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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스터 Chester Dec 05. 2021

비행 후 받은 팁

비행 이야기: 조종사들의 부담감, 그리고 고마움

며칠 전 제주공항을 출발하여 부산 김해공항에 착륙했다. 그리곤 이어지는 서울 김포공항행. 비행기가 바뀌기에 이동하고 있었다. 그 때 객실매니저(사무장)가 다가와 하는 말, 승객 한 분께서 팁으로 1만원을 주고 내리셨단다. '비행을 너무 잘해서 꼭 한 마리 새가 된 기분이었다'라는 말씀과 함께...


비행 생활을 하며 팁을 받다니.... 

예전 UAE에서 일하던 시절, 러시아행 비행을 할 때면 달러 현금봉투를 받곤 했었다. 이륙하고 순항고도에 도달한 후 화주 대표가 조종실로 들어와 기장에게 주었었지. 그러면 기장이 일행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고. 100불짜리 신권들이었다. 그 때가 비행하며 팁을 받았던 유일한 기억이었다.

물론 사우디 아라비아나 중동 왕족의 전용기를 몰거나, 왕족이 여객기에 탑승하면 기장에게 돈봉투를 건내준다는 얘기는 중동에서 일할 때 자주 듣긴했었다. 우리 화물기엔 미군 우편물 또는 아프카니스탄, 이라크 정부의 방탄차, 러시아행 자동차 부품을 싣고 다녔으니 중동 왕족의 그림자도 구경할 수 없었지.


그런데 한국에서 한국인 승객께서 고맙다고 해 주셔서 우리 승무원 일행은 한 동안 감동에 빠져 있었다. 한국인들은 의사표현을 잘 하지 않기로 유명하니 더욱 그러했다. 서양에서는 착륙을 부드럽게 하면 박수를 치는 등의 표현을 하고, 비행기에서 내리며 고맙다, 멋지다 등등의 한 마디씩 하고 내리는 승객이 흔하니 상당히 비교되는게 사실이다.


이 날 제주공항을 떠날 때부터 제주도 답지 않게 바람이 고요했었다. 김해공항에 접근할 때도 바람이 잠잠했지. 김해공항은 저고도에 내려오면 주위의 산 때문인지 드드드득 하는 식으로 공기가 흔들리는 경우가 매우 잦은데 이날은 아주 조용했다. 조종을 맡은 최 부기장이 김해공항의 왼쪽 활주로(Runway 36L)에 부드럽게 접지하고 속도를 줄인 후 내가 조종간을 인수했다. 

나중에 승객분의 말씀을 듣곤 최 부기장은 아주 쑥쓰러워 하더라고.. 아무래도 새처럼 착륙하려면 바람 방향과 세기, 온도, 속도, 항공기 무게 등등 여러 변수가 있는데 이중 조종사가 제어하지 못하는 것도 있게 마련이다. 이 날은 날씨 자체가 우리를 도와주었다고 최 부기장은 생각하고 있었다.


조종사에게 가장 어려운 단계는 착륙일 것이다. 착륙이라면 정해진 속도로, 강하지 않은 충격으로, 활주로의 정해진 범위 내에 접지(Touchdown)하는건데 기상 상태에 관계없이 일정하게 하기란 정말로 어렵다. 하나씩 살펴보면,


속도: 

공항에 접근하며 항공기는 속도를 줄이기 시작한다. 당연히 접지 단계에서는 가장 낮은 속도가 되겠고.. 항공기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속도가 높아진다. 그러니까 승객이 만석이고, 악기상인 날 예비용 연료를 잔뜩 실은 경우에 접근 속도가 제일 높다고 할 것이다.

접근 속도는 안전 마진을 포함한 속도로, 이보다 낮지 않아야 하며 바람의 방향과 세기 등에 따라 속도를 높이기도 한다. 제주공항처럼 정측풍(Crosswind)이 엄청나게 센 공항에서는 특히나 그렇다. 

당연히 속도가 높을 수록 조종하기엔 어려워진다. (항공기 기종마다 다르지만) 속도가 너무 낮아도 쉬워지진 않는다.


접지 충격:

요즘은 하드랜딩(Hard Landing), 소프트랜딩(Soft Landing)이란 말이 사회적으로 적지 않게 쓰인다. 증권이나 경제를 얘기할 때는 경착륙, 연착륙이라고 쓰기도 하고. 하지만 비행 교본에는 이런 용어가 나오지 않는다. 대신 에어버스(Airbus)사에서는 Rough Landing이란 용어를 쓴다. 거친 접지라고나 할까?

항공기를 부드럽게, 바퀴가 땅에 닿았는지 모를 정도로 부드럽게 접지하면 제일 잘 하는 것으로들 알려져 있다. 조종사도 부드럽게 접지하고 싶어들 한다. 하지만 조종사 입장에서 보면 부드럽게 착륙하는게 받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기에 그 정도를 조절한다. 강하게 내릴수록 착륙거리가 짧아지기에 그렇다. 부드럽게 접지하면 착륙거리가 길어지니 활주로가 짧은 공항이라면 거기에 맞추어 착륙 강도를 조절해야먄 한다.


착륙 범위:

활주로는 물리적으로 길이가 정해져 있다. 그리고 항공기는 브레이크 등의 감속장치를 이용해 속도를 줄이기 위해서는 일정 거리가 필요하게 된다. 따라서 항공기가 활주로의 정해진 범위 안에 바퀴가 닿아야만 감속에 필요한 거리를 충족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활주로에는 아래 사진처럼 접지구간(Touchdown Zone)이 표시되어 있고 이 구간 안에 접지해야만 한다.

항공기는 맞바람(Headwind)을 맞고 이착륙하는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공항의 특수 상황 때문에 뒷바람(Tailwind)을 맞으며 이륙 또는 착륙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바람이 없거나 맞바람 상태에서 착륙할 때보다 뒤에서 항공기를 밀어대는 뒷바람 상태라면 접지점이 길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활주로 길이가 충분히 긴 공항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만약 짧은 활주로에서는 거기에 맞추어 일정 구간 안에 접지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뒷바람 착륙의 대표적인 공항은 김해공항과 일본 후쿠오카공항을 들 수 있다.


바람:

조종사들을 힘들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아마도 바람일 것이다. 바람의 방향과 세기인데, 바람이 세더라도 일정하게 부는 경우라면 그나마 괜찮다. 하지만 돌풍(Gust)성 바람은 참 힘들게 만든다. 바람의 방향과 세기가 제멋대로 변하니 항공기는 위/아래, 좌/우로 춤을 추게 된다. 

국내에서는 제주공항이 제일 힘든데 서쪽방향인 Runway 25로 내릴 때 특이 더하다. 주로 오른쪽에서 부는 강한 바람을 앉고 내려오다 약 300~500 피트(feet) 정도 고도 쯤 되면 아래에서 위로 강한 바람이 솓구쳐 오른다. 이륙 대기를 하며 춤추며 접근 중인 항공기를 바라보고 있을 때의 조종사 심정이란...

중국에서 일할 때 모기지였던 운남성 쿤밍공항은 봄(Spring)철이 되면 50kts(=시속 90km)의 바람이 불어 정말 힘들었다. 한라산보다 높은 지역의 산봉우리 여러 개를 깎아 만든 공항이라 공기가 엄청나게 요동쳤기에 조종사도 힘들었고 탑승객들도 힘들었다. 승객 하기 후 토사물을 치우느라 승무원들도 힘들었고..


강한 측풍(Crosswind)이 부는 상황에서 접지하는 순간에는 항공기의 진행 축을 활주로와 일치(또는 비슷하게)시켜 줘야 한다. 

위 그림에서처럼 바람이 우측에서 불면 항공기는 우측으로 틀어진 상태(=Crab)로 접근하게 된다. 접지 직전 러더(Rudder)를 이용하며 그 틀어짐을 활주로 방향과 같도록 수정하게 된다. 이를 De-crab이라고 한다.

바람이 일정하게 불어 준다면 De-crab이 어렵지는 않지만 바람 방향과 세기가 변하는 돌풍이 불며 비나 눈이 오는 상황이라면 정말 힘들다. 거기다가 야간이라면... 비가 와 와이퍼를 켜야 하는 날이라면 빠악빠악하는 요란한 와이퍼 작동 소음으로 신경이 더 날카로와진다. 그래도 안전하게 내려야 하는 조종사의 부담감... 무겁기만 하다..


현대인은 자연을 정복한 듯한 느낌으로 살고 있다. 하지만 비행을 하면 할수록 자연의 힘은 엄청남을 깨닫게 된다. 인간과 기계인 비행기가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는 듯 하다 싶으면 착륙을 단념하고 Go-around를 하게 되는 순간이다. (Go-around: 착륙 포기 후 상승)


팁을 주신 승객분께 기장으로서 감사의 말씀을 드리지 못해 안타까웠다. 직업인으로서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칭찬을 해주셨으니...

위에 설명했듯 비행, 특히나 착륙과정이 까다로움을 비행기를 이용하시는 분들께서 이해해 주시면 좋겠다. 날씨가 나쁜 날에는 악기상에 시달리신 승객분들께 따뜻한 감사의 방송을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매일매일 날아다니는 날마다 구름없고 바람 약하고 강수현상이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조종사도 승객도...


아무튼 악기상 속에서 무사히 착륙해야 하는 조종사들의 부담감을 이렇게라도 풀어놓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그런 날에 비행기를 이용해 주시는 분들은 더 고맙고..


https://www.youtube.com/@allonboard7654/vid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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