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는 첫사랑이 있듯이.

"기차 안, 작은 내 세계"

by 민희

기차역으로 들어가 가장 중요한 승차홈을 확인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승차홈까지 가는 길이 아주 살짝 복잡했지만, 친절한 역무원 분들이 알려주셔서 마음 놓고 푸드코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기차 시간이 18:40이라,

저녁은 기차 안에서 낭만 있게 먹고 싶었다.

그래서 이 무거운 짐을 끌고 다니는 나에게 당충전을 해주기로 했다. 찾은 건 당연하게도 땡모반(수박주스).

50바트 땡모반 그리고 화장실 단골손님으로써 화장실에서 한 컷 찍어드림~^^

채 먹기도 전에 물갈이로 화장실만 몇 번을 왔다 갔다 했는지..

아니면 이미 새로운 도전을 앞둔 긴장이었을까.

혹시 몰라 멀미약을 먹고, 배가 아파 지사제 먹고,

머리가 아파 진통제까지..

기차 타기 전에 약을 몇 개나 먹었는지 세지도 못했다.

'혹시 너무 많이 먹어 큰일 나면 어쩌지...' 두려움이 앞섰다.


걱정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만히 앉아 쉬었다.

그리고 시간이 다 되어가서, 기차 안에서 먹을 스파이시

치킨라이스를 구매했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 현지인들이 가장 많이 구매하는 메뉴를 따라 샀다.)

간식도 살까 잠시 고민했지만, 지사제를 먹은 주제에...

500ml 물 두 병만 들고 승차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방콕 기차역은 이렇게 생겼구나, 하며 무거운 짐을 끌고 이리저리 구경했다.

18:20쯤, 승차홈이 열렸다. 줄을 서고 큐알코드를 준비했다.

한국과 달리 큐알코드를 찍어야만 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코드를 찍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내가 늘 바라왔던 슬리핑 기차가 바로 코앞에 있었다.

눈앞에 긴- 슬리핑 기차가 나타났고,

기차는 왜 이렇게 예쁜지.

그저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예약한 기차칸에 도착해 내 자리로 향했다.

아무도 없으면 사진 찍어야지, 했는데

정말 아무도 없어 너무 좋았다.

사진을 다 찍고 내 사진도 남기고 싶었지만,

핸드폰을 놓고 찍어야 할 곳에 승객이 있었다.

현지인으로 보이는 분에게 조심스럽게 사진을 부탁했다.

웃으며 흔쾌히 찍어주신 분은,

이리저리 찍다가 내 뒤 창문에 본인이 비치자 자리까지 옮겨가며 찍어주셨다.

연신 "코쿤막카"를 외치며 웃어 보였다.

사진은 대만족이었다.


시간이 되자, 기차는 조심스레 출발했다.

배가 그리 고프진 않았지만,

지금 먹지 않으면 소화되기도 전에 누워야 할 것 같아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마주 보고 앉은 서양인의 시선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니 마음 편하게 또 맛있게 먹었다.

1시간 정도 지났을까, 역무원 언니(동생?)가 와서 의자를 침대로 변신시키기 시작했다.

유튜브에서만 보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니 너무 재밌고

신기했다. 내 침대가 만들어지고, 짐을 다시 정리했다.

이 작은 침대 위에 내 짐을 풀고 나름 귀엽게 아늑한 방처럼 만들었다.


창밖 풍경을 구경하다가 간단히 씻고 돌아왔다.

다들 커튼을 치고 일찍 잠자리에 든 건지, 고요했다.

나도 침대에 올라 커튼을 치고 창밖을 바라보다가 헤드셋을 꼈다.

잔잔한 발라드를 틀고, 랜덤으로 돌려놓았다.

그렇게 이 낭만을 즐기는 와중에,

귀에 꽂힌 노래 가사가 내 마음을 아련하게 만들었다.

슬프지만, 동시에 낭만을 가득 담을 수 있게 해주는 곡이었다.


'아이유-무릎'

모두 잠드는 밤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다 지나버린 오늘을 보내지 못하고서 깨어있어

누굴 기다리나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던가

그것도 아니면 돌아가고 싶은

그리운 자리를 떠올리나


이 노래는 아마 들어본 적은 있을지 몰라도,

내가 직접 선택해서 들어본 적은 없었다.

랜덤이었기에, 정말 우연히 내 귓가에 스며든 것이었다.

그 가사가 지금 내 상황과 마음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어서,

나는 아련함 속에서도 묘하게 따뜻함을 느꼈다.

기차 안 작은 침대 위, 창밖으로 스쳐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걸,

청춘을 이렇게 낭만적으로 즐기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살아있다는 감각이 마음속에서 은은하게 퍼지고,

모든 것이 찬란하게 느껴졌다.

그 아련하고 따뜻한 감정 속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 미소를 지었다.


이 낭만을 즐기다가,

눈이 감겨 올 때쯤, 눈이 감기는 대로 잠에 들었다.


06:00쯤, 역무원 분이 깨우기 시작했고,

침대는 다시 의자로 변신했다.

동트기도 전에 먹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랑 도넛

앉아 있으니, 역무원 분께서 커피 주문을 받기 시작했고,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고 싶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그러다 문득, 내 가방 속에서 고이 자고 있던 전날 구매한

도넛이 떠올랐다.

'아 완벽한 아침이잖아? 나 또 행복해'

그렇게 작지만 완벽한 아침을 즐겼다.


그렇게 놀다 보니 어느새, 치앙마이에 도착!


근데 이게 뭐람..

치앙마이 도착 후 내 마음은 설렘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현실감, 현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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