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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큥드라이브 Nov 24. 2023

<예수님과 콜라보해서 작품을 만들면?>

대림미술관 - Nothing is SACRED, 미스치프

-카프카카 책은 도끼라고 했던가. 예술도 관습을 깨고, 관념을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 물론 시각적으로 예쁘고 사랑스러운 작품들은 감성을 말랑말랑하게 해주지만, 이렇게 관념에 도전장을 내밀고 유쾌하게 사회문제를 돌려까기 하거나 정면승부를 거는 작품들을 보면 아주 신난다. 작품을 통해 앞으로를 전망하고, 뒤를 돌아보고, 당연한걸 의심해볼 수 있는 아주 재밌는 전시가 여기 있다.


-꼭 설명을 듣거나, 맥락을 파악하면서 전시를 보아야 한다. 대림미술관 어플리케이션을 미리 깔아놓고 가길 추천. 그리고 도슨트도 추천. 11시, 12시, 17시, 18시에 도슨트 투어가 있다.


미스치프라는 아티스트 콜렉티브

-뉴욕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콜렉티브. 예술가들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 변호사, 개발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20명이 모여서 그룹을 형성한다. 2주에 한번씩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는데 이렇게 드랍한 작품은 한정판이므로 다 팔리고 나면 절대 똑같은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 계속해서 신선한 아이디어가 생성될 수 밖에 없는 구조.


-이름처럼 아이들의 귀여운 장난 같은 작업부터 시작해서 인간의 심리를 분석하고,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는 작업을 한다. 빠른 속도로 시대정신을 반영하여 인터렉티브 게임, 패션, 운동화, 회화, 퍼포먼스 등 장르를 망라하는 100여 점의 다양한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모두를 화나게 하는 이유와 방법

모두를 극도로 화나게 만들어야 해요. 그럼 그 분노는 변화를 만드는 방향으로 전달될 수 있습니다.

   가브리엘 웨일리, 2015년 observer 인터뷰

-첫 번째 아카이브를 지나 MULTIPLAYER 섹션에서는, 정치, 사회, 경제, 투자 등과 같은 이슈들에 블랙 유머를 가미하여 제작한 신종 게임들을 전시해놓았다. 미스치프가 비판하는 지점들을 뭔지 알면서도 아주 즐겁게(?) 참여했다. 특히 인상깊었던건 100달러에 구매할 수 있는 정육면체의 랜덤박스다.


-0달러부터 5000달러에 육박하는 상품이 들어있는데, 만일 구매자가 100일동안 박스를 열지 않고 돌려주면 하루에 10달러씩 추가돼서 1000달러를 돌려준다. 마시멜로 실험처럼 즉각적 만족과 안정적 수익 중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든 작품이다. 현실의 나였으면 안정적인 1000달러를 선택했겠으나, 이건 게임이고 가상이니까 눌렀는데 크리스찬 루부탱!!


-근데 안정적인 선택 VS 즉각적인 만족으로 볼 수 도 있겠으나 즉각적 만족의 범위가 씹던 껌부터 5000달러의 스쿠터 혹은 명품들이라니. 이건 도박이다! 이 게임 이후에 안정성을 선택한 비율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왜냐면 나도 도박했으니까!!!




-C&D(미국의 특허권 침해 중단 요구 경고장) 받는 것을 즐기며 인터넷과 바이럴을 똑똑하게 이용해서 대중의 인식을 뒤흔드는 동시에 흥미도 전달하는 작품들이 신선하다. 아마 미국인이었으면 나도 모르게 참여하고 있었을 듯. 코카콜라, 디즈니, 아마존, 테슬라, 써브웨이, 마이크로소프트, 월마트, 스타벅스의 지식 재산권을 의도적으로 침해하는 8개의 레이싱 저지를 제작하고 판매했으며, 이 중 미스치프에게 제일 먼저 C&D를 발송하는 기업이 이 게임의 우승자가 되고, 우승하게 된 회사의 저지를 구매한 사람들에게는 F1 챔피언 모자를 본뜬 우승자 모자를 추가로 증정했다. 당연 디즈니겠지?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미키 마우스 캐릭터는 2024년에 저작권이 소멸되어 자유 이용 저작물로 바뀌게 된다. 다만 확신할 수 없는 것이, 지난 1998년 디즈니가 '미키마우스 보호법' 제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미키 마우스의 저작권 기권 시점을 95년 더 연장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에 미스치프는 2024년도에 제작 및 공개할 작품의 토큰을 2021년에 판매했다.


-이 토큰은 고유한 코드가 새겨진 금속 동전으로 위조 방지 라벨이 부착되어 있으며, 2024년 1월 1일 이후 실제 작품으로 교환할 수 있다. 만약 저작권법의 기한이 변경된다면, 토큰을 통한 작품 교환 일정도 지연될 수 있고, 작품 역시 계속해서 토큰 상태로 유지된다. 이 작업은 저작권법의 모호한 지점을 탐구한 예술 실험으로, 실제로 저작권을 침해하기 이전에 저작권을 침해하는 작품을 판매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이다.


-'무인도에 떨어지면 미키마우스를 그려라. 그러면 디즈니가 헬기를 타고 널 고소하러 찾아올거다.' 미키마우스 보호법을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말한다는데, 작가의 작업 실천과 컬처-레디메이드 철학의 연장선상에서 창의성을 억압하는 법적 행위를 작업 매체로 활용한다. (컬처-레디메이드 : 기성품의 본래 기능과 의미를 예술적 맥락에 배치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 물론 대규모 기업에대한 도전이어서 웃고 넘어가지만, 컬처-레디메이드는 어디서 부터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성숙하면서도 유쾌하게 사회를 향해 소리치는 작품들


-미국의 총기소지 문제를 유쾌하게 풀어낸 프로젝트다. 미국에는 총을 경찰서에 반납하면 금전적 보상을 해주는 총기 매입 프로그램이 있는데, 효과는 크지 않다고 한다. 총기 소유자가 미스치프에게 총을 보내면 총을 녹여서 그 크기와 위력에 비례하는 검을 만들어준다. 검은 생각보다도 날카롭지 않고, 돌을 치면 깨질 정도로 단단하지 않은 무기라서 '더 큰 흉기가 생기는거 아냐?'라는 생각을 잠재울 수 있다.


-남편에게 '이 아이디어 너무 좋지 않아?'하며 물어봤더니 자기가 예전에 스텐딩 코미디에서 봤던 총기사용 규제 방법이 훨씬 현실성 있다며 알려줬는데, 그 분은 '총알 하나에 5000달러 하면 아무도 집단난사를 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이야기 했다. 내가 너를 죽이기 위해 매우 열심히 투잡을 뛰고 몇 년동안 일을 할거야! 라고 하는데 신박하고 웃기긴 했지만 이것도 결국은 모든게 돈으로 치환돼버리는 것 같아서 속으로는 안웃겼다. 근데 이 멋진 검은....! 나에게 총은 없지만 마법사의 검이 생긴것 같은 위안감을 주기도 하니까.  



-가장 '멋지다'고 생각했던건 의료비 청구서를 그린 ‘메디컬 빌 아트(Medical Bill Art)’다. 그림 세 개는 각각 다른 사람의 실제 의료비 청구서를 모델로 했다. 미국의 무시무시한 의료비의 실태를 보여주기도 하면서 긍정적 영향을 미친 프로젝트이다. 전시된 그림의 청구비는 모두 합쳐 우리 돈으로 9700만 원 정도. 아파서 병원에 갔을 뿐인데, 1억을 내야한다면 병원 못갈듯...


Medical bill art, 2020

-미스치프는 미술 시장을 활용해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의료비 청구서를 캔버스에 그린 후 미술품 경매 시장에 세워 의료비와 같은 가격인 9700만 원에 팔았다. 물론, 이 돈은 힘겨워하는 당사자들의 ‘빚’을 갚는 데 모두 사용했다. 여기서 또 주목해봐야할 건, 미국의 의료비 시스템 뿐 아니라 미술시장의 시스템일지도 모른다.




예술로 건들 수 없는 신성한 영역은 없다.


-데미안허스트의 스팟페인팅 시리즈 중 하나를 구매한 후 스팟을 하나하나 오려서 액자에 넣고 미스치프의 서명을 넣어 판매함. 원작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예술품에 대한 접근성을 높였다.


-워홀의 진품 1점과 나머지 복제품 999점으로 워홀의 작품일 수도 있는 1,000점의 에디션도 인상적이다. 계속해서 복제하고 위조하다 보면 원본도 파기되어 위조품이 된다는 내용, 그리고 인쇄물 또는 쉽게 복사 가능한 작품을 제품화하면 각각의 가치는 줄어들지만, 전체적인 수익이 증가한다는 내용. 그걸 한눈에 들어오도록 설치했다.


Jesus Shoes (좌), Satan Shoes (우)

-요르단강에서 공수한 성수가 담긴 예수 신발, 붉은 잉크와 실제 사람의 피가 섞인 사탄 신발을 순식간에 완판시켜 버리면서 ‘콜라보레이션이 증가하는 추세를 풍자하고 싶었다. 모두가 콜라보를 한다면 우리는 예수님과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는 발상이 아주 재밌었다.


-<예술로 건들 수 없는 신성한 영역은 없다>는 것을 재치 있게 풀어낸 전시. 세계 최초 미술관 전시라지만, 전시를 보는 것 보다도 재밌게 놀다 온 느낌이다. 너무 재미있어서 계속 사진 찍으면서 봤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사진찍는 내가 인식되면서, 순간의 즐거움을 흘러가게 두지 못하는 것이 신경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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