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제국 추구자들은 자신들이 이미 세상을 이해하고 있다고 추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정복은 단지 '그들의' 세계관을 활용하고 퍼뜨리는 것에 불과했다. (중략) 이와 대조적으로 유럽 제국주의자들은 새 영토뿐 아니라 새 지식을 획득한다는 희망을 안고 먼 곳의 해변을 향해 떠났다.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호기심이 있던 유럽
여왕을 알현하는 콜롬버스
아시아와 유럽의 격차가 본격적으로 벌어지는 시작점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부터다. 콜럼버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말만 믿고 망망대해로 보이던 바다를 탐험하기 위해 스페인 왕에게 투자를 받았다. 지금이야 유럽에서 아메리카까지가 어느 정도 거리인지 가늠할 수 있지만 당시에 신대륙을 탐험하는 모험은 미지의 외계 생물체를 찾기 위해 우주선을 보내는 것만큼이나 불확실한 일이었다.
성공하면 큰 돈을 벌 수 있지만 반대로 모든 돈을 날리고 수백 명의 선원의 목숨을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위험한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 큰 투자를 결정한 이유는 이윤을 추구하기 위함도 있었기도하지만, 바다 밖 미지의 세계를 이해하고 싶은 탐구 열의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시 유럽인들은 모르는 것을 직접 탐험함으로써 채우려는 호기심이 강했다
호기심에서 시작된 아시와 유럽의 격차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서구의 제국주의는 로마, 징키즈칸 과거 중국의 모습과 달랐다. 과거 제국이 다른 국가를 정복한 목적은 상대를 굴복시키고 자기들의 사상을 전파하기 위함이었다. 주변 국가의 군사력을 제압해 위협 요소를 제거하고 충성과 조공을 받는 것이 주요한 정복의 목적이었다. 1420년대 중국의 정화함대는 아프리카까지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당시 독보적인 해양 기술을 충분히 갖추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롬버스처럼 탐험하지 않았던 이유는 멀리까지 자신들의 세계관을 전파할 필요도 없거니와 충성과 조공을 받기에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도 때문이기도 했다. 간단히 말해 아프리카를 정복하는 건 당시 중국에겐 남는 장사가 아니었다.
정화함대의 규모는 콜럼버스 함대의 100배 였다
그러나 19세기 말의 서구 제국주의는 달랐다. 과거 유럽은 자신들이 모르는 것을 채우고 싶은 호기심이 강했다. 유럽이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로 세워 많은 경제적 이윤을 남겼지만 이것은 결과론적인 해석일 뿐 투자를 하기 전까지는 어떤 결과가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오직 경제적 이윤만을 목적으로 식민지 사업을 결정했다는 결론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반면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 군인뿐만 아니라 많은 과학자를 대동했고 자신에게 어떠한 위협이 되지 않을 지구 반대편의 영토도 정복하기도 했다. 유럽 제국주의자들은 이전 제국과 달리 새 지식을 획득하기 위한 목적도 품고 있었다. 호기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남는 장사가 아닐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배를 띄웠다.
유럽인들이 뭔가를 발견했다는 소식이 아시아 국가에도 전해졌지만 오스만, 중국처럼 당시 아시아를 주도했던 세력 국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덴마크, 스코틀랜드 같은 작은 왕국도 탐사대를 보냈지만 당시 가장 과학기술이 발달했던 중국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세상이 자기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신대륙에서 발생한 이윤은 유럽의 몫이 됐고 기술 발전에 재투자돼 유럽과 아시아의 격차는 커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프리카 원정이 가능할 정도의 해양기술을 갖춘 중국은 불과 몇 백 년 만에 서구 열강의 지배를 받게 됐다. 호기심을 갖지 않았던 결과는 참혹했다.
나는 콜롬버스인가 흥선대원군인가
유럽과 아시아의 격차가 벌어진 원인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교훈을 준다. 지금은 과거처럼 다른 나라를 정복하고 식민지를 세우는 시대는 아니지만 기업들은 서로의 밥벌이를 뺏기 위한 총성 없는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리고 GPT가 등장하면서 이제부턴 기업과 기업 간의 전쟁이 아니라 기업과 개인 간의 전쟁으로 번지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과 밥벌이를 지키고 싶어 하는 개인과 더 싼 기계로 인간을 대체하려고 하는 인공지능 전문 기업 간의 전쟁이 이제 막 시작됐다. 이런 분위기에서 새로운 기술을 배우지 않고 고집스럽게 자신의 전문성만 고수하는 것은 세상이 자기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고 있던 중국의 모습과 닮은 면이 있다.
장기 훈수 두는 것은 쉬워도 자기가 직접 둘 때는 수가 보이지 않는 것과 비슷한 것처럼 흥선 대원군의 쇄국 정책을 어리석은 결정이라고 쉽게 비판하지만 우리 자신은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어렵다. 그러므로 적어도 변화를 주도하진 못하더라 도태되지 않기 위해선 긴장감을 갖고 내가 '15세기 정화함대를 모두 해산시킨 중국'인지 아니면 '과감히 콜럼버스를 신대륙에 보낸 유럽'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내가 보는 게 세상의 전부라고 착각하는 순간 경쟁력을 잃게 된다. 꾸준히 호기심을 갖고 새로운 기술을 공부하는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