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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큥드라이브 Nov 01. 2023

<죽기 전에 무조건 해야 하는 한 가지>

뉴스뮤지엄 연희 - 세르주 블로크

-생각보다 어려우면서 생각보다 쉬운 것, 마냥 기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기다림이 필요하고, 또 기다림이 필요한 것, 받을 때보다 줄 때 더 기쁜 것, 지금 하고 있지 않으면 유죄인 것, 예술에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 두 가지 중 하나인 것,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 줄 줄 아는 것, 궁금해하는 것


SBS <신사의 품격> 장면 중

-그거슨 바로 사랑..!

사랑의 형태도 참 여러 가지다. 나를 사랑하는 것,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부모의 사랑, 인류애…


-세르주 블로크의 이번 전시 주제는 ‘사랑’이다. 아주 오래전 <신사의 품격>에서 장동건과 김하늘이 만나는 첫 장면의 붉은 실, 그리고 동화책 <나는 기다립니다> 읽는 장면으로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된 명작의 일러스트레이터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인간의 이야기를 가장 단순한 한 가닥 실로 풀어낸 작가.


-어제 3차 인공수정 실패 결과를 알고 ‘아 진짜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이 동화를 보면서 왠지 모르게 힐링이 됐다.

붉은 실 하나가 손수건에서, 서로를 만나게 해주는 리본에서, 탯줄에서, 아이들의 장난감 자동차를 끌어주는 밧줄로 연결된다. 어떤 일도 그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고, 그 일은 마냥 좋기만 하지도, 나쁘기만 하지도 않다. 그래서 나는 (물론) 3차례에 걸친 인공수정 과정에 공을 들였지만, 마냥 슬프게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그저 묵묵히 주어진 생을 사랑하며 살고, 또 다시 기회가 온다면 도전해보리라.

Racines carrées Sculpture - mireille vautier

Racines carrées Sculpture by mireille vautier | Saatchi Art

-그나저나 왜 붉은 실이냐면, 세르주 블로크의 아내 미에이유 보티에(Mireille Vautier) 또한 예술가인데, 붉은 실을 사용해서 작품을 제작하기 때문에 여기에 영감을 얻었다고. 부부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뮤즈가 될 수 있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일러스트레이터

-세르주 블로크는 동화책 삽화만 그린 것이 아니고 잡지, 명품, 패션, 우표, 보험 등 다양한 광고에 들어갈 일러스트를 제작했다. 그림체가 굉장히 빠르다고 하는데 정말 귀엽고 재치 있기까지 해서 마음에 쏙 들어온다.



<어느 날 길에서 작은 선을 주웠어요>, 2014

자신에게 큰 영감을 주었던 파울 클레, 솔 스타인버그 등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주는 모든 예술가에게 헌정하는 작품. 세르주 블로크 자신이 어느 날 길에서 우연히 작은 선을 만났듯, 작가를 꿈꾸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는 내용이 담겨있다.

저는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열망을 주기 위해 이 책을 지었습니다. 글 없는 언어인 그림 그리기는 이처럼 길게 칭송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적>,2007

-전쟁과 인간 사이의 증오에 반대하는 책. 전쟁 중 참호 속 홀로 남은 병사의 독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적’은 인간이 아니니 살상하라는 명령에, 권력을 가진 사람들 끼리 만들어낸 문제로 다른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끔찍함에 의문을 갖는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바라보며 ‘적’에게도 가족이 있을까 생각하는 병사.

-여기에는 세르주 블로크가 어린 시절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고, 어느 때는 신분을 속이고 숨어 다녀야 했던 배경이 있다. 출판된 지 16년 흘렀지만, 지금도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유엔 본부에서도 전시를 개최하고, 다양한 국가에서 상을 받고, 국제앰네스티에서 권장도서로 선정된 유의미한 책이다.



<키스를 나눌 수 있는 18가지 방법>

‘뉴스뮤지엄 연희’의 다락방처럼 아늑한 전시 공간으로 올라가 보면, ‘너에게 키스하고 싶어’에 실렸던 사랑 이야기가 전시되어있다. 사실은 총 17점인데, 마지막 한 점은 ‘일부러 바닥에 카페트를 깔아놓았다’고..! 관객 참여형 전시였다니 ㅎㅎ. 일러스트를 보면 하나같이 간질거리고 뭉클하다. 혼자 전시를 보고 나오는 길에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창의성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라는 인터뷰 질문에  "작은 용기 내기 습관"이라고 대답한 작가. 창의성이란 무언가를 할 용기이고,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자세라는 것. 이거야 말로 나를 사랑하는 일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serge.bloch

Serge Blo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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