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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 Sep 13. 2019

네, 해외여행 다녀서 죄송합니다.

우리끼리 행복하게 살자.

6년 전부터 설 연휴, 명절이 특별하지 않았다. 조금은 쓸쓸하달까. 부모님의 이혼으로 엄마와 살았던 나는 자연스레 외갓집만 왕래하며 살았다. 하지만 엄마와 친척들 사이가 틀어진 후로 더 이상 그들을 볼 수 없었다. 그래도 엄마는 아쉽지 않게 음식들을 준비했고 과일들도 많이 사놓았다. 우리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연휴를 기다리던 날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는 동시에 고함치는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너는 밖에서 뭘 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친척들이 엄마한테 난리잖아!"  

          

사람들과 있었기에 서둘러 볼륨을 낮췄다. 구석진 자리로 이동하며 말했다.  

           

"엄마, 침착하게 말해봐. 무슨 일 있었어?"  

          

"이모가 전화 와서 한소리 하더라. 우리 집이 참 웃긴다고. 인희는 여행도 많이 다니고 집도 좋은 곳에 살고 엄마가 아픈 줄 모르고 철없이 다닌다고!"

            

나는 당황스러워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엄마가 말했지? 여행 다니지 말라고!"            


결국 내가 여행을 많이 다닌 탓에 이 이 벌어졌다고 한다. 친척들이 내 SNS를 보고 여행을 들먹이며 한소리 한 것이다. 참다못해 언성을 높여 말했다.

           

"해외여행 다니는 게 죄야? 내 돈으로 여행 다닌다는데 그거 가지고 사촌들이 왜 난리야. 친척들은 우리가 거지같이 살았으면 좋겠나 봐. 안 그래도 사촌언니들이 우리 집에 와보더니 자기네들 사는 곳보다 넓고 좋다고 비아냥거리더라. 도대체 그 사람들은 왜 그러는 건데?!"

           

내가 강하게 주장하자 엄마가 조금 진정하며 말했다.             


"그러게. 엄마는 그런 소리 들으니까 속상해서 그렇지. 인희 너를 들먹이니까."            


얼마 전 사촌언니 2명이 집들이를 왔다. 언니들이 먼저 오고 싶다 말했기에 만든 자리였다.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이렇게라도 와줘서 고맙다고 연신 인사하 헤어졌다. 그런데 그 날 집으로 돌아가 이모에게 이상하게 말을 전한 모양이다. 앞뒤가 너무나 다른 모습. 그들은 도리어 유학도 가고 비싼 과외도 받는다고 자랑하던 사람들인데, 내가 해외여행 가고 좋은 집을 얻은 것이 배가 아팠나 보다. 심보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엄마에게 묻곤 했다.  

          

“엄마, 우리는 왜 친척들이랑 별로 친하지 않아? 엄마한테는 친척들이 나와 오빠 같은 사이잖아. 나도 나중에 커서 오빠랑 그렇게 지내게 되는 거야? 가족들은 원래 그래?”    

         

그러면 엄마는 옛날이야기를 꺼내 사이가 나빠진 이유를 설명해줬다. 시작은 남아선호 사상으로 인한 재산 분배 문제였고, 이후로는 젊은 날부터 남편을 잘못 만났다는 이유로 받아온 박대 때문이라고 했다. 이혼하기 전부터 가난하고 번듯한 직장이 없었던 아빠. 친척들은 아빠를 앉혀놓고 한소리씩 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여섯 남매 중에서 엄마를 가장 가소롭게 여겼다고. 엄마는 참아온 세월이 답답했는지 가슴을 텅텅 치며 이야기해주었다.


한 번엄마도 서운한 점을 할머니께 말해보았. 그걸 듣고 할머니는 딱 한마디 했다.    


“다시는 오지 말기라!”    


그렇게 점점 친척들과 멀어졌다.


최근에 할머니 댁을 방문했다. 몇 년 만이었을까. 오랜만에 봤던 할머니는 내 앞에서 엄마를 하대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엄마가 해왔던 말들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짐작해볼 수 있었다.             


할머니는 종종 내 손을 붙잡으시고 말하신다.

           

"야야, 너는 우예라도 돈 많고 성격 좋은 남자를 만나기라. 너거 엄마처럼 되지 말기라."            


들을 때마다 기분이 나다. 차마 어떤 말을 할 수 없어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상황을 모면하곤 한다.     

       

엄마는 삼촌과의 통화를 언급하며 말을 이었다.       

      

“인아, 아지야(삼촌의 경상도 지방 사투리)가 서울에 살잖. 추석날 대구에 오는 김에 너 좀 데리고 오라고 했더니 콧방귀를 뀌더구나. 좋은 말로 하면 되지 어째 그러냐. 내가 걔를 얼마나 챙겼는데!”  

          

서운했던 상황을 말하며 언성을 높였다. 한이 많이 쌓인 모양이다. 나는 그저 엄마가 안쓰러다. 오죽했으면 나한테 저렇게 한풀이를 하듯 쏘아댈까. 엄마가 조금이라도 안심 수 있도록 위로의 말을 던졌다.

           

"엄마, 걱정 마. KTX 타고 내려가면 돼. 그 정도 돈은 있어. 친척들이 뭐라고 하던 신경 쓰지 말자. 그런 것들로 화내면 엄마만 더 안 좋아지잖아."       

     

그제야 엄마의 웃음소리를 들 수 있었다.

          

“그렇지? 난 우리 자식들만 있으면 돼.”  

           

“응. 우리끼리 행복하게 살자.”   

         

엄마는 아이처럼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우리끼리 행복하게 살자."


이내 성냈던 것이 조금은 민망했던 모양인지 어색하게 웃며 말했다.


"딸! 화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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