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대화법

sbs아트멘터리 <당신과 예술사이: 예술가의 대화법>

by 큥드라이브

예술가는 감상자와 어떻게 대화를 나눌까?. 아니, 애초에 감상자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할까?

SBS아트멘터리 ‘예술가의 대화법’은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수상자들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감상자의 질문을 바탕으로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방식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사이의 질문’프로그램을 통해 작품과 관람객 사이에 진짜 대화가 시작된다.


@mmca_education

첫 번째 주인공은 양정욱 작가님이다. 네 전시관 중 관람 환경이 가장 감상자 친화적이었다. 벽면에 마련된 벤치 덕분. (꽤 많은 사람들이 사방으로 앉을 수 있었다.) 그래서 오랜 시간 작품 멍을 때렸다.

전시장 간 날 운좋게 양정욱작가님 작품설명을 들었다!

어두운 공간을 따뜻하게 만드는 전구, 전구 너머로 너울거리는 그림자,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기계, 기계라기에는 포근하게 느껴지는 재료, 고독한 것 같으면서도 연결된 부위가 서로를 지탱하고 쓰다듬는 것처럼 보인다.

왜 기계라는 매체로 접근하게 되었나요?라는 질문에 ‘저는 기계라는 매체로 접근 안 했는데요.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고, 이 이야기를 읽게 하려면 표지가 필요해요.’라고 천천히 작품을 소개하는 전개가 몰입감 있다.

‘예술’을 한다고 하면 거대 담론이 담겨야 할 것 같은데. 양정욱 작가의 영감의 원천은 ‘가족’이다. 그래서 지금 이 시점에 작품이 더욱 사랑스럽다. 아내가 유난스레 가꾼 텃밭에서 발견한 아내의 움직임 - 쌓고, 묶고, 조심조심, 단단하게, 흔들리고, 고정하고, 옮기고, 포기하고, 다시 하고…. 어쩌면 평범한 일상을 사는 모습을 글과 함께 움직이는 이야기로 짓는다. 그래서 그렇게도 따뜻하게 느껴졌나 보다.

제인진 카이젠 <이어도(바다 넘어 섬)>


제인진 카이젠 작가의 제주 이야기는 자연과 함께 몽환적인 영상으로 나타난다.

‘작품에 나오는 소품들은 어떤 것들이 있고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와 같이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을 통해 소개가 이뤄진다. 영상 속 흰 천인 ‘소창’은 이번 전시에서 난생처음 들어봤다. 아이가 태어나면 감싸고, 장례에도 사용되는 이 천은 삶과 죽음을 순환하는 상징이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작품이 모두 한눈에 들어온다. 마주 보고 설치된 스크린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각각 제주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담는다. 제주에서 태어나 덴마크로 입양 간 작가의 뿌리와 정체성을 알아가는 자화상 같았다.

윤지영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내장을 꺼내 그물을 짓던 때가 있었다>(좌), <호로피다오>(우)

전시를 보고 난 후 가장 오랜 잔상으로 남은 건 윤지영 작가님의 작품이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어딘지 모르게 축축하고 불쾌한 감정. 아마도 작가가 선택한 매체의 속성 때문인 것 같은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부분이 제일 인상적이었다. 이 재료 말고는 작가님의 이야기를 더 적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입구부터 축 늘어져있던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내장을 꺼내 그물을 짓던 때가 있었다>는 내장을 꺼내는 것도 고통스러운데 그걸 그물로 엮어낸 형상을 하고 있다. 그리고 아픔을 꺼내어 다시금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시키는 작품이 연결된다. 서로의 안녕을 바라는 4가지 언어를 밀랍 실린더에 기록한 후 그것을 녹여 자신의 얼굴을 주조하는 과정을 영상에 담아낸 <호로피다오>가 그렇다. 밀랍의 가소성은 친구의 목소리를 담고, 작가의 얼굴이 되었다가, 또 다른 무엇인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정신적 고통과 신체적 고통의 연관성, 안과 밖, 고통과 생존 그리고 치유와 염원의 개념을 담은 개념에 깊숙한 울림이 있었다.


권하윤 <옥산의 수호자들>

권하윤 작가님은 방대한 사료와 인터뷰를 기반으로 역사와 개인의 기억을 가상현실로 담는다. 예전에 국현 전시에서 작가님의 <498년>을 통해 DMZ를 VR기기로 경험했다. 실재하지만 실제로 갈 수 없는 장소를 경험하기 위한 가상현실은 완벽한 매체였다. 마찬가지로 올해의 작가상 전시에도 VR과 영상들이 출품되었다.

권하윤 <옥산의 수호자들>


<옥산의 수호자들>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인류학자와 대만 소수민족 부눈족 족장의 개인적인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붉은 조명과 무대장치 같은 실루엣이 압도적인 공간에서, VR기기를 착용한 관객이 마치 퍼포먼스를 하는 듯하다. 몇 년 전 단순 VR기계를 끼고 작품을 보았던 것과 달리, 밖에서 보는 관객의 모습과 안에서 경험하는 가상현실 모두 작품으로서 의미가 창출된다고 느꼈다.

‘작업이 생각보다 더디게 진행될 때 돌파구가 있는지 궁금합니다.’라는 질문에 작업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으면 환기도 못 시키겠고 숨도 잘 못 쉬겠다고 답했다. 이 탄탄한 작품 뒤에 숨겨진 노고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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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에 다소 낯선 현대미술에는 때때로 번역기가 필요하다. 이 다큐멘터리는 미술관에서 느꼈을 낯섦을 편안한 대화로 풀어낸다. 네 명의 작가가 들려주는 예술이야기가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동시대미술의 친절한 안내자가 될 수 있는 그런 다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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