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 김구림
-”사람은 변한다는 말을 믿습니다. 좋게 변하고 싶습니다…”남편이 혼인 서약 때 했던 말 중 하나다. 울먹이면서 하는 말이 어찌나 무겁고 사랑스럽던지. 오늘 김구림 작가의 초창기 작품부터 최근 작품까지 한없이 변해왔던 작품의 과정을 보면서, 하루하루 좋게 변하는(?)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다. 인간의 사고가 변하면 작품도 변해야 한다고. 인터뷰 내용에서 작가는 ”흑백 TV에서 컬러 TV로, 인터넷 매체로 계속해서 변해가는데 왜 수십년 동안 같은 작업이 나올 수 있겠냐“고 되묻는다.
-그도 그럴 것이 37년생인 우리 외할머니보다 한 살 오빠이시다. 격동의 한국에서 시대의 물살을 빠르게 타며 계속 새로운 재료, 매체, 방법을 탐구한다. 전쟁의 상처와 유럽인의 실존이 담긴 덕지덕지 처바르는 앵포르멜 회화가 소개되던 1960년대에 작가는 죽음, 핵, 질, 면과 같은 이름에서 보이는 것처럼 인간 실존에 대한 고민을 캔버스에 표현한다. 나름대로 반항적 기질을 ‘붓으로 그리지 않는 회화’로 표현하는데, 가장자리가 불에 타버린 비닐의 흔적 같은 것들을 재료로 활용했다.
-1969-75년까지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를 통해 단순 추상이냐 구상이냐 이분법에서 벗어나 다양한 미술의 현상을 받아들인다. 제 1회 AG전에서 커다란 사각형 붉은색 통3개에 각기 다른 사이즈의 얼음을 넣고 그 위에 트레이싱 종이를 올려놓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얼음이 녹고, 종이가 물에 빠지고, 물마저 증발하면서 어그러지는 종이만 남는 작품 <현상에서 흔적으로>를 공개한다. 내가 갔던 시간대에는 얼음은 이미 녹고 물 안에 종이가 들어있는 상태였다. 자연의 변화에 비하면 작품의 변화는 턱없이 빨랐을 텐데, 내 눈에는 그 변화가 보이지 않아서 막연하게 ‘그렇겠구나’라고 상상을 했다. 자연스럽게 두면 무언가가 생성되고 소멸하는 과정이 이루어진다. 인생과 인간관계에 대입해 보면 생성과 소멸은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왜 이렇게 일상에서 받아들이기 힘든지 모르겠다.
-김구림 작가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자주 붙는다. 그중 하나가 사진 자료로 남아있는 대지 미술 프로젝트이다. <현상에서 흔적으로- 불과 잔디에 의한 이벤트>,1970 는 대보름에 논과 밭을 태우는 쥐불놀이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한양대 앞 강나루 건너편 살곶이 다리 옆으로 100여 미터 경사면에 골을 파서 7개의 삼각형을 만들고 잔디에 불을 놓은 것이다. 불에 탄 삼각형은 검게 그을렸고, 그을리지 않은 곳도 삼각형이 만들어졌다. 본래 같은 물질이었으나, 태우는 행위를 통해 불타버린 잔디는 다른 ‘현상’으로 남았다. 푸른 잔디가 돋아나는 땅에 그을린 흔적이 남는 것까지도 작품에 포함된다. 이것은 다른 작품들도 그렇듯, ‘음과 양’으로 표현된다. 그동안 몰라보게 변한 뚝섬이 반가웠다.
-가장 인상 깊었던 <1/24초의 의미>,1969는 삼일 고가도로, 세운상가, 고층빌딩, 옥외 광고판, 육교 등 빠르게 도시화하는 서울의 모습을 1초에 24프레임이 넘어가도록 속도감 있게 담았다. 요즘 유행하는 쇼츠처럼 장면전환이 굉장히 빠른데 차 안에서 달리면서 보는 고가도로, 거리의 행상 등 온갖 장면들이 있어 시간여행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우리 엄마아빠 어릴 적 체험.
-화단에서 화가로 취급을 안 해주는 당시 상황에서 작가는 “나를 시험대로 올려보자” 는 마음으로 일본 유학길을 떠난다. 73-75년까지 일본에서 사물과 시간의 관계성을 탐구한다. 유화 물감을 발라 옛 물건처럼 만들어 놓은 빗자루, 도끼, 삽이 미술관 한쪽 벽면에 줄지어 설치돼있다. 새 물건을 사 와 물감칠, 부수기, 사포질 등의 인위적 과정을 거쳐 시간을 거스른다. <현상에서 흔적으로>와 마찬가지로 우리 눈에 보이는 사물은 현상이지 본질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또한 만들어진 이미지와 실제의 간극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당시 한국의 판화는 목판, 실크스크린이 주를 이루었는데 메조틴트 같은 새로운 기술을 한국에 보급하기도 했다. 전시장에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봤던 작품인데, 식탁보 위에 오래된 걸레에서 옮겨온 얼룩 같기도 한 것이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제작된 것이다.
-1984년, 40대 후반 미국으로 떠난 작가는 맨해튼 빌딩 숲에서 자연에 대한 순수한 동경을 가지게 된다. 두 개로 이뤄진 내 키만 한 캔버스에 한쪽엔 불타고 있는 고층 빌딩, 다른 한 쪽은 주황색 면이 칠해져 있고 낚싯대, 물통이 놓여 있다. <음과 양 91-L 13>1991 은 자연과 인공의 대비를 강조하며 보여준다. 사실적인 도시풍경과 색 면, 그 도시 위에 일어나는 재해, 물과 불. 왜 낚싯대였을까? 생각해 본다.
-작품 속에서 계속하여 음과 양을 이야기한다. 우리나라 태극무늬에 표현된 음과 양을 보면 그 성질을 잘 알 수 있다. 양의 기운이 가득 찼다가 사라져갈 때 음의 기운이 차고 또 사라져가면서 커다란 원을 이룬다. 고정돼 있지 않고 계속 순환하는 태극무늬의 음과 양처럼 세상은 대조되면서도 서로 생하는 것들로 가득하다. 자연과 문명, 생과 사, 선과 악,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 등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하나가 생겨나면 동시에 따라 생겨나기도 한다. 서로를 대조하는 것 같지만 보완하기도 한다.
-판화, 설치, 퍼포먼스, 회화, 비디오 아트 등 범주를 넘나들며 다양한 재료와 매체와 방법으로 음과 양,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표출한다. 현재까지도 꾸준히 사회의 이슈에 민감하게 귀를 기울이며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작가의 유연함이 매력적이었다.
-젊은 작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냐는 인터뷰에 기성문화예술의 장례를 치렀던 김구림 작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유행에 따라가지 마라. 남들이 작품이라고 보든 장난이라고 보든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스스로 스프링과 같아서 누군가가 누른 만큼 보란 듯이 더 튕겨 나가며 위축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에서, 살아 보고 싶은 대로 살아본 작가의 뚝심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