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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널 HQ Jan 31. 2023

 먼 미래 말고 10년 후

10년 후에 무엇을 하고 있을지 고민하라는..

2003년 우연히 떠난 첫 해외는 베트남이었다. 다니던 직장에서 직속 상사와 불화가 있었고, 무작정 회사를 뛰쳐나온 그날, 가장 빠른 해외여행지를 검색해 떠났던 첫 해외여행. 

여권과 최소 경비만 챙겨 도착한 곳은 호치민시. 아무런 계획이 없었던 나는 그냥 숙소 근처를 다니다 흘러 흘러 호치민인문사회과학대 앞을 갔다. 한국의 대학가를 생각했지만 베트남의 대학가는 상상 밖이었다. 학교 안을 어슬렁어슬렁 거닐다 우연히 한국어과 학생들이 수업을 하고 있는 강의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때, 한 학생이 나를 봤고 강의실로 초대를 받아 들어가게 되었다. 꼭 한국어만 써야한다는 선생님의 당부를 듣고 참여한 수업은 나에게 새로운 세계였다. 또 하필이면 그 날이 선생님의 생일이라고 수업을 마친 후 다같이 노래방으로 갔다. 물론 나도 끼워주셨고, 그 곳에서 제일 많이 한 말은 '안녕하세요' .. 그 때 학생들은 1학년이었다... 


초면의 외국인,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도 알 수 없는 사람에게 전혀 부담을 갖지 않고 함께 하자고 말할 수 있는, 그것도 공식적 수업, 그들만의 행사에 꺼리김없이 나를 끼워주는 베트남 친구들에게 푹 빠지게 된 계기다. 


그날 이후 모든 베트남에서의 시간은 그 친구들과 함께 했고, 오토바이를 타고 배를 타고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한 친구의 고향집을 방문하기도 하면서 나는 새로운 세계,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세상과는 다른 세상을 경험했다.


귀국 후 나는 베트남에 푹 빠져, 2013년... 10년 동안 모든 삶의 중심에 베트남을 두었었다. 베트남과 관련된 일을 하지만 돈이 되는 일은 없었고, 베트남을 가기위해, 베트남 친구들을 만나기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베트남을 한 달에 한 번씩은 방문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급기야 베트남 연수를 핑계로 1년이 조금 안되는 시간을 베트남에서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10년을 보내다가 뜻하지 않게 하던 일을 멈춰야만 하는 상황이 왔다. 처음 두 달은 전국을 돌아다녔다. 활동을 하며 만났던 친구들이 전국 곳곳에 있어 그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함께 했던 시간을 나눴다. 그런데 그 일마저 끝나고 나니 허무해지기고 했고, 막상 베트남을 빼고 미래를 준비한게 없다보니, 7달 가량을 방황하며 살았다. 그 때, 옆에서 응원해주고 지지해주었던 아내가 없었다면 아마 계속 나락으로 떨어졌겠지..


이제 무언가를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다큐를 만들겠다, 그림을 그리겠다, 영어를 배우겠다, 글을 써보겠다, 여행사를 만들겠다... 이런 저런 걸 시도하다가, 예전에 같이 활동을 할 때 많은 도움을 주셨던 선생님을 만났다. 뭔가 길을 찾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나를 지지해줬던 사람들을 만나 힘을 받고 싶었다.

그날 선생님은 


'너무 먼 미래를 고민하지 말고, 10년 후에도 뭘 하고 있을지 고민해 보는 게 어떨까요?'


그 때는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당장 뭘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도 했고, 무언가 딱 손에 잡히는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었다. 


방황을 마치게 된 계기는 너무 순식간에 불쑥 찾아왔다. 지도교수님의 추천으로 잠깐 새로운 일을 경험해보겠다고 들어왔던 이곳에서 훌쩍 10년이 되었고, 조금은 지쳐가는 이 생활을 하다보니, 10년 전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10년. 평생 뭐할 것인가보다 10년 동안 뭘할까를 고민하며 살아오셨다며 해 주셨던 그 이야기.

지금 난 앞으로 10년을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고민하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해 돈은 벌어야 하고, 예전과 달리 써야할 곳이 더 늘어난 지금, 예전처럼 무작정 모든 걸 던지고 새롭게 시작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미치도록 싫거나 벗어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아직 떠날 때는 아니라는 생각도 있다.

하지만, 이후 어느 순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예전처럼 방황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예전의 방황은 나 혼자 감당하면 됐지만, 지금은 나 혼자 감당해야하는 상황이 아니기도 하고- 조금씩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지금 난 앞으로 10년 간은 지금하고 있은 일을 하려고 한다. 다만, 올해부터 10년, 또 내년부터 10년, 내후년부터 10년.... 그렇게 매년 앞으로 10년을 고민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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