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 디터람스
-하고 싶은 게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본 직업에 만족하면서도 이대로 머무를 수 없어서 이것저것 기웃거린다. 요즘 대세인 숏폼도 한번 만들어봐야겠고, 미술 심리 지도자 자격증 과정에서 배운 내용도 정리해 놓고, 글도 쓰고 싶고, 영어 공부도 하고 싶고, 전시회도 다니고, 수영도 다니고, 주말에 남편이랑 놀아야 하고, 하루에 만 보 걷기하고, 독서 모임도 해야 하고, 미술사 공부도 천천히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날에는 계획이 무섭게 아무것도 못 하고 끝날 때도 있다. 나는 굉장히 걸음이 느린 사람인데 원하는 대로 따라가지 못해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디자인 공부를 시작하자고 마음먹고 디터 람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힌트를 얻었다. 이렇게 혼란스럽고 스트레스받을수록, 내 삶을 조금 단순하게 다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디터 람스는 1932년 독일 태생 디자이너다. 17세의 나이에 작은 바우하우스였던, 테크니컬 컬리지에 입학하여 사진, 미술과 공예, 건축을 배운다. 당시 유럽의 디자인은 바우하우스의 영향력이 컸다.
-바우하우스(1919-33)를 기점으로 전쟁 이전의 디자인과 이후의 디자인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던 디자이너들은, 19세기 유럽이 중시했던 계급 상징성, 장식성을 없애버린다. 세계대전 이후 과거의 끔찍한 그늘을 벗어나기 위해 디자인을 정치의 일부로 활용하여 더 좋고, 더 민주적인 세상을 만들어 가려 노력한다.
-전쟁 이후, 황폐해진 유럽에 신도시가 들어서고 한꺼번에 새살림을 구매해야 했던 50년대에 가전제품의 소비가 급속도로 늘어나게 되었고, 건축을 공부하던 디터 람스는 1955년 브라운사에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입사한 후 1961년부터는 제품디자인을 하기 시작한다. 브라운에서 만든 계산기, 라디오, 면도기와 비초에에서 만든 의자와 가구들은 아직도 디자이너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특히 애플의 수석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도 자신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디자이너로 디터 람스를 꼽았다.
-' Less but better. (최소한, 그러나 더 나은 것.) 단순히 디자인 컨셉이 아니라 우리의 태도에 관한 것.'
제품이 혼자서 잘났다고 소리치는 게 아니라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것, 그리고 제품의 본질을 사용자가 더 좋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는 디자이너의 생각이 제품으로 녹아들어 아직도 주목받는 것 같다.
-디자인은 실제로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고 다른 팀원들과 협업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든 사람의 이름과 업적보다는 하나의 얼굴로 기억한다. 사람들이 갑자기 디터 람스를 '미스터 브라운'이라고 불렀을 때, 그는 각각의 디자인에 모든 디자이너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항상 팀으로 인식되기를 바랐다.
오늘날 어떤 산업 분야도 고쳐 쓰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사로운 걸 사버리는 게 낫다는 현상을 만들어버렸죠. 우리는 풍요로움 속의 비문화적인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너무 많이 남아도는 불필요한 것들만으로는 미래가 없기 때문입니다. - 디터 람스(Dieter Rams)
-소비사회에서 제품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의 철학이 빨리빨리 소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것이라니! 모던의 형태를 깨고 개성 넘치는 모양을 뽐내는 포스트모던의 가구들을 지팡이로 가리키며 '자원 낭비, 쓸데없는 물건'이라고 이야기하던 모습에서 얼마나 자기 철학이 확고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었다. 디자인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지 새로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는 말도 와닿았다.
-디자이너는 자연에 대한 감성과 이해,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그는, 70년대 중반 '우리가 지구에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에 '오 이런, 내가 문제를 만들고 있었군' 라고 스스로 답을 하며 10가지 원칙을 만들어 다음 세대에 전달한다.
모든 것은 상호작용하며, 서로 의존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무엇인지, 어떤 방법으로 그 일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왜 그 일을 하는지 더 철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디자이너로서의 제 작업을 창조하고, 제 디자인 철학의 기본이 되는 10가지 원칙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좋은 디자인은 혁신적이다.
Good design is innovative.
디자인은 항상 혁신적 기술과 병행된다. 기술이 동일한 수준에 있지 않다면 어떻게 디자인도 좋을 수 없다.
2. 좋은 디자인은 제품을 유용하게 한다.
Good design makes a product useful.
좋은 디자인은 목적에 부합하지 않거나, 반대하는 모든 요소를 무시하고 유용성을 극대화 한다.
3. 좋은 디자인은 미적이다.
Good design is aesthetic.
개인의 환경과 생활에 큰 영향을 주는. 잘 만들어진 것만이 아름다울 수 있다.
4. 좋은 디자인은 제품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Good design makes a product understandable.
제품의 구조를 쉽게 이해하도록 한다. 디자인 그 자체로 설명되도록 한다.
5. 좋은 디자인은 드러내지 않는다.
Good design is unobtrusive.
제품 디자인은 중립적이어야 하며, 사용자가 알아서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걸리적 거리지 않는, 혼자서 튀거나 하지 않는 다는 것)
6. 좋은 디자인은 정직하다.
Good design is honest.
정직이란, 제품을 실제보다 더 혁신적이고 더 가치 있게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것.
(ex. 플라스틱을 덮어 놓고 나무인 척 하지 않는 것)
7. 좋은 디자인은 오래 지속된다.
Good design is long-lasting.
유행에 민감한 디자인과 달리, 버려지는 것이 흔한 현대사회에서도 오래 지속된다.
8. 좋은 디자인은 마지막 디테일까지 철저하다.
Good design is thorough down to the last detail.
임의적이거나 우연이 아니어야 한다. 철저함과 신중함은 사용자를 존중하는 것이다.
9. 좋은 디자인은 친환경적이다.
Good design is environmentally friendly.
디자인은 환경보호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 자원을 보존하며, 물리적이고, 시각적 오염을 최소화한다.
10.좋은 디자인은 최소한의 디자인이다.
Good design is as little design as possible. Back to simplicity. Back to purity.
단순함으로, 순수함으로 돌아가라. 최소한의, 그러나 더 나은. '저는 이원칙이 영원할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앞으로도 수정되어야 합니다.'
-디터 람스의 디자인 방식은 색, 모양, 독창성, 반짝임을 찾는 시대에 디자이너들에게 외면받았다. 얼마 가지 않아 디자이너들은 이런 것에 싫증을 냈다. 그리고, 다시 본질로 돌아와서 디터 람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겉모양새가 단순해지려면 모든 것들이 내부로 들어가야 하므로 훨씬 더 복잡하다. 단순하지만, 과정은 단순하지 않다. 모든 것들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설득력 있는 디자인을 통해 앞으로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확고함을 보여준다.
-철학, 환경에 대한 헌신, 젊은 디자이너들이 좋은 디자인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디터 람스의 목표라고 한다. '산업디자인 전공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에서 그는 이렇게 조언한다.
1. 도시든, 방이든 넓은 시야로 바라볼 것.
2. 그리고 선생님 말씀이 다 맞지 않으니 다 믿지 말 것.
-기능주의 디자인은 사고를 가둬놓는 틀이라는 생각으로 인해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이를 멀리했다. 그러나 수년간 바뀌지 않은 제품, 새로운 기술로 교체되지 않는 것들이 주는 감정적 교류는 지나친 소비로 점철된 지금 시대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다큐멘터리로 디터 람스의 철학을 보면서 단순 디자인이 아닌 우리가 삶을 사는 방식에 대한 태도를 볼 수 있어 즐거웠다. 또한, 과도함과 시각적 혼란을 줄이고 정말 필요한 것들로 내 주변을 정돈하려면 뭣이 중요한지 생각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