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큥드라이브 Oct 31. 2023

<산수화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

리움미술관- 버들 북 꾀꼬리, 강서경

-어쩌면 미술관이 아니고 늦더위가 가시는, 산으로 둘러싸인 초원에 온 것 같았다. 전시장의 공간에 사각형의 틀이 수직 수평의 선을 만들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산을 형상화한 봉우리가 둥그런 곡선을 만든다. 갈대로 엮은 색색의 자리가 면을 만들며, 사람의 형상처럼 보이는 바퀴 달린 <좁은 초원>시리즈가 드넓은 논의 허수아비 같기도 하다. 말 그대로 미술관 산책하기 좋은, 그런 곳이다.


버들 북 꾀꼬리


-이 정겨운 제목은 전통가곡 <버들은>에서 나온다. 버들사이를 날아다니는 꾀꼬리가 옷감을 잇는 실이 되어 옷을 짜낸다는 노래로 시작한다.

버들은
(이수대엽 中)
버들은 실이 되고 꾀꼬리는 북이 되어
구십삼춘(九十三春)에 짜내느니 나의 시름
누구서
녹음방초(綠陰芳草)를 승화시(勝花時)라 하든고

버들은 실이 되고 꾀꼬리는 북이 되어
구십 일 봄 석 달 동안 짜내나니 나의 시름
그 누가
녹음 드리우는 초여름이 꽃피는 봄보다 좋다고 하던가

국립국악원 『풀어쓴 정가』(2018)


-서양에 테피스트리가 있다면 우리나라에 화문석이 있지 않을까. 화문석은 꽃무늬 자리라는 뜻을 가지며 왕골을 엮어 만든 공예품이다. 조선시대에는 ‘춘앵무’라는 1인 궁중무에서 춤 추는 공간의 경계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기도 했는데, <자리 검은 자리>연작은 한 개인에게 무대, 경계선의 역할을 하는 공간 개념으로 나타난다.

-작가는 화문석 제작을 위해 북한과 접경하고 있는 강화도의 장인들과 협업한다고 한다. 강화도의 하얀 갈대는 골풀보다 염료 흡수력이 높은데, 그곳에서 나는 자연 재료와 수백 년 전통을 이어받은 여성들과 함께 자리를 만든다. 자연에 자연을 물들이다 보니 색상이 굉장히 담백하다.


-2층의 어두운 공간에 높낮이를 달리하여 전시된 <산-아워스>는 작품과 작품 사이 여백을 거닐 때 산수화 속을 유영하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걸음 걸음마다 달라지는 형상과 풍경은 평면에 담지 못하는, 입체 조형물이 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매력이 아닌가 싶다.



- 작품을 위해 녹음된 시를 들으면서, 어쩌면 작가님의 작업도 한 단어에 많은 뜻을 담은 한 편의 시가 아닌가 생각했다. 단순한 형태의 조형이지만 그 안에 손으로 한땀 한땀 실로 엮어낸 이야기가 수많은 시간을 함축한다. 녹음방초(綠陰芳草)를 승화시(勝花時)라 : 푸른 나무와 향긋한 풀이 드리우는 초여름이 꽃 피는 봄보다 좋다는, 어느 누구 하나 화려해서 이목을 끌지 않고 각기 제 자리에서 은은한 향을 내며 조화를 이루는 작품이 편안했다.



강서경작가 인터뷰

[리움 미술관의 개인전 '버들 북 꾀꼬리'를 연 강서경 작가 인터뷰](https://www.marieclairekorea.com/culture/2023/09/kang-seokyeong/​)


<버들 북 꾀꼬리>

강서경

2023.09.07- 12.31

리움미술관

작가의 이전글 <예술가가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3가지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