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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널 HQ Aug 14. 2017

아닌계절... 오류현실 인정이 삶일지도...

구효서 '아닌 계절'

구효서 작가의 아닌 계절.


책을 읽고 나서 뭔가를 쓰고 싶다고 느끼거나 써야겠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되거나 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실제 뭔가를 끄적이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마저도 머리 속에 뭔가 명확히 떠올라 길게 나만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냥 툭툭 떠오르는 짦은 문장과 단어를 쓰고 싶어지는 경우는... 특히 논리성에 대한 부담은 던져버리고 타인의 이해를 구하지 않고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끄적임을 하고 싶어지는 경우는..


아닌 계절은 아니 어쩌면 구효서라는 이가 의도했건 아니건 상관없이 난 그의 이야기 또는 그의 이야기에 대한 태도, 그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했다, 에 빠졌다 아니 빠져들었다. 이해와 상관없이...


어차피 글이든 그림이든 음악이든 무용이든 영화든 무슨 이름을 가졌건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표현하기 위한 장르는 그것을 표현 또는 표출하는 이는 그 행위에서 자신의 목적은 끝나는 것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또는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표현 또는 표출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오류투성이인 현실을 우리는 어쩌면 합리성 논리성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떠들고 믿는 태도로 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만, 내가 해석한 또는 이해한 구효서 아니 아닌 계절은 '현실과 연루되고 싶지 않다'는 이의 태도가 내게는 전해졌다. 내 인생의 오류, 무논리성, 무합리성, 무인과관계성을 난 이미 여러해 고민해오고 있었기에 더더욱... 그래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데? 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뭐 그러든지 말든지...하며 읽어나간..


그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뭔지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 이유는 그의 의도였을지 모르겠다. 오히려 그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어쩌면 그가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반란일지도. 그래서 인가 아닌 계절은 현실을 살지 않는 이가 현실을 사는 것으로 이해된다. 자기 자신이면서 동시에 자신이 아닌 존재이면서 또 존재가 아닌 것도 아니면서 자기 자신이기도 한 그런 화자들. 자기 자신이 하나이면서 둘이기도 하고 여럿이기도하고 그런....


어쩌면 죽은 자들, 우울하다고 여겨지고 불쌍하다고 여겨지고 안타깝다고 여겨지는 존재들에겐 살아있는 자들이 이해하고자하는 맥락이 존재하지 않기에 '경우의 수가 많아지고 제약이 줄어들어 그 만큼 자유로워 졌지만' 존재하는 자이기에 '제 소설은 힘들게 쓰되 읽히지도 팔리지도 않는 소설이 됩니다' 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지금 이 글을 지금 이 부분까지 읽는 이가 얼마일지 고민하지 않는 것처럼, 어쩌면 나 스스로도 이 부분까지 다시 볼지도 장담하지 못하지만..


구효서의 문장은 나에게 너무나 매력적이다. 한번에 이해하기 어렵고 차근차근 두번세번 다시 봐도 이해가 쉽지 않지만 한번 이해하고 나면 그 매력에 푹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언어유희 같은 문장. 그리고 그 속에 담겨진 또는 숨겨진 의미를 애써 찾지 않아도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은 그런 문장이 썩 매력적이다. 많은 고민들에 휩쌓여 살아가는 나에겐 간혹, 내가 그러듯이, 어떤 문장에 꼭 뭔가를 숨겨놓거나 담아내지 않아도 되는 그런 문장이라고 치부해도 괜찮은...


그런데, 하나 꼭 묻고 싶다.

현실은 오류투성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삶일까? 인정하면서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삶일까? 아니면 그와 상관없이 그저 흘러가는 시간에 맡겨두고 오류든 아니든 개의치 않는 것이 삶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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