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는 첫사랑이 있듯이.

Kick the Bucket (4) - 양동이를 발로 찬 뒤, 첫 발걸음

by 민희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우리 엄마 김밥.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게 출국 전날이 되었다.

본가에서 가족들과 충분히 시간을 보내고, 엄마가 싸준 김밥을 도시락 통에 담아 안산으로 올라가는 기차에 올랐다. "딸아 천천히 맛있게 먹어."라는 아빠의 짧은 카톡을 읽는 순간,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엄마의 김밥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고소한 향이 가득 퍼지는데, 왠지 모르게 목이 꽉 막히는 기분이었다. 워킹홀리데이를 가는 것도 아닌데 괜히 외로움이 훅 밀려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마지막 짐 싸기에 돌입했다.

'한 달 살기'라 만반의 준비가 필요했기에, 짐을 넣었다 빼기를 반복하며 새벽까지 끝나지가 않았다. 현지 가서 살까? 돈 아낄 겸 가져갈까? 가장 어려웠던 고민.

물건 하나하나가 내 한 달을 책임질 것 같아, 포기하기가 어려웠다(한국 제품 최고).

결국 새벽까지 불을 켜둔 채 캐리어 앞에서 혼자만의 싸움을 시작했다.



저녁비행기라 푹- 자고 일어나, 마지막 짐 점검을 했다.

그리고 한 달 이상 비울 우리 집을 위해 전기, 수도, 난방까지 철저하게 확인했다.

겨울이라 우리 집 1층 수도가 얼면 큰일이라 난방을 최소한 켜놓고 떠나야 했고, 난방비 걱정은 덤이었다.

혹시 몰라 집안 구석구석을 사진으로 기록한 뒤,

무거운 캐리어 하나, 40L 백팩 하나, 보조 가방 하나를 매고 드디어 출발했다.


서해선을 타고 김포공항에 내려 공항철도로 환승했다.

백팩덕에 슬슬 어깨가 빠지진 않을까 걱정은 됐지만, 설렘이 더 컸기에 내 어깨의 고통은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유튜브 프리미엄 랜덤 음악을 들으며 가는 중, 인천공항 2 터미널 도착 2분 전, 볼빨간 사춘기의 '여행'이 흘러나왔다.

알고리즘이 내 위치까지 아는 듯 신기했다. 무섭기보다, 내 여행의 시작을 축복해 주는 듯해 고마웠다.

공항에 도착했다고 가족들에게 알리자,

벌써 보고 싶다는 엄마의 카톡이 도착했다.

나는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으며 체크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엄마한테 온 카톡 I 흘러나오자마자 신기해서 8초만에 캡처한 노래.

인천공항 2 터미널은 처음이었는데, 낯선 공간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더 낯설어지기 시작했고, 다양한 언어와 안내 방송이 공항의 긴장감을 더했다.

서둘러 셀프 체크인을 마치고 여권과 티켓을 확인 또 확인하며, 보안 검색대로 향했다.

보안 검색대 줄이 이렇게나 길다니.. 나름 여행 좀 다녀봤는데 이렇게 긴 줄은 처음이었다.

15kg+5kg 정도 되는 백팩을 메고 있으니, 설렘은 무슨 분노 게이지만 쌓여갔다. 하하

사람이 많을수록 검색대 직원분들의 예민도도 많이 올라가는 것 같았다. 마치 나처럼.

같이 설렘을 느껴주면 좋으련만, 하는 내 이기심을 마음에 품고 검색대를 지났다.

다행히 이기심이 검색대에 걸리진 않았다.

카드 실적 채워서 먹는 무료 라운지, 너무 맛있어+_+

출국게이트에 도착하자, 내 설렘과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고,

이 무거운 가방을 카트에 싣고, 여행의 시작을 알리듯 라운지로 향했다.

혼자 라운지는 처음인데 생각보다 외롭고 좋았다.

든든히 배를 채운 뒤, 클룩에서 예약한 유심을 찾기 위해 서점을 찾아 몇 번을 왔다 갔다 하고 직원들에게 물어야 했다.

유심을 챙기고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을 텀블러에 담아 게이트로 향했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주변 사람들의 표정, 안내 방송, 뛰어노는 아이들의 소리까지 특별하게 느껴졌다.

탑승 시간이 되자 기내로 들어섰다.

창밖으로 보이는 활주로와 저녁 하늘, 그리고 기내의 낯선 듯 익숙한 공기가 내 안에 새로운 도전을 기다리고 있었다.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고, 짐 정리를 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도와주는 승무원분들을 보며,

멀미약을 먹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양동이를 발로 찬 후, 내 첫 발걸음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나도 비행기에서 아이스크림 먹어봤다! I 라운지에서 너무 많이 먹었음. 맛있게 못 먹은 낚지덮밥. 옆에 앉은 캐나다 할아버지가 안 맵냐고 계속 물어보셨다 :) 낫 스파이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