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엄마를 닮아가는구나.
나 자신도 그렇게 사랑하면서 미워하고 있다.
맥주를 따랐다. 투명한 유리잔에 거품을 터트리고 잔 주변으로 몽글몽글 물방울이 생기는 것을 보면서 생각했다.
‘엄마도 이런 기분이었구나.’
작은 상에 마른안주를 놓고 매일 밤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던 엄마의 모습을 한심하게 생각했는데, 오늘은 그녀를 조금 이해할 수 있는 날이었다. 매일 밤 외로움과 힘겨움을 맥주 한 병에 담아내어 위안을 받았던 거다. 힘들었을 지난날을 이해 해주지 못한 무심함이 떠올라 마음이 불편해졌다.
한동안 사람 사이에 맞춰나가는 것들에 진절머리가 났다.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고 쉬어가야 했다. 그래서 교토로 왔다.
교토는 낭만적이고 조용하여 내 마음에 쏙 들었지만 좋은 공간 속에 혼자 있다는 외로움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혼자 있고 싶어서 떠나왔지만 막상 혼자 있게 되니 마음이 허전했다. 사람들과 떨어져 있고 싶다가도 막상 혼자가 되면 슬퍼진다. 그렇다고 사람들과 어울리면 금세 귀찮아하는 내 성격이 별나다는 생각을 했다. 내 성격이 싫다.
사람들이 모두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정하기 싫어서 속이 타들어갔다. 평생 불완전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조금은 무서웠다. 나중에 아무도 만나기 싫어질 때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는 불완전한 내가 택할 수 있는 것이 ‘죽음’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를 찾아서, 해방감이 무엇일지 궁금해서 떠났던 여행들 앞에 가족들은 입버릇처럼 말한다.
“여행갈 돈이 있으면 저축을 하거라.”
이해를 바라지 못하니 몰래 여행을 떠났다.
자신에게 보고 없이 여행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했던 오빠는 교토에 있는 나에게 “엄마 돌아가셨다.”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사람의 생사를 가지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나를 밉살스럽게 여기는 오빠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결국 철없고 고지식한 가족들 사이에 더욱 괴로워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사건과 풀리지 않는 일들에 지쳐 눈물을 쏟고 싶었다. 슬픔을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끝내 덤덤하게 괜찮은 척 하는 내 자신이 밉고 실망스러웠다. 내 자신의 감정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해 불안해 하는 모습이 가엾고 초라했다.
병에 조금 남아있었던 맥주를 입으로 탈탈 털어 넣으며 감정을 증폭시키려 애썼다. 하지만 감정이 오히려 짓눌린 느낌이 들었다. 이런 감정도 내일이 되면 무의미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성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숙소로 돌아가 눈을 감았더니 엄마가 떠올랐다. 나는 왜 그렇게 엄마를 한심하게 바라보았을까. 복잡한 마음이 있었겠지만 술을 마시는 것 자체를 너무 한심하게 생각했었다. 그 때문에 나는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미워했다. 그리고 지금은 나 자신도 그렇게 사랑하면서 미워하고 있다.
'이렇게 엄마를 닮아가는구나.'
엄마를 이해하지 못해서 미안하고 나에게도 미안한 밤이었다.
외로움 속에서 내일이 밝아오길 바라고, 어쩌면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잠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