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한 자, 되찾으려는 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인류 최초의 성문법으로 평가받은 함무라비 법전(을 새긴 비석)은 세계 최초의 약탈문화재이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왕이 기원전 1750년 전후에 제정하여 모든 백성이 볼 수 있도록 바빌론의 신전 앞에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함무라비 법전 비석은 바빌로니아 신전에서 이란 수사를 거쳐, 현재는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루브르가 자랑하는 최고의 보물 가운데 하나다.
-고대부터 이어진 문화재 약탈은 제국주의 시대에 더욱 왕성해졌다. 식민지의 유적과 유물 연구라는 명분을 내세워 공공연하게 발굴 조사까지 벌였다. 식민 지배 초기에 우리가 일본에게 당했던 토지조사사업 생각해 보면, 제국주의적 지배와 수탈의 전형적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로제타 스톤'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하게 한 유물인데 현재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있다. 로제타스톤은 1799년 이집트를 침공한 나폴레옹 군이 로제타 마을에서 발견한 기원전 4세기경의 비석이다. 윗부분에는 상형문자, 중간에는 고대 이집트 민중문자인 데모틱, 아래에는 그리스어가 새겨져 있다. 프랑스가 나일전투1789에 패배하면서 영국의 전리품이 되었으며, 당시의 관례에 따르면 전리품 획득은 합법적이었다는 점을 영국은 강조한다.
'오벨리스크'
-이집트 곳곳의 신전들에 세워진 오벨리스크는 이집트에 남아 있는 것 보다 로마 제국 당시 황제들이 로마로 가져온 것이 훨씬 많다. 판테온 앞의 오벨리스크, 바티칸 성 베드로성당 광장의 오벨리스크, 런던과 뉴욕, 프랑스 등 오벨리스크들은 주요 각국의 관람 대상이지만, 세계 문화유산 약탈사를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파르테논 마블스(엘긴 마블스)'
-그리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의 벽면을 장식한 대리석 조각인 파르테논 마블스는 19세기 초 오스만제국 주재 영국 대사이자 고대 유물 수집가인 토머스 브루스 엘긴이 챙겨간 것들이다. 그때 유출된 대리석 조각품을 그의 이름을 따 ‘엘긴 마블스’라고 한다. 하지만 그리스인이나 세계의 문화재 애호가들은 '엘긴 마블스'라는 이름의 부당성을 강조하며 ‘파르테논 마블스’라고 부른다.
-(그리스는 현재 유럽에 속해있지만, 1832년 독립할 때까지 오스만 튀르크 지배 아래 있었다. 1801-1803 영국이 파르테논 마블을 약탈한 시기의 그리스는 서유럽 열강에게 비유럽 지역과 마찬가지로 여겨졌다. )
-앞으로 14년간 장기 휴장하는 페르가몬 박물관에서 본 이슈타르의 문. 2018년도에 베를린 여행에서 처음 보았는데,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이슈타르의 문은 기원전 575년에 고대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수도 바빌론에 세워진 (현 이라크) 성곽 출입구다. 바그다드에 있는 바빌론 이슈타르 성문은 복제된 것이고, 진짜는 베를린에 있다. 왜냐면. 19세기 독일이 오스만제국에게 사들였다. 이슬람의 관심은 고대 그리스 유적지가 아니었으니까. 혼란스러운 틈 그리고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시기의 반출이 과연 옳은 것인가? 싶다.
-물론, 벽돌 한 장 한 장 분해해서 독일로 고스란히 옮겨와 사라진 벽돌을 특수 제작하기까지 하여 완벽한 모습으로 박물관 안에 전시한 모습을 보면 놀랍기도 하다. 게다가 민족주의 성향을 강화하기 위해 지은 복제 이슈타르 문이 이라크 전쟁 때 미군의 공격으로 파손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강대국에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며 보존한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문화유산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까? 근데, 그럼에도 유물과 역사적 관계를 맺고 있는 그 장소에 있어야 할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