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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큥드라이브 Oct 12. 2023

<욕심이 나를 갉아먹을 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장욱진 회고전


-사회적 동물인데 인간이 어떻게 비교를 안 하고 살 수 있을까. 여러 사람과 함께 지내면서 비교를 통해 차이점을 깨닫고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기도 하는데 거기에 욕심이 끼어들면 나를 갉아먹기 시작한다. 열등감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만, 나에게는 공부가 열등감의 원천이다. 학창 시절에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방법을 몰라서 성적이 썩 좋지 않았고, 그건 수능까지도 이어졌다. 수능 점수는 대학을 결정지었고 거기서부터 나의 열등감은 증폭되기 시작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많이 극복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르쳐야 하는 직업 특성상 굳이 작아지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열등감이 스멀스멀 기어나와 스스로를 끌어내릴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장욱진의 아주 심플한 그림에서 용기를 얻는다. 그래, 나는 나지. 내 곁에 멋진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자. 그들과 함께하는 나도 멋진 사람이야. 다른 사람들 눈에 잘 보이기 위해서 억지로 나를 치장하고 꾸며내지 말자. 그리고 같이 성장하고 발전하면 돼.



-“나는 나로서 족한 것이지 왜 남하고 비교하는가. 그래서 갈등이 생기고 열등의식이 생기고 자아가 망가진다. 그림이란 무엇인가. 결국 자아의 순수한 발현이어야 하지 않는가. 비교하다 보면 절충이 될 뿐이다. 누구의 그림이 좋다 하여 그것을 부러워하여 내가 그렇게 그리고자 한다면 그게 어디 그림인가. 자존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남에 대해서 인정할 것은 다 인정하고 자기는 자기로서 독립할 수 있어야 한다. 예속된다는 것은 자아의 상실이다. 너를 찾고 너를 지켜라. 자유로 가는 길이 거기에 있다.”


전국 학생미전에서 상을 탄 <공기놀이>

-떡잎부터 남달랐던 장욱진은 16살에 그림그리기를 반대하는 고모에게 빗자루 세 개가 부러질 정도로 맞으면서도, 울면서 발로 그림 그릴 정도의 고집을 가지고 있었다. 그 무렵 성홍열에 걸려 요양차 수덕사에 가게 되는데, 이곳에서 나혜석을 만났다. 인연은 정말 놀랍다. 그녀는 허구한 날 그림을 그리는 장욱진을 격려해 주고 같이 스케치도 하면서 ‘나보다 더 잘 그린다”고 칭찬하기도 했단다. 건강을 회복한 후 38년도에는 전국 학생미전에서 특선을 받고 상금 100원으로 고모에게 비단 치마를 사주었다. 드디어 인정받고 그림 그리는 삶을 살게 된다.


-그렇게 대학도 졸업하고, 결혼도 하고, 자녀도 생기고, 국립박물관이라는 직장도 다녔다. 그러다 1950년 6.25전쟁이 터졌다. 비슷한 시기 이중섭이 그랬던 것처럼, 장욱진도 그저 무능한 가장일 수밖에 없었다. 술을 달고 살던 장욱진은 51년도에 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을 때 처자식들을 떠나 조부모님의 고향인 충청도에서 요양한다. 이 때 <자화상>을 그린다. 아주 작은 크기의 그림인데 감정은 커다랗게 느껴진다.


<자화상>

-“이 그림은 대자연의 완전 고독 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 그때의 내 모습이다. 하늘에 오색구름이 찬양하고 좌우로는 자연 속에 나 홀로 걸어오고 있지만, 공중에선 새들이 나를 따르고 길에는 강가이자 나를 따른다. 완전 고독은 외롭지 않다.”

-장욱진의 나이 48세, 부인이 45세였던 1964년에 둘째 아들 형구가 태어난다. 그리고 장욱진의 그림에서 가족의 모습이 나타난다. 아주 소박하고, 절로 웃음이 나도록 귀여운 그리고 따뜻한 그림들. 그러나 1979년 형구는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어머니는 지금도 형구가 당신의 스님이라고 말씀하시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깨우치기 위해서 오신 도인이라고 믿으신다. 어머니뿐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 형구를 통해 죽음과 삶과 덧없음과 일상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하며 어떤 책과 학교에서도 배울 수 없는 마음의 공부를 했다. 마음 한구석이 아프지 않은 날이 없었지만.” - 장녀 장경수.


-장욱진의 작품은 군더더기가 없다. 어린아이의 그림일기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파울 클레나 샤갈의 작품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정겨운 까치나 오두막, 초록빛의 싱그러운 나무, 줄지어 날아가는 네 마리의 새, 짝 맞추어 있는 사람과 집과 나무를 보면 ‘아 장욱진의 그림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산다는 것은 소모하는 것. 나는 내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죽는 날까지 그림을 위해 다 써버려야겠다. 내가 오로지 확실하게 알고 믿는 것은 이것뿐이다.”


-숫돌에 몸을 가는 것 같은 소모, 내가 사랑하는 것에 푹 빠지면 배가 고픈 줄도 아픈 줄도 모르게 몰입되어 버리는 것처럼. 나에게 집중하면서 불필요한 욕망을 불태워 버려야지.


<본 것>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

2023.09.14-2024.02.12.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방구석 미술관2 / 조원재

*살롱 드 경성 / 김인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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