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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큥드라이브 Dec 07. 2023

<1990년대를 아세요?>

우리나라의 포스트모더니즘

-90년대는 내가 태어났던 시대다. 어릴 적엔 2000년이 오면 진짜로 지구가 멸망하는 줄 알았다.

작년에는 갑자기 Y2K가 급부상해서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2000년대 초 음악을 틀어달라 그러질 않나 덕분에 패션이나 레트로틱한 광고들을 볼 때마다 향수에 젖을 수 있었다. 가까운 과거의 회상은 3040세대의 지갑을 열고, 새로움에 목말라하는 알파들의 흥미를 사로잡았다.


Y2K 트렌드는 젊은 세대가 가진 불안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인하대 소비자학과 이은희 교수는 “지금의 사회는 세기말처럼 불안정하고 그러한 불안을 떨치기 위해 분들은 밝고 화려하고 눈에 띄는 것들을 추구한다”며 “지금의 젊은 세대는 세련되고 정제된 것들만 보았기 때문에 2000년대의 복식이나 소품들을 보면 촌스럽고 낯설지만 새로움을 준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저희는 새로운 것들을 볼 수 있지만 안정감을 주지는 못한다”며 “복고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안정을 주기 때문에 항상 인기를 끈다”라고 말했습니다.

출처 : 살구뉴스 - 세상을 변화시키는 감동적인 목소리(https://www.salgoonews.com)”


-35년의 식민 기간을 거치고, 힘겨운 전쟁을 겪고, 기나긴 군부 독재를 겪었다. 참 고단했다 우리나라. 단색화나 민중미술의 대립에 힘이 빠지면서 1980년 후반부터 미술계의 관심은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옮겨갔다. 90년대 한국 미술은 동시대미술의 기원이라고 불리곤 한다. 90년대 미술은 80년대 미술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어서 그 이전과 다르지만 지금과도 다른 내러티브를 가진다고 여겨진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뭔디?

-원래 60년대 말 서구에서 시작된 포스트모더니즘은 단순히 미술 양식을 가리키기보다는 과학, 통신, 교통이 발전하면서 진행된 후기 산업사회의 문화 단계를 의미하는 포괄적 성격을 지닌다. 지난 100여 년 동안 모더니즘은 인류의 진보에 대한 믿음과 낙관주의, 서구 엘리트주의 중심으로 이뤄졌는데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를 깨부수고 대중문화, 제3세계, 소수문화를 받아들인다.


* 이랬는데 → 요래됐슴당 >_<

모더니즘으로 윌렘 드 쿠닝의 <여인> 작품을 보면 여성이 2차원 캔버스 위에 조형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의 게릴라 걸스의 작품은 평면뿐 아니라 퍼포먼스, 포스터 등으로 여성 해방을 외치고 있다는 것.


-모더니즘 미술의 경우 매체의 단일성, 순수성의 강조, 명작과 거장의 개념을 중요시하면서 그 주요 흐름은 추상미술이 차지했다. 회화가 회화답게 순수하려면 2차원의 평면, 캔버스 틀에 물감으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그동안 변화해 온 인간의 일상적 경험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공격을 받으면서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매체의 독자적 성격, 순수성을 혼란시키는 콜라주, 멀티미디어, 퍼포먼스 등의 혼합 형태가 등장하였다.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에는 하나의 형식이 없다. 형식의 집착에서 벗어나 특정한 역사적 상황이나 집단의 정체성, 개인적 서술을 중시한다. 급성장해버린 한국 사회는 모더니즘이 완전하게 정착하기도 전에 소비중심적 사회로 진입하고 미디어의 역할이 점차 증대하는 등 후기산업사회의 현상이 조금씩 나타나고, 다양한 가치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아니 한국에 모더니즘이 있었던 적이 없는디 무슨 포스트 모더니즘이여?

-우리나라 미술계에서는 단색화를 비롯해 지나치게 형식주의적 경향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했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이 사회적 변화와 현실에 기반해 나타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맹목적인 수용이라는 부정적 입장도 만만치 않았다. 포스트모던은 모더니즘의 필연적 반발로 볼 만큼 한국 화단의 모더니즘은 성취되었나? 한국의 모더니즘 미술은 무엇인가?와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얼마 전에 <국립현대미술관 : 미지의 전망들: 동시대 미술과 제도> 심포지엄에서 정현 교수님이 '모더니즘과 동시대 미술 사이의 전환기'를 발제해 주셨는데 정리하다가 '아, 나 90년대 미술 많이 모르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이소 작가, 이주오 작가 등 여러 작가님들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면 90년대의 역동, 혼란스러움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아래는 심포지엄에서 메모한 내용을 내 맘대로 편집한 것이다.


1. 90년대, 다양한 충돌

-세계사에 서울의 장이 열렸다. 동서 화해, 88 서울 올림픽,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90년대 프랜차이즈가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성수대교 붕괴, 가속화된 산업화, 경쟁주의, 무조건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발전 주의가 초래한 비극이 일어났다. 1990년대를 이끈 동력은 다양한 미술의 실천이다. (포스트모던, 대중문화, 여성주의, 청년작가, 혼성문화, 문화연구, 탈식민주의, 예술제도, 세계화) 이를 통해 과거와 미래를 가교하는 시대였다.


-90년대는 7-80년대보다 자료가 구체화되어있지 않아 엄청난 혼란과 충동이 혼종 되어 어떤 사조나 틀로 규정짓기 어렵다는 의견을 주셨다. 서구와 비서구, 동시대 그 이전, 공간과 시간의 답을 내리기 쉽지 않지만 많은 질문을 할 수 있는 주제가 90년대 미술이라고.


2. 예술제도와 교과로서의 전시

-80년대를 넘어오면서 양식화나 선언문으로 출발하는 예술 형식이 소진되기 시작한다. 냉전에서 탈냉전으로, 세계화로 넘어가면서 권위주의에 물려있던 젊은이들이 문화나 현실, 쾌락에 좀 더 집중하게 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90년대까지만 해도 국현의 전시를 살펴보면 계몽전, 그룹전, 젊은 모색같이 역사를 기술하기보다는 시대, 주제 중심으로 만들어진 전시가 대부분이었다. 90년대는 너무나 많은 것이 엉켜 식별하기 어려운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구체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세계화시대의 경쟁은 궁극적으로 문화역량의 경쟁이며, 그중에서도 미술이 지니는 비중이 각별히 크다고 믿습니다. 미술의 도움이 있어야 모든 산업제품들은 높은 부가가치를 지닐 수 있으며,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뒤진 미술문화를 가지고 이러한 일이 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국민이 미술을 사랑하지 않는데 미술이 발전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21세기에는 예술적 창조력이 국가경쟁력의 핵심 요소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 각계로부터 우리 미술의 발전을 위한 더 큰 지원과 격려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미술의 해 개막 선포식 대통령 메시지

-90년대부터 공연장, 박물관, 미술관 등 문화시설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게 된다. 호암미술관(82), 아트선재미술관 (91), 워커힐미술관(92), 금호, 일민, 대림, 포스코등. 제도가 등장하여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역사, 미학, 비평이 구체화되기 때문에 제도의 등장은 환호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제도가 지나치게 관여를 해서 자율성을 담보하지 않는다면 악습될 수 있는 여지가 분명하다.  


-또한 미국 휘트니 비엔날레(미국인이어야만 전시 가능한 비엔날레)등 포스트모더니즘 4대 거장전처럼 교과로서의 전시가 행해지면서, 동시대 미술이란 이런 것이고 우리는 이런 동시대미술을 배워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3. 탈역사와 예술의 종말은 단토 <예술의 종말, 그 이후>를 살짝 들여다보고 나중에 해야겠다.


80년대가 궁금하다면

<영화 서울의 봄, 그리고 1980년대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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