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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 Aug 23. 2019

아빠가 죽지 않게 해주세요.

우린 최선을 다해 서로를 배려하고 있었다.

"너희에게 할 말이 있어."


공원에서 함께 산책을 할 때 아빠가 말을 꺼냈다.
 
"아빠가 많이 아프네."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미 많은 곳에 전이 되었고, 암 말기 판정을 받은 상태라고 한다. 1년 전부터 암 선고를 받고 혼자서 치료를 해나가고 있었다고 했다. 현재 상태가 많이 나빠져 병든 사실을 알린다고 한다.
 
나는 암에 대한 지식이 없었고 눈앞에 서있는 아빠 모습이 말짱했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곧 나을 수 있는 병이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일주일에 한 번 아빠가 집을 방문한다. 부모님이 이혼했기 때문에 매 주 일요일이면 아빠를 만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암묵적 약속이었다. 그런데 아빠가 아프다는 말을 꺼낸 이후로 아빠는 매일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어 오기가 힘들다.’고 했다.
 
한 달 정도 보지 못했을 때 혼자서 대학병원을 찾아갔다.
 
"아빠 어디야? 난 2층 빵집 앞 테이블에 앉아있어."
 
"곧 갈게."
 
전화를 끊고 얼마 있지 않았을 때 멀리서 아빠 모습이 보였다. 허름해 보이는 병원복을 걸치고 링겔대를 끌고 뒤뚱뒤뚱 걸어오고 있었다. 원래도 마른 사람이 족히 10kg는 빠져 보였고 살들이 뼈를 겨우 감싸고 있는 모습이었다. 눈과 광대뼈가 도드라져 누가 보아도 아픈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달 전에만 해도 머리를 가득 감싸고 있던 머리카락이 말끔하게 밀려있다. 그 모습을 보니 아빠가 많이 아프다는 것을 실감했다.
 
아빠의 모습이 충격적이었지만 동정어린 말을 꺼내고 싶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자식에게 동정심을 받는 것은 아빠의 자존심을 무너트리는 일 같았다. 그래서 태연스럽게 말을 꺼냈다.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네!”
 
그 말에 아빠는 미소를 보였다. 의자에 앉으며 나에게 안부를 물었다.
 
“학교생활은 어때? 엄마랑 오빠는 잘 있고?”
“응.”
 
무언가 이야기를 자연스레 주고받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고통스러웠을 치료과정이 눈으로 그려졌고 멋지고 잘생겼던 모습이 망가진 걸 보면서 억장이 무너졌다. 엄마에게 들어왔던 아빠의 성장과정이 떠올랐다. 최선을 다해서 살아온 사람이 얻어낸 것이 암이라는 지독한 병이라는 것이 나를 슬프게 했다. 내가 말을 잘 잇지 못하니 침묵이 오갔다. 그 사이 나는 아빠의 눈에도 눈물이 가득 메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더 강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울어버리면 아빠도 곧 눈물이 흘러버릴 것 같았다. 우린 최선을 다해서 서로를 배려하고 있었다.
 
몇 마디 주고받지 않았지만 시간이 금방 흘렀다.
집에 갈 준비를 하며 말했다.

“나 갈게. 다음 주에도 또 올게.”


말을 건네며 아빠를 꼭 안아주었다. 너무 꽉 안아버린 탓에 아빠의 오른쪽 가슴에 설치된 보조 장치가 가슴에 세게 눌렸다. 아빠는 “아야, 아야”라는 말을 하면서 웃어보였다.
 
잔주름이 가득 차도록 웃어 보이는 아빠모습을 뒤로하고 뒤를 돌았다. 참았던 눈물이 봇물 터지듯 흘러내렸다. 뒤를 돌아 다시 한 번 손을 흔들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빨리 자리를 피하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직감적으로 아빠도 울고 있다고 느껴졌다. 어쩌면 다음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게 아닐까.

집으로 가는 길, 나는 기적을 바라며 마음으로 외쳤다.

"아빠가 죽지 않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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