게 하는 부기장들에게 물어보았다.

울진교육원에서 비행을 배울 때 교관이 그렇게 하라고 했다는 의견이 제일 많더라고. 교관이라는 자가 어떤 수준이었는지는 짐작이 가지만 그런 말을 들었을 때 그게 옳다고 생각하고 따랐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흐지부지 했다. 'ing'을 언제 붙이는지는 중학교 2학년 정도면 알 수 있을텐데.. 이 또한 한국의 병폐인 주입식, 비토론형 교육의 병폐가 아닌가 싶다.


누구는 젭슨(Jeppesen) 매뉴얼의 예시에 Holding, Lining up처럼 ing가 붙어져 있기에 그대로 따라하는거라고 했다. 그래서 젭슨 매뉴얼의 예시를 살펴보니 거기에선 조종사가 "하고 있는(ing)" 예시를 들고 있었다. Holding, Lining up 뿐만이 아니라 Stopping, Looking out, Giving way, Expediting, Slowing down, Going around 등 모두 현재 진행형으로 되어 있다. 물론 어떤 상황이기에 이렇게 한다라는 설명은 없었고... 하지만 상황을 연상해 보면 ing을 왜 붙였는지 이해가 된다.

예를 들면, 관제사가 조종사에게 '속도를 줄이세요'라며 'Slow down'이라고 지시하면, 조종사는 동작을 취하면서 답신으로는 'Slowing down(줄이고 있어요)'이라고 ing을 붙이게 된다. 그래서 젭슨 매뉴얼에는 Slowing down으로 답한다고 되어 있다.


Holding과 Lining도 같은 맥락이다.

만약 비행기가 활주로 대기선(Hold short line) 부근에 있는데, 관제사가 '활주로에 진입하지 말고 대기 하세요'란 의미로 'Hold short Runway XX'라고 지시하면 대기 중이기에 'Holding short Runway XX (대기하고 있어요)'라고 ing을 붙여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다 '활주로에 진입하세요'란 의미로 'Line up Runway XX'라고 지시하면 'Lining up Runway XX (진입하고 있어요)'라고 답하면 되겠고. 그러기에 젭슨 매뉴얼에는 Holding, Lining up으로 답한다고 되어 있다. 두 경우 모두 비행기가 활주로 대기선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는 전제가 있다.


이건 김기장 네 개인적 생각일 뿐이야. 매뉴얼에 실려 있는게 맞고 나는 그걸 따르겠다는 한국 조종사가 있을 수도 있다. 영어에 약해 중학교 2학년 수준을 이해하지 못하는 울진 교관 같은 이도 있을 것이고, (자신보다 높은 직책의) 누군가가 이렇게 하는게 맞아라고 하면 그대로 따라하는 한국식 문화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그래서 영어의 종주국인 영국에서 발행한 자료를 살펴 보았다. 


영국 Civil Aviation Authority에서 발간한 Radiotelephony Manual CAP 413에 이런 예제가 실려 있다. 

조종사: Metro Ground, Big Jet 345, request taxi.

관제사: Big Jet 345, Metro Ground, taxi holding point A1, hold short Runway 18.

조종사: Taxi holding point A1, hold short Runway 18, Big Jet 345.

Hold에 현재진행형인 ing가 없다. 당연한 거니까.. 


이렇게 상황에 알맞도록 답을 해야 하건만 한국의 적지 않은 조종사는 Line up, Hold short이라고 지시를 받으면 자신의 위치와 상황과 관계없이 Holding short, Lining up이라고 답한다.. 그러기에 교신 내용만 듣고 있으면 이 조종사의 비행기 위치를 파악할 수 없다. 물론, 이제는 이런 '한국식' 희한한 교신을 하도 자주 듣다보니 또 그러나 보다 한다.


살아 있는 언어를 교본에 싣기 어렵다. 어떤 정황인지 충분히 설명해야만 해당 상황에 맞을거니까. 그리고 교본은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이 쓴 경우가 대부분이라 모국어가 아닌 사람은 어떤 고통을 겪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결국 교본에 실려 있는 글자 자체에 매달리지 말고 거기서 의미하는게 무엇인지 파악하고 영어라는 언어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거겠지.



다른 예로, 오른쪽과 왼쪽을 말할 때 Right과 Left 대신 R(Romeo)와 L(Lima)라고 하는 조종사가 꽤 된다.


여러개의 활주로가 나란히 있는 공항에서는 활주로 명칭 맨 뒤에 L, R 또는 C를 붙이도록 되어 있다. 활주로가 나란히 3개가 있는 공항이라면 왼쪽, 중간, 오른쪽(Left, Center, Right)을 붙이는 방식으로.. 예를 들면, 아래 그림처럼 각각 Runway 18L, Runway 18C, Runday 18R라고 표기한다. 이건 비행 교과서에 나오는 아주 기초적인 내용.


김포공항, 김해공항, 청주공항 등처럼 활주로 2개가 나란히 있다면, 왼쪽, 오른쪽으로 구분한다. 김포공항의 두 활주로 이름은 Runway 32L, Runway 32R. 여기서 L과 R은 당연히 Left와 Right이다. 그리고 말로 할 때는 '런웨이 쓰리 투 레프트' 또는 '런웨이 쓰리 투 라이트'이다. 그런데 어떤 한국 조종사들은 이걸 '런웨이 쓰리 투 리마(Lima)'와 '런웨이 쓰리 투 로미오(Romeo)'라고 말한다.


항공무선교신에서 숫자를 말할 때 하나, 둘, 삼, 넷..으로 하듯 A, B, C...는 알파, 브라보, 챨리 등으로 부른다. L은 리마(Lima), R은 로미오(Romeo)이고.. 한국 조종사 중 어떤 사람들은, 이런 국제음성기호(Phonetic Alphabet)를 활주로 명칭에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R 발음과 L 발음이 안되서 그러는 것일까? 연습하면 어느 정도 되는데.. 그런데 왜 교과서에 나오는 기초 내용을 자기 마음대로 바꿔서 하지?


어느 날인가 김해공항에 착륙했는데 우리 뒤로 어떤 항공사 한 대가 따라 내리고 있었다. 관제사가 평소처럼 착륙허가를 내주었다. "XX Air, cleared to land Runway 36L(left)". 그걸 그 비행기의 조종사는 Runway 36L(Lima)로 복창(readback)했다.. 그랬더니 관제사가 "36 Left"라고 수정해 주더라고.. 

그 항공사의 조종사는 망신당한걸 알고나 있을까?? 


어떤 한국 조종사들은 항로에서 비행 중 항로 중심으로부터 일정거리를 띄워 비행하는 경우에도 이 국제음성기호를 쓰곤 한다. 예를 들어, '항로 중심으로부터 10마일 오른쪽으로 간격을 띄우라'는 내용을 관제사는 'Proceed offset 10 miles right of track'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대로 복창하면 될텐데 '10 miles ROMEO SIDE'라고 한다. 세상에 Romeo side라는 말이 있나? Right side라고 하고 싶은데 Right의 R 발음이 안되 그렇게 하는거라고 유추되지만, Right side는 한국 말로 '옳은 편'이란 의미도 있으니 오른쪽이라고 하려면 Right hand side라고 해야 하는게 맞을 것이다. 왼쪽인 Left도 마찬가지이다. Left side라면 '남겨진 쪽'이라는 의미도 있으니 왼쪽이라고 하려면 Left hand side라고 해야 하겠고.


Write your name on the right side at the top of the page, please.

Write your name on the left side at the top of the page, please.

이 두 문장은 같은 글이지만 그 내용은 오른쪽 또는 옳은 쪽, 왼쪽 또는 남겨진 쪽으로 이해될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른 자료에 나오는 Offset 관련 내용을 아래에 그대로 옮겨 보았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서 정의한 것으로 여기에도 당연히 Romeo side 또는 Right side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ICAO Doc 4444 PANS-ATM Chapter 12 defines the following phraseology to be used in parallel offset operations:  

ADVISE IF ABLE TO PROCEED PARALLEL OFFSET - used by the controller to determine whether such a manoeuvre is feasible.

PROCEED OFFSET (distance) RIGHT/LEFT OF (route) (track) [CENTRE LINE] [AT (significant point or time)] [UNTIL (significant point or time)] - the instruction format for starting a parallel offset.               

CANCEL OFFSET (instructions to rejoin cleared flight route or other information)             

REQUEST OFFSET (distance) RIGHT/LEFT OF (route) (track) [CENTRE LINE] [DUE TO WAKE TURBULENCE/TO AVOID WEATHER]


이처럼 아무 때나 ing을 붙이거나 Right을 Romeo, Left를 Lima라고 교신하는 경우를 왜 한국 조종사에게서만 듣게 될까? (영어권의) 다른 나라 조종사들이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이렇게 '아무렇게나' 말한다면 상대편 관제사나 다른 조종사들에게 혼란감을 주게 되련만 정작 말하고 있는 본인들은 그걸 인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당연히 모르고 있으니 그렇게들 하고 있겠지..

언젠가 국내의 굴지 항공사 한국인 조종사가 미국 뉴욕 공항 지상에서 교신하는 걸 들었더니 거기서도 한국에서 하던 식으로 하고 있더라고. 하고 있지 않으면서 하고 있다고 holding을 외쳐대니 미국 관제사가 헷갈리는 것 같았다. 동남아로 비행할 때 거치는 홍콩 근처의 중국 산야 관제구역에서도 단골이었다. 중국 관제사는 오른쪽(right of track)으로 offset하라는데 적지 않은 한국인 조종사들은 Romeo side라고 외친다. 나 영어 못해요라고 대놓고 떠들고 있는데 창피한걸 알기나 할까?


이렇게 일부 한국 조종사들은 항공교신을 하며 자기들만의 생각으로 용어를 바꿔 버리고 있다. 항공교신은 영어를 기반으로 한 국제 약속이건만.. 한국 내에서만 한다면 그러려니 할 수도 있지만 조종사들의 활동무대는 전세계인데..

몰라서 용감한건지, 알면서도 그렇게 하라니 아무 생각없이 따라가는 것인지... 더 신기한건 그렇게 하라고 시키는 기장(교관)이 있다는 사실이다. 중학교 2학년 정도면 알만한 내용을 모르면서 타인에게 뭐라고 하는 그 자신감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걸까??

교신은 내 얼굴과 같아 그 주파수에 있는 다른 조종사나 관제사들에게 나(해당편 운항 조종사)를 대표하게 된다. 전문기술자로서 당연히 정확하고 멋지게 보여야 하지 않을까?


https://www.youtube.com/@allonboard7654/vid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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