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신작 ‘베란 토미치 : 파리의 스파이더맨’
-미술품을 훔쳐서 무엇에 쓰는고? 최첨단 도난 방지 시스템이 잘 구비되어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절도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24시간 선명한 CCTV가 골목골목 설치되어 있으며 심지어 차량에 움직이는 CCTV도 붙어있는데. 혹시나 지금 한국에서 절도가 아직 있을까? 싶어서 구글에 검색했더니 ‘사상 초유의 ‘국전’ 도난 사건… 작품 58점의 행방은? 이라는 기사가 있어서 클릭했다. 알고 보니 1978년의 신문 기사. 과거에 있었던 같은 날짜의 신문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였다. (아마 지금 한국이었으면 쉽지 않았을 거야!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
-예술품을 절도한다는 것은 그 가치를 알아보고 교환해줄 수 있을 때 일어나거나, 진짜 그 작품을 소유하고 싶어서 이거나 일 텐데, 이번 도둑은 어떤 이유로 어떻게 훔쳤는지 궁금해서 넷플릭스를 보기 시작했다.
-넷플릭스에서 10월 20일 공개한 베란 토미치 : 파리의 스파이더맨은 2010년 프랑스 역사상 최대 미술품 절도 사건이었던 파리 현대미술관을 턴 범죄자의 인터뷰이다. 장비 없이 맨몸으로 건물을 타는 ‘파쿠르’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름다운 파리의 야경과 아슬아슬 곡예 하는 것처럼 지붕을 타는 범죄자의 시점이 묘하게 대조되면서, 베란 토미치가 범죄를 저지르며 느꼈다는 솟구치는 아드레날린을 잠시 함께 경험할 수 있다. 사설 미술관도 아니고 파리시에서 만든,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20세기 미술의 역사를 담은 현대 미술관인데 이렇게 쉽게 털리다니.
-그는 원래부터 그림을 훔치지는 않았다. 부유한 집들이 있는 구를 돌아다니며 보석이나 돈이 될 만한 것들을 훔쳤으나, 어느 날 벽에 걸린 인상파 작품들에 빠져든다. 한 번은 값어치가 수백만에 달하는 르누아르 작품에 푹 빠져 그것을 훔치고 수년간 옥 생활을 치렀다. 파리현대미술관을 털고도 잠시 차를 멈추고 훔친 그림들을 몇 시간 동안이나 감상했다.
-원하면 훔쳐서 가지려 하고, 나만 프라이빗 하게 보겠다는 욕망을 실현한다는 게 배짱이 두둑하단 생각이 들었다. 무일푼으로 남의 것을 강탈하는 것과, 돈과 권력으로 남의 것을 강탈하는 것의 차이점을 생각해 봤다. 그러면서 제국주의 시대 약탈당한 문화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왜 그림을 훔쳤을까? 돈이다. 당연히 그림을 사 줄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골동품상이면서, 토미치에게 훔칠 예술품 리스트를 건네주었던 코르베즈인데, 작품 하나당 5만 유로로 거래를 건다.
-미술관에 들어가 그림을 훔치는 데 엄청난 관찰력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이 노력이면 뭘 해도 잘될 텐데…! 능력을 부정적인 곳에 쓰니 아쉽다. 몇 날 며칠을 미술관 근처를 배회하며 경비가 몇 시에 순찰하는지, 도난 경보기는 어떻게 울리는지, 어떤 경로로 침투해야 하는 지, 어디로 도망칠지를 계산하고 거기에 필요한 물품들을 산다.
-그가 현대미술관에서 절도한 작품은 페르낭 레제의 ‘샹들리에가 있는 정물화’, 피카소의’비둘기와 완두콩’, 앙리 마티스의 ‘목가’, 조르주 브라크의 ‘에스타크의 올리브 나무’, 모딜리아니의 ‘부채를 든 여인’이며, 아직까지도 일부는 행방이 묘연하다고 한다.
미술품 수집은 18세기 귀족의 취미 생활로 시작되었으나 일부 수집가들의 미술품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으로 인해 현대에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거대한 사업으로 변질되었다.
-조슈아 넬먼<사라진 그림들의 인터뷰>중
-사라진 그림은 몇 년, 몇십 년 후라도 경매장이나 갤러리에 다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술품 도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보의 축적이 핵심이다. 그래서 더욱 정보의 디지털화와 아카이빙이 중요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전에 읽었던 책 <셰어미: 재난 이후의 미술, 미래를 상상하기> 5장 아카이브와 재난 파트에서 미술관과 박물관이 문화유산을 후대에 전승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대비책으로 아날로그와 디지털 아카이브의 긴밀한 연결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15세기 개관해 유구한 역사를 지닌 바티칸 도서관은 2012년부터 수백만 점의 희귀 도서와 문서를 디지털화하는 프로젝트에 착수했고, 이를 고해상도 이미지로 홈페이지에 무료 공개했으나, 이 프로젝트 이후 매달 100여 건이 넘는 해킹 공격을 받는다고 밝혔다. 그래서 2020년 사이버 보안업체 다크트레이스와 계약하고 해킹 활동을 추적 방어하는 시스템을 가동했다고 한다. 방법이 하나 생길 때마다 지켜야 할 것도 하나 생겨난다.
-인터폴과 유네스코에서는 도난 미술품 거래 산업을 세상에서 규모가 네 번째로 큰 암거래 시장으로 지정했다. 상위에는 마약과 돈세탁, 무기 거래가 있다. 미술품 암거래 시장은 그 어떤 영화가 묘사한 것보다 훨씬 규모가 크며, 훨씬 많은 사람이 연루되어 있고, 합법적 미술 거래 시장도 직접적으로 발을 담그고 있어 수많은 범죄행각이 공개적으로 묵인된다고 한다.
-베란 토미치가 개인적 욕망으로 훔친 예술품이 암거래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서 더 큰 범죄에 사용된다는 걸 생각하면 있어서는 안 될 일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면, 훼손되어서도 안된다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