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도로가 안전한 도로: 인간을 고려하지 않은 한국 도로
대학을 다니던 80년대 후반, 비행 훈련과 자격증 취득을 위해 미국에 몇 달 씩 머무른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 때만해도 올림픽을 치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이란 나라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요즘처럼 한국 회사가 만든 휴대폰, 전자제품이 미국 전자상가를 도배한다는건 상상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땅이 넓은 나라에서 차 없이 생활한다는게 너무나 어려워 폐차 직전의 차량을 구해 몰고 다녔었다. 그러다 보니 미국 도로의 편리함과 논리성에 깊게 감명을 받게 되었다. 이후 한국에서 운전할 때도 가급적 미국식으로 운전하려고 노력했다.
이민 후 캐나다에 살며 운전하고 다닐 때도 미국과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도로는 미국 도로보다 더 잘 만들어져 있어 훨씬 편리했다. 이용자 중심으로 도로를 설계하고 관련 시설물을 적절하게 설치했기에 이용하기가 아주 쉬웠다.
선진국 도로에 대해 다른 말로 하면 도로 체계 자체가 매우 논리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불편함을 자주 느끼는 한국도로에는 캐나다나 미국 도로와는 반대로 논리성이 결여되어 있다.
도로는, 다른 도로와 교차하고, 다른 도로로 갈라지고, 다른 도로와 합쳐지게 된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선진국 도로라면 운전자에게 그 상황을 미리 알려주고 그 운전자를 유도해 주는 방식으로 도로 체계가 구성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그 지역을 잘 알고 있는 설계자가 지역을 모르거나 경험이 낮은 운전자를 이끌어 주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한국 도로는 선진국과 반대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그 도로를 이용하는 운전자라면 해당 지역을 잘 알고 경험 또한 풍부한 사람일거라고 한국 도로 설계자는 간주하는 느낌을 받는다. 따라서 해당 지역을 잘 모르거나 운전이 미숙한 운전자라면 곤란을 겪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방식이 한국식이다.
한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도로 설계개념의 하나로 '기본 차로수'가 있다.
한국 도로설계편람의 정의에 따르면, '기본 차로수는 교통량의 과다에 관계없이 도로의 상당한 거리에 걸쳐 유지되어야 할 최소 차로수를 말하며, 부가차로는 기본 차로수에 포함되지 않는다. 기본 차로수는 설계교통량과 교통용량 및 서비스 수준의 설정을 통해 정해진다'고 한다.
이렇게 정의되어 있지만 실제 도로를 달려보면 '여기의 기본 차로수는 도대체 얼마야?'라고 의구심을 갖게 되는 구간이 무수히 널려 있다. 1차로가 갑자기 좌회전 전용 차로로 바뀌기도 하고, 유지되던 5차선 도로에서 직진 차로는 2개만 되어 버리는 신비로운 구간이 펼쳐지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운전자는 끊임없이 차선변경을 해야 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차로유지의 일관성(Lane Continuity)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도로를 설명하며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보았다.
- 갑직좌: 1차로가 갑자기 좌회전 전용으로 되어 버린다.
- 갑직유: 1차로가 갑자기 U턴 전용으로 되어 버린다.
- 갑직우: 가장자리 차로가 갑자기 우회전 전용으로 되어 버린다.
지역 지리에 밝거나 경험이 많은 운전자는 갑직좌/갑직우/갑직유 구간이 다가오면 미리 다른 차로로 바꾸거나 어렵지 않게 변경할 수 있다. 하지만 해당 지역에 어둡거나 운전 경험이 적은 이용자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 식은땀 나고 욕이 저절로 나오게 될 것이다.
결국, 움직이는 차량 운전자에게 논리적 체계로 '유도'해야 함에도, 슬프게도 한국 도로에서는 여기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운전하면 선진국 도로에 비해 쉽게 피로해지는 원인 중 하나는 이 논리성 결여 현상 때문일 것이다.
이전에 썼던 책, '이런데서 사고 나면 누구 책임? 정부에서 보상받자'의 제일 첫 장에서 차로유지의 일관성 개념이 실종되어 버린 한국 도로에 대해 다루었다. 선진국에서 온 운전자가 한국 K-도로에서 가장 불편하게 느끼는 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쉬운 도로가 안전한 도로. 한국에도 만들어 봅시다~!"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_nbMwItYaucUgWhh4jCqeVDBuVB-CId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