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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 Aug 24. 2019

"딸! 보이나?"

"엄마! 보이네."

"엄마!"


소리치며 달려가 요리를 하고 있는 엄마를 뒤에서 와락  안아주었다. 엄마만 가진 폭신하고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대구에 왔다. 자주 들리겠다고 말하지만 잘 지키지 못해서 항상 미안한 마음을 안고 산다.

"어구, 우리 딸 좀 안아보자."


엄마는 뒤를 돌아 나를 세게 안아주었다. 내가 켁켁 거리자 웃으면서 손을 풀어준다.

엄마가 시력이 많이 나빠진 것을 전해 들었다. 얼마나 나빠진 건지 실감이 나지 않아 손가락을 코앞까지 갖다 대며 장난스럽게 말해 보았다.


"이거 몇 개일까요?"

엄마는 열심히 손가락을 보려고 애를 쓰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이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몰라. 진짜 안보인데이."


이젠 세상이 뿌옇고 까맣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딸 온다고 밥을 고 있는 모습을 보니 뭉클다.
 
4년 전부터 엄마는 당뇨 합병증으로 몸이 하나 둘 망가지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주 3일 5시간씩 투석하는 것을 시작으로 지팡이가 없으면 혼자서 몸을 지탱할 수도 없게 되었고, 결국 얼마 전부터 시력마저 잃게 되었다. 자꾸만 쇠약해지는 엄마의 건강상태에 걱정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쉰이라는 나이에 맞지 않게 초췌하고 나이 들어 보이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이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 엄마의 인생이 너무나 가혹하다 느껴졌다.

"그래도 우리 딸 얼굴은 좀 보이네."

그 말을 듣고 엄마가 어릴 때 읽어주었던 전래동화 '보이나? 보이네'라는 책을 패러디하며 장난을 쳐보았다.

"보이나?"

엄마는 내가 무얼 패러디한 지 금세 알아채곤 "보이네."라고 말하며 활짝 웃어 보였다. 웃어 보이는 눈 주변로 가늘게 주름이 늘어진다. 자식 둘을 키우기 위해 혼자 짊어졌던 희생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어 보이는 엄마의 모습에 나는 엄마를 더 사랑해주고 아껴 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집에 가는 날.
내가 떠나버리고 혼자 있을 엄마 모습이 눈밟혀 신발장 앞에서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그런 마음을 알아챈 엄마는 내게 장난스럽게 말을 걸었다.


"딸! 보이나?"

그  말을 들으니 가슴속부터 지는 따뜻한 기운이 내 몸을 감싸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의 딸로 태어나 과분한 사랑을 받는 것이 새삼 감사다. 나는 그 사랑을 깊게 들이마시며 당당하게 외쳤다.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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