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치광이 이웃-이소호
-만약 세상에 예술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가르치는 미술은 지극히 무용해서, 당장 밥을 먹거나 옷을 사거나 생계를 영위하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지금 앉아있는 자리에서 예술이 없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본다. 아마도 카페에 흘러나오는 음악, 내가 무언가를 읽고 이렇게 쓰고 있는 행위, 곳곳에 켜져 있는 포인트 조명도 없을 거야. 단순히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뿐 아니라 세상이 아주 삭막한, 먹기 위한 기계들이 살기 위한 기계 안에 작동되는 곳이 되지 않을까.
-예술은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가끔 인간을 위한 것이라는 이름 아래 아주 폭력적이고, 차별적이며, 파괴적인 행위들이 일어난다. 외면할 수 없는 환경오염과, 전쟁, 난민 등의 사회적 문제들은 인간이 인간을 위해 살다가 벌어지는 문제들이다. 이 책은 작가가 베를린의 미술관에서 ‘00’을 주제로 그린 그림 앞에 오래 머무르며 떠오른 이야기로 펼쳐진다.
-소설 속 2073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환경학자의 논문으로 난데없는 문화폭동이 일어난다.
이유인즉슨, 세계 3대 곡창지대를 기후변화로 잃고 식량 위기에 처해있는데,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쓰고 있는 에너지 소모가 너무 많다는 내용이다. 예술 경매장, 미술관, 오페라하우스, 소극장 그리고 더 이상 망칠 작은 극장조차 없어졌을 때 도서관까지 부순다. 장소만 차지하고 배고픔에 도움 되지 못한다는 이유로 가장 먼저 제거된 예술, 그리고 생존의 이유가 없어진 많은 사람이 죽었다.
-주인공 유리는 유화를 사랑하는 아이로, 근근이 살아가시는 부모님의 암묵적 반대가 섞인 지원 아래 문화 폭동 직전에 베를린 석사 유학을 마친다.
‘그동안 내가 배운 것은 예술적 배움이었을 뿐, 예술가로서 살아가는 배움은 아니었던 셈이다.’
왜 하필 이토록 비싼 미술을 사랑해서 포기할 기회마저 놓쳐버렸는지 생각하는 주인공의 대목이 어쩌면 내가 대학을 졸업하며 느꼈던 그 마음이었던 것 같아서 코끝이 징- 했다.
-미아는 어떤 작업을 해도 교수님에게 극찬받는 넘사벽 학생으로, 유리를 포함한 베를린 예술대학 학생들에게 좌절감을 심어준다. 이 둘이 기숙사 룸메이트가 되고 난 후 유리는 비밀스럽게 미아의 뛰어난 예술성의 배경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불행조차 빼앗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미아의 모작 그 자체이다. 슬픔을 흉내 내는 것과 파토스의 차이는 거대하다. 미아는 거대한 파도 같은 슬픔이라면 나는 잔잔한 호수 같다. 아무 일도 없이 살아온 삶 같다.”
-대중에게 많은 공감과 사랑을 받는 작품의 기저에는 작가가 겪은 역경, 스토리가 담겨 있다. 스토리는 작품 위에 묘한 주문을 걸어 작품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이렇게 힘들었지만,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었다니 대단하다, 나도 열정을 갖고 싶어, 이 작품의 상징성을 소유하고 싶어.’와 같은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자신이 겪은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작품에는 삶의 바닥을 들여다보고 온 작가의 깊이가 전달된다.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유리와 같은 사람들 그리고 내가 한번쯤 해본 고민. 작품을 하기에는 너무 얕고 평범하며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기발함이 없다는 생각. 그런데 이런 생각들이 오히려 예술이 평범한 일상과 멀어지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유리는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작가 생활을 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건 작품 활동을 하지 못하고 문화 폭동으로 인해 유실된 명작을 미디어와 기술로 재현해 내는 미디어 아티스트가 된다. 국립 도서관이 모두 불탄 시대에 기적처럼 살아남은 서점, 유리와 미아가 책 사이에 끼운 편지를 주고받던 서점을 찾아가 졸업 전시 이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미아에게 편지를 남긴다.
“(중략)…미아. 나는 학교 다니는 내내 너의 그림자였는데, 그게 죽기보다 싫었는데, 지금은 그게 내 밥벌이가 되어버렸어. 있잖아…. (중략) 너에게만 내 진심을 고백하자면 나는 사실 아직도 네모가 그리고 싶어. 여전히 멋진 네모 말이야….”
-예술이 없어져 버린 이후에 사람들은 다시 예술을 찾는다. 그리고 유리도 미아를 찾는다. 대학 시절 내내 미아를 뛰어넘기 위해 작품을 제작할 때 미아를 생각하며 작업하던 유리. 하필 옆자리, 하필 같은 주제로 초라한 병풍처럼 미아의 작품을 돋보이게 했던 졸업 전시에서 열등감과 시기와 질투를 인정해 버린 유리. 그럼에도 미아를 찾는 유리.
-못난 나를 마주하게 되는 것,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나를 알아차리는 것. 내가 좋아하는 예술은 외면할 수 없는 사회 현상과 불편한 현실을 직시하는 예술이다. 지금 당장 쓸모없으나, 그렇다고 없어서는 안 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