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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계형 개발자 Jan 29. 2023

브랜드 관점에서 바라본 서비스 실패의 원인

책을 읽고 서비스를 회고하다

브랜드 전문가뿐만 아니라 요식업, 사업가, 유튜버까지 사업을 하는 모든 분들이 보면 좋은 책

작은 규모의 IT 서비스를 개발/기획을 해보면서 대부분의 실패는 본질에 집중하지 않고 몸집 키우기에만 얽매여 있을 때 발생했다. 그때 당시 내가 속한 팀은 유저들에게 어떤 가치를 줄까를 고민하기보다 매출, DAU, 리텐션 같은 구체적인 수치를 올리는 것에 집중했다. 이런 수치에 지표에 집착하게 되면 우리 서비스만의 독특한 것을 고민하기보다는 다른 서비스에서 잘 되고 있는 것들을 가져오는 쪽으로 사고하게 된다. 물론 다른 서비스 기능을 가져오는 게 나쁜 것은 아니다. 이미 시장에서 검증된 기능이니까 잘만 가져온다면 현재 사용 중인 유저들을 만족시킬 수 있고 그 기능을 좋아하는 새로운 유저도 자연스레 유입될 것이다. 어쩌면 이런 사고방식은 서비스를 만들어보지 않은 사람에겐 합리적인 생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게으르고 안일한 생각이다.


답습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왜 그런 것인가?',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인가?' '그 방법이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 등의 질문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사용자들은 예상한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인스타, 틱톡에서 성공한 스토리나 숏폼 같은 기능을 가져오더라도 유저들의 반향은 크지 않았다. 사용자들은 인스타에서 쓰는 것처럼 스토리를 사용하지 않았고 틱톡에 올리는 재밌는 콘텐츠를 올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사용자로부터 '인스타에 있는 기능 아니에요?', '왜 자꾸 틱톡과 비슷해지죠?'라는 리뷰를 받았다. 사용자들은 자기가 알고 있던 서비스랑 달라져가고 있는 모습에 혼란스러워했다. 서비스를 사랑하고 아껴주던 몇몇 네임드 유저들이 본질을 잃어버리는 모습에 실망하고 떠났다. 결과적으로 몸집을 키우기는커녕 충성 유저들을 잃어버린 꼴이었다.


팀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대신 실패의 원인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급하게 만드느라 어설프게 가져왔다'거나 '마케팅이 충분하지 않았다'거나 '이미 철 지난 유행일 수도 있겠다' 같은 이유를 찾았다. 수차례 회의 끝에 기존에 있던 기능을 고급화해 보고, 홈 화면이랑 앱 소개 문구도 바꾸며 완전히 새로운 앱인 것처럼 단장해 봤다. 하지만 유저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실패가 반복되면서 우리는 서비스의 본질도 잊어버렸다. 팀 구성원 중 누구도 우리 서비스의 핵심가치를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다. 본질을 잃어버리니 당연히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나올 수 없었다. 방향을 모르는데 누가 지름길을 제시할 수 있을까. 이때부터 유저뿐만 아니라 팀도 흔들렸다. 새로 들어온 팀원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함께한 팀원들도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 결과 서비스는 망했다.


매출이 오르지 않으면 브랜드의 본질에서 해법을 찾기보다 경쟁 브랜드가 왜 잘되고 있는지 바라본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하려고 한다.


중국집에서 초밥을 한다고 손님이 늘어날까? 마라탕 냄새 풍기는 곳에서 초밥을 먹고 싶어 하는 손님은 없다. 인테리어를 확 바꾼다고 손님이 늘어날까? 카페처럼 공간이 주는 감성이 중요한 곳이라면 다르겠지만 음식점에선 그러기 쉽지 않다. 음식점은 맛이 제일 중요하다. 중국집이라면 새로운 메뉴를 만들거나 호화스러운 인테리어를 꾸미는 것보다는 짜장면을 더 맛있게 만들거나 다른 곳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이색적인 짜장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것이 소비자가 중국집의 본질이니까. 당시 내가 속한 팀도 똑같은 실수를 했다. 지표가 오르지 않는 이유를 본질에서 해법을 찾지 않고 잘 되는 서비스인 인스타, 틱톡을 바라보고 그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하려고 했다. 짜장면을 찾는 유저에게 자꾸 초밥메뉴를 보여줬고 마라탕 냄새가 풍기는 곳에서 초밥을 좋아하는 유저가 오길 바라고 있었다.


그때 우리는 서비스가 흔들리더라도 본연의 가치를 지켜야 했다. 당장 몸집을 키울 수는 없더라도 우리가 잘하는 것 그리고 하고 싶은 것에서 답을 찾아야 했다. 그것이 주는 반향이 크지 않을지라도 구체적인 지표보다는 브랜드, 진정성이라는 추상적인 가치에 무게를 실었다면 결과는 지금과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라포는 제품이나 서비스 그 자체가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다. 만든 이의 의도와 쓰는 이의 생각이 맞아떨어지면 형성되는 것이 라포타 (중략) 라포의 핵심은 브랜드의 진정성이다. 말로 포장해서 브랜드의 가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제품이나 서비스가 그래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 본연의 가치를 중시했다면 서비스가 잘 됐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답하진 못하겠다. 팀 멤버 그 누구도 서비스에 진심인 사람이 없었다. 서비스가 잘 돼서 성공하고 부자가 되고 싶은 바람은 모두 같았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서비스로 얻고 싶은 결과가 같았을 뿐 무언가를 이룬다거나 무엇이 하고 싶다는 한 명도 사람이 없었다. 한마디로 진정성이 결여된 팀이었다. 앱 소개 문구에 표방한 가치는 어디까지나 대외적인 용도일 뿐 제대로 고민해 본 적도 없고 내부에서도 공감하는 팀원이 없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데 내가 탄 배는 망망대해를 표류하기만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근본적인 질문 없이 인스타, 틱톡에서 유행한 기능을 무작정 가져온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우리는 목적이 아니라 결과만 합의가 된 팀이었다. 하고 싶은 것은 없는데 몸집을 키우고 싶은 마음은 컸다. 진정성이 없고 본질이 경시되면 답습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것 같으니까. 그러나 중국집에 초밥을 판다고 손님이 늘어나지 않는다. 무작정 가져올 때마다 그나마 유지하고 있던 서비스의 본질도 같이 떨어져 나갔다. 브랜드 관점에서 우리는 실패할 수밖에 없던 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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