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직업생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L May 22. 2022

창업 실패 후 학습한 것들-2

저 더럽게 재미없는 '경쟁우위'를 읽는 것보다 생각을 기록하는 게 20배는 더 재미있다.(그래도 80%는 봤다.)

개조식이 아닌 서술형의 작문을 하는 게 대체 얼마만인가.


5년 전, 조금이나마 마케팅비를 아끼기 위해 블로그를 운영했었다. 그때도 글 쓰는 재미에 하루에도 두 번씩 포스팅을 했다. 덕분에 2개월 만에 블로그 방문자가 10만 명이 넘었다. 아마 나는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성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오늘 퇴근길에는 나름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는데, '창업 실패 후 학습한 것들-2'의 글감을 고민하며 왔기 때문이다. 나의 실패를 즐겁게 기록하는 게 어불성설이지만.


일을 하면서 다양한 분야에 자극을 주는 동료들이 왕왕 있다. 그중에서도 글쓰기에 자극을 준 동료가 고마울 따름이다.



6. 불관용원칙

앞선 글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나는 3명의 동료들과 함께 창업을 했다. 4명이서 4평짜리 집에 살며 '평'의 정의가 1명이 누웠을 때 차지하는 면적임을 몸소 체험했을 때이니, 그 안에서 쌓여온 동지의식은 상상을 초월했다. (4명이 4평에 누우면 방에 just 하게 맞는다.)


그렇게 끈끈한 사이임에도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동료가 하나 있었는데, 그 친구는 지각을 정말 자주 했다. 한 주에 4번 이상은 지각할 정도로.(짧으면 30분, 길면 진심으로 죽었나 걱정돼서 전화할 정도였다. 진짜 지각쟁이들은 전화도 받지 않는다. 대충 3시간 뒤에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나타난다.)

레이달리오의 '원칙'부터 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 이르기 까지, 인사를 조금이라도 다루는 경영서에서는 '적합한 사람을 찾는 것이, 부적합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다'라고 닳도록 말한다.

부적합자 하나가 주는 영향은 적합자 하나가 주는 영향보다 훨씬 강한데, 작게는 인사 비용과 비효율을 초래하지만, 크게는 조직 전체를 와해시키는 결과를 가지고 온다. 개인의 책임을 수행하지 않으니 더뎌지는 업무 속도는 덤으로 따라온다.


업무 스킬은 바꿀 수 있다. 시간과 자원만 있다면 충분히 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못해도 보통으로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심지어 이 사람의 능력을 계발하고 있다는 희열마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애티튜드는 바꿀 수 없다. 아무리 소중한 사람일지언정 도려냈어야 했다.

암세포는 주변의 혈관을 연장하여 자신에게 영양분을 공급한다. 에티튜드가 미달하는 팀원은 도려내기 전까지 조직의 시간과 현금을 잠식한다.



7. 투명한 정보 공유와 정보 흐름

나는 자신만만한 (나쁘게 말하면 재수 없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창업 실패 후 잠시 꺾였다가, 조금 살만 해지니 도로 재수 없는 성격으로 원복 되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나는 사람들의 사고능력을 믿는데, 때문에 공개 가능한 선에서는 (보통 조직 관리 차원에서 논하면 안 되는 부분들이나 팀원 개인사는 제외한다.) 최대한 많은 것을 공유하고자 노력한다.


조직 관리의 바이블 '하이 아웃풋 매니지먼트'는 관리자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기본 소양이 정보 획득 능력이라고 설파한다. 나는 나아가 그 정보가 조직 전체에 돌아야 한다고 믿는다.

사람은 환경에 반응한다. 정보는 조직을 구성하는 환경이다. 반응 가능한 환경을 제공하지 않으면 팀은 생각하지 않는다.


팀이 성장하고 있다는 단편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잠깐의 동요는 막을 수 있다.

그러나 팀에 재무제표를 공유하고 학습시키는 것은 조직원 개인이 단기 순이익에 치중하는 것이 아닌 궁극적으로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사고를 할 수 있게 한다.

팀에 제품의 판매 현황을 공유하는 것은 열광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러나 팀에 핵심 지표의 정의와 그 변화 추이를 공유하는 것은 조직원 개개인이 핵심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을 고민하도록 돕는다.

원자재가 싸게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유동성을 고려하지 않고 재고품을 사들이는 관리자는

팀의 시기별 현금흐름을 고려하여 재고를 관리하는 관리자보다 장기적으로 높은 성과를 내기 어렵다.


사람은 '의사 결정하게 하기 위해' 채용한다. 일을 시키기 위해 채용하는 것은 단기직 아르바이트생으로도 충분하다. 때문에 의사 결정할 수 있을 만큼의 투명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조직 전체의 책무이다.

팀원이 잘못된 사고로 내린 잘못된 의사결정을 잘라내지 못하는 것은 관리자의 실책이다. 팀원이 내리는 모든 잘못된 의사결정의 책임은 관리자에게 있다.



8. 마이크로 매니징

나를 아는 사람들은 웃기게 들리겠지만 나는 사람을 꽤 신뢰한다. 정확히는 나를 납득시킬 수 있는 논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믿는다.

팀 리더가 된 후로 주니어급 팀원들에게 주야장천(꽤 자주 화내면서) 묻는 단 하나가 있다면, 어떤 근거로 이런 생각을 했고, 왜 이런 의사결정을 하게 되었는지 설명을 요구하는 것이다. 의사결정의 근거가 부족하거나 합리적이지 않거나, 스스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결정을 기각하고 다시 결정하도록 촉구한다.


나는 최대한 정확하게 direction 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지나치게 디테일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지양한다. 전직 과학도로서 나의 의사결정이 무조건 맞다는(혹은 무조건 좋다는) 근거가 없기 때문이며, 지나치게 디테일하게 제시된 방향은 팀원의 상상력에 일종의 앵커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선적 이게도 나는 한편으로는 '적격한 사람의' 마이크로 매니징이 필요할 수 있음을 자주 깨닫는다. 우리는 시간이 많지 않고(자원이다), 현금은 시시각각 타고 있으며(자원이다), 실험은 정확하게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적격한 사람의' 마이크로 매니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통 마이크로 매니징은 팀원의 사고를 막고 사기를 꺾는데 일조할 뿐이다. 그리고 내가 본 대부분의 마이크로 매니저는 적격자가 아니었다.



9. heuristics_대충 받아들이기.

나는 생물학과 출신의 자연과학 '학습자'이다. (학교를 중퇴했으니 전공자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중학교 3학년 무렵, 나는 '전국 생물학 올림피아드'에서 전국 10등 내외의 성적으로 입상을 했었다. 나는 22살까지도 내가 사바나 초원에서 톰슨가젤과 함께 뛰놀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을 검증하려는 사고를 20년 가까이 배워왔다.


덕분에 꽤 오랫동안 모든 것을 빠짐없이 맞춰보려는 성향이 생겼는데, 이런 방식은 논의의 목표를 견지하고, 생각의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기틀인 개념적 사고를 방해한다.

대략적인 사고를 통해서 생각의 규칙을 만들어내는 자리에서 갑자기 예외적 케이스를 얘기하게 되거나, 정확한 표현이나 값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동을 걸기 시작하면 논의의 복잡성은 급증한다. 결국 사소하고 지리한 것에 대한 논쟁만 하다가 어떤 것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는지 마저 잊게 된다.


CIA는 1944년 '조직을 망치는 방법'이라는 30장의 가이드를 만들었다.

이 가이드는 복잡성을 높이는 것을 기본으로 어떻게 하면 조직을 망치는지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는데,
인상적인 부분들은 다음과 같다.

가능하면 모든 문제를 ‘추가적인 연구와 숙고를 위해’ 위원회에 맡긴다.

의사소통을 할 때나 회의록, 합의안 작성 때마다 정확한 문구를 갖고 딴지를 걸어라.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업무에 대해서 완벽함을 강요하라.


(단, 용어의 명확한 정의와 정확한 값의 측정은 논의의 방향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할 때가 분명히 있다. 이때는 차라리 정의를 명확하게 하자고 제안한 후 빠르게 정리하고 다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낫다. 이것 또한 개념적 사고를 위한 경계를 정하는 일이다.)



10. 명확한 direction.

팀원이 내게 의사결정을 요청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정말로 잘 모르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스스로 의사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때는 손등에 침을 뱉는 심정으로 명확하게 direction 해주는 게 언제나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나도 알고 있다. 내가 맞을 가능성이 반반이라는 것을. 그러나 명확한 direction은 의사결정 비용을 줄이고, 실패에도 배울 수 있게 한다.


경험적으로, 애매한 의사 결정은 대부분 실패하거나 실패도 성공도 아닌 모호한 상태를 가져왔는데 이렇게 되면 어떤 이유에서 실패했는지, 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를 가져오게 되었는지 원인조차 파악하기 힘들다. 가장 명징하게 드러나는 원인은 그저 명확하지 않은 direction뿐 이다.


'빠르고 좋은 의사 결정은 완벽한 의사 결정보다 언제나 좋다'는 말은 언제나 옳다.





창업자 시절, 강연을 다닐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
개인적으로 몸담고 있었던 창업 동아리에서도 후배 창업자들에게 몇 년 간 수십 번씩 피드백을 해왔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강연 다니기를 즐기지 않았나 싶었지만, 지금 와서 고민해보면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즐거워했으리라 생각이 든다. (돈도 많이 줬다.)


'창업 실패 후 학습한 것들-1'은 오랜 시간 생각해온 것들이라 퇴고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술술 적혔고,

다시 봐도 꽤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창업 실패 후 학습한 것들-2'는 조금 더 고민이 필요했는데, 오히려 그만큼 내 생각을 더 정리할 수 있었다.


주펄은 읽히지 않는 글은 의미가 없다고 했으나, 우울한 마음을 정리해주는 글쓰기는 그럼에도 기분이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창업 실패 후 학습한 것들-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