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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 Jan 02. 2023

시장 규모의 추정

TAM, SAM, SOM

나는 주니어 PM들에게 비즈니스를 이해해야 한다고 항상 강조한다. 창업자였었던 내 정체성 탓인지, 내 직업관 탓인지, 제품을 넘어 우리 비즈니스가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이 더 마음에 찬다.


마케팅 공부를 자주 하는 것도 이와 어느 정도는 맞닿아있는데, 프로덕트매니저는 시장을 이해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개인적인 믿음 때문이기도 하고, 프로덕트매니저는 제품의 초기 마케터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프로덕트매니저는 우리가 어떤 시장(고객)을 타겟하고 있는지/이들은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이들은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를 부정확하게나마 산출할 수 있어야 하며, 이는 곧 우리 비즈니스 모델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 프로덕트매니저의 실력이 어떤지 알 수 있는 척도가 된다.




6년 전, 나에게 조언을 구하던 예비창업자가 있었다. 나를 어떻게 알았는지 이메일로 사업계획서를 검토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그는 '사업을 너무 해보고 싶다'라는 일념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는데, 이미 첫 번째 사업을 정리하고 얼마간의 빚을 해결하기 위해(그리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 다양한 일을 하고 있었다. 당시 그는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하고 있었는데, 양치를 하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그 먼지 안에서도 양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어떻게 하면 '먼지 속에서도' 깔끔하게 양치를 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고 한다. 거기에서 버튼을 누르면 칫솔에 치약이 묻어나는 '치약 충전형 칫솔'을 착안했다고 한다.

어차피 비즈니스는 해보지 않으면 결과는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솔루션 자체에는 별로 할 말은 없었다(다만, 이런 아이디어 상품 위주의 창업은 크게 되기는 어렵다. 진입장벽도 낮고, 확장가능성도 없으며, 앞선 특징 때문에 수익률도 낮다). 따라서 사업계획서에 기술된 내러티브가 얼마나 타당한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비용으로 시장을 검증할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몇 개 주려고 했다.(MVP)


사업계획서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시장 규모에 대한 그의 생각이었다. 나는 이 제품의 시장 규모가 잘해야 OO 억을 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이러면 이 사업을 추진하면 안 된다. 물리적 실체를 가진 제품이라면 더더욱), 그는 최소 O조가 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신문 기사에 나온 '구강 청결 시장' 전체를 자신의 시장 규모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는 전형적인 Top-Down 방식의 시장 규모 추정인데, 논리적인 사업 계획을 구상할 때는 적절하지 않다. 이런 방식의 시장 규모 추정은 그의 비즈니스 모델과 전혀 상관없는 구강 청결제, 치실, 전동 칫솔, 구강 관련 의료 용품 등의 시장 규모가 모두 포함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 규모 추정에 창업자의 인사이트를 담기 위해서는, 시장 규모에 우리 비즈니스 모델이 반영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5살 아이한테도 맥주를 팔겠다고 하는 꼴과 같다(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저칼로리 맥주를 만들면서 전체 음료 시장이 시장 규모라고 주장하면 이렇게 된다).

그가 따로 언급을 하지는 않았으나, 건설 현장에서 일했던 자신의 경험에 미루어 비즈니스를 구상했기 때문에, 결국 건설 현장 노동자 수가 우리 비즈니스 모델 하에서의 최소 시장의 기반이 된다.

이런 Bottom up 방식의 시장 규모 추정을 TAM - SAM - SOM이라 한다.


source: https://medium.com/lumiitgroup/market-analysis-for-startups-87161a8eeef2

TAM: Total Available Market

우리 비즈니스의 전체 도메인에 해당하는 시장이다. 넷플릭스로 본다면 비디오 구독 시장이라고 볼 수 있고, 부동산 중개 서비스를 만든다면 전체 부동산 중개 시장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 시장은 신문기사 / 통계자료 등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우리 시장이라고 볼 수는 없다. 위의 창업자는 이 TAM을 자신의 SAM 내지는 SOM이라 오판했다.


SAM: Service Available Market

우리 비즈니스 모델을 적용할 수 있는 시장이다. 다방이나 직방의 초기 모델에서는 아마 '전국 월세 시장' 정도였을 것이다. 이때부터는 Bottom-up으로 추정해야 하며, TAM처럼 전체 시장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비즈니스 모델을 적용하며, 이때 다양한 가정이 추가되기 때문에 예측이 꽤 많이 틀릴 수 있다.


SOM: Serviceable Obtainable Market

가장 쉽게, 우리 비즈니스 모델 중 '초기 핵심 타겟'을 고려한 시장이다. 만약 우리가 신촌 지역에서 배달앱을 런칭한다고 생각한다면, '신촌 지역의 배달 시장', 최소한 '대학생 대상의 배달 시장' 정도가 될 수 있다. 이때의 가정은 꽤 중요한데, 이 가정을 기반으로 얼마나 많은 인접시장으로 확장 가능한지 대략적인 윤곽이 나온다고 생각하고, 또한 이 핵심 타겟에게서 학습한 다양한 정보들은 이후 전개할 비즈니스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물론 위 정의들은 사람에 따라 다소 갈린다(나는 다소 보수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TAM을 정의할 때, 누군가는 헬스케어 서비스의 TAM을 '전체 모바일 앱 시장'이라고 정의하지만, 나는 TAM이 '헬스케어 서비스'에 한정해야 한다고 본다(우리 비즈니스의 도메인이 전체 앱 서비스라고 하는 것은 너무 과한 가정이지 않은가). SAM도 마찬가지로, 누군가는 헬스케어 서비스의 SAM이 '헬스케어 서비스'라고 정의하지만, 나는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결국 시장에 대한 자신만의 시각을 설득하는 것은 창업자 내지는 프로덕트매니저가 해내야 할 일이기야 하다만, 특히 시장 규모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충분히 보수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게 맞다고 본다.




프로덕트매니저의 목표는 제품의 생산이 아니라 제품의 비즈니스 지표 관리와 성장이다. 제품은 만들었을 때가 끝이 아니라, 그때부터 시작이다. 결국 프로덕트매니저는 자신이 만드는 프로덕트에 대한 간단한 사업계획서 정도는 쓸 줄 알아야 한다. 초기에 지나치게 낙관적이거나 잘못된 가정은, 시작하면 안 되는 비즈니스와 제품을 시작하게 하거나, 회수 불가능한 투자를 추진하게 한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화면 기획, 프로덕트 관리에만 몰두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개인적으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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