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직업생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L Dec 01. 2022

직업인의 쌈박질에 관한 단상

내가 도로 위의 흉기만 아니라면, 칙칙한 직장인의 일상에서 운전은 꽤 즐거운 활동이다.

밖에서는 부끄러워 드러내 놓고 듣지 못하는 올드한 취향의 노래, 적당히 푹신한 개인 좌석과 뜨거울 정도로 따뜻한 나의 뾰족 궁뎅이는 내 마음을 뿌듯하게 만들기까지 한다. 특히 오늘 같은 날씨엔 더더욱.

회사 오가는 길이 즐겁다니, 이 또한 축복이다.


하루 세 시간씩 단내가 날 정도로 입을 꾹 닫고 따뜻한 뾰족 궁뎅이를 즐기다 보면, 여러 잡생각이 난다.


일을 하다 보면 사람이 미울 때가 왕왕 있다.

상황이 미운거지, 사람이 미운 게 아닌데, 머리로는 알면서도 드러나는 것은 다른 상황이 있다.

특히나 프로덕트 매니저와 엔지니어 사이에는 제품 퀄리티와 속도로 인해 갈등이 생긴다.


우리는 iOS에서 그런 문제를 겪고 있었다.
aOS보다 인원이 많음에도 퀄리티와 속도는 그 이하여서 문제가 더 부각되었다.

나는 기획팀장이기 때문에 최종 결과물에 굉장히 예민하다. 서비스 기획팀의 입장을 대변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다. 우리 팀이 잘한 것은 자랑하고, 못한 것은 적당한 이유를 찾는 것 또한 내 일이다. 밖에서 내가 욕을 먹을지언정, 나의 팀원들이 노력한 것에 비해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다. 때문에 상대의 직급을 막론하고 상대가 개선해야 하는 점을 지적하며 싸워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나는 각자 빈틈없는 주장을 가지고 치고받고 싸우면서 더 나은 서비스가 만들어진다고 굳게 믿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서로 얼굴이 벌게지지 않으면 우리가 너무 나이브한 게 아닐까. 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 날'도 그런 상황이었다. 나는 iOS 엔지니어에게 ‘우리는 왜 기본적인 것도 지키지 못하고 개발이 진행되는지, 왜 최소한의 퀄리티 컨트롤이 되지 않는지, 왜 iOS는 QA가 업무의 끝이 아니라 시작처럼 느껴지는지‘ 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우리 팀은 제품 퀄리티로 너무나 많은 짐을 지고 있었고, 팀원들은 몇 주째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전전긍긍하고 있었으며, 오롯이 우리 팀에 씌워지는 듯 한 책임은 도저히 간과할 수 없었다. (이미 수많은 항변으로 우리 탓이 아니란 것이 입증되고 있기는 했지만.)


‘항의하는 건 아니구요,’ 라고 운을 뗀 엔지니어는 'iOS는 리펙토링이 필요한 상황이고, iOS 특성상 완전히 개선 불가한 영역이 있다, 양해를 부탁한다' 라고 말했다.

나는 그가 나에게 조금 더 당당하게 자신의 어려움을 말하기를 바랬다. ’ 항의하는 건 아니다‘라는 표현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팀을 더 열렬히 대변하기를 바랬다.


내가 아는 협업은 일방의 양해를 구하는 것과 거리가 멀었다. 같은 조직에 속한 사람으로써, 어려운 일이 있다면 상호 양해를 구하는 게 아니라 서로 극복해나가야 하는 거라 생각했다.

아마 나와의 직급의 차이, 반년 넘게 쌓여왔던 iOS에서의 문제 상황이 안 그래도 배려심 많던 그를 더욱 조심스럽게 만들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그가 15년 차의 베테랑 엔지니어였다는 것이다.

‘나는 너가 주니어랑 얘기하는 줄 알았어(화상 회의 였다)’라고 웃으며 하시는 대표님의 말씀에 아차, 싶었다.

'상대도 다른 조직에서 충분히 많은 문제를 해결해왔을 것이고, 이제 그것을 우리 조직을 위해 사용하러 왔다, 때문에 경력을 인정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충분히 존중하지 못했다.

나는 잘 돌려말하지 못한다. 정확히는, 최대한 돌려 이야기한다고 하지만 상대가 느끼기엔 덜 돌린 상황이 많이 생긴다. 내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탓이다. (이건 내가 당차거나, 열정적이란 증거가 아니다. 내가 모자라다는 증거다. 공감은 지능에서 비롯된다.)


오늘은 그가 퇴사를 했다. 이제 막 개발이 정상화되고,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수준의 버그는 보이지 않은 참이었다.

'조금 더 좋은 서비스와 조금 더 좋은 코드를 남겨야 했는데, 마음과 다르게 그러지 못했다.' 라며 마지막까지 미안해하는 모습이 눈에 밟힌다.

비록 일 때문이라는 미명 아래 벌어진 일이지만, 그 배려심 많은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긴 게 아니었을까 씁쓸한 기분만 남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리더십과 팔로워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