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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널 HQ Mar 23. 2023

사과를 받아야 하는 이유

피해자가 잃어버렸던 삶, 존엄, 명예를 회복하는 것

난 '더 글로리'를 보지 않았다. 사실 보지 못하고 있다. 어떤 기억이 있어서라기보다 보지 않아도 머리 속에서 그려지는 상황들을 내 눈으로 보는 것이 두렵다. 세상에 알려져야할 내용이지만, 그 내용을 확인하면서 피해자들에게 공감하며 느껴질 그 고통이 두렵다. 제3자인 내가 이렇게 어려운데, 그 당사자들은 그 내용을 보며 얼마나 고통스러울까를 생각하면 '더 글로리'는 세상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글로리'가 필요한 이유는 사람들이 그 아픔과 고통들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고, 이를 알고 반성하고 사죄해야 어느 누구에게도 그런 아픈 고통스러운 과거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에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여러 다양한 종류의 폭력 피해자들이 치유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픈 기억, 고통스러운 기억은 애써 꺼내지 않고 삭이는 것을 선호하는, 참아내는 것이 더 나은, 성숙한 사람이라는 문화도 있지만 오히려 그 기억들을 꺼내서 내 옆에 두고, 내 앞에 두고 이야기함으로써 치유된다고 보는 문화도 있다. 

내가 본 영화나 드라마에서 아프고 고통스러운 과거를 가졌던 주인공들이 그 기억을 꺼내 드러내고 직시하는 것으로 결말내는 경우가 많았다. 영화나 드라마가 현실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또 사람의 삶과 아주 동떨어진 이야기들이 아니라는 점에서 생각해볼 부분이 있을 듯 하다. 


 또 우리는 종종 속에 담아두고 말하지 못하는 것보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야기를 하고나면 속이 후련해지기도 한다. 그렇게 크든 작든 무겁든 가볍든 내 속에만 있던 기억들을 꺼냄으로써 치유받는 경험들이 있고, 심리상담의 핵심이 그거 아닐까? 마음 치유에 대한 책에서도 대부분은 기억을 꺼내 놓으라고, 말하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더 글로리'는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해법과 관련해 논란이 크다. 미래를 위해 과거는 이제 그만 놓아주자는 주장, 과거에 대한 직시와 진심어린 사과가 없는 상태에서 오는 미래는 불합리한 과거의 반복이라는 주장이 있다. 전자는 과거의 사실들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게 되니 가해자에게 보다 유리한 주장일테고, 후자는 과거의 사실들에 사과를 받아야만 삶이 그 고통스런 피해가 있기 전 삶으로 돌아갈 수 있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피해자에게 보다 유리한 주장일 것이다.

피해 당사자가 아닌 이상, 제3자의 시선으로, 개인에게 집중하지 않고 문제를 바라보면 전자에 호응할 가능성이 높다. 아마 그래서 세계 다른 나라들은 환영의 메시지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꼭 당사자가 아니어도, 그 피해자들에게 공감한다면 후자에 더 마음이 쏠릴 수 밖에 없다. 일본의 시민단체들이 후자에 힘을 실어주는 건, 그 일본사람들은 한국의 피해자들에게 공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건 '공감'이다.


피해자들이 원하는 건 뭘까? 그들은 진정어린 사과와 배상을 원한다고 했다. 언뜻 미안하다 말하고 피해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하면 되는거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니 둘 중 하나만이라도 받으면 되지 않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다수의 폭력 피해자들은 금전적 보상이보다 진심어린 사과를 더 원하고 있다. 중요한 건 피해 당사자들은 가해자들에게 무엇을 얻으려는 게 아니고 자신을, 폭력 피해가 있기 전의 자신의 삶을 되찾고 싶은 것이다. 가해자들의 진심어린 사과가 있어야만 한 사람으로써의 존엄과 명예, 인간으로 살아가는 사람임을 보증받을 수 있고, 그래야 평범한-그 어려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은숙 작가가 '더 글로리'라고 제목을 지은 이유라고 한다. 피해자들이 회복하고 싶은 것은 폭력의 순간에 잃어버린 존엄과 명예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2023.3.16.자 경향신문, 오피니언 '반드시 받아내야 하는 사과'를 읽고 든 생각 정리. 


#더글로리 #강제동원해법 #공감 #피해자의_존엄과_명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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