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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 Nov 15. 2019

반쪽짜리 인생

나만의 가족사진

늦은 새벽 거실에서 소리를 지르며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잠들었던 방의 문이 살짝 열려 있어서 거실 빛이 방으로 새어 들어왔다. 그 사이로 쨍그랑! 물건이 깨지는 소리도 들렸다. 나는 고작 초등학교 1학년이었지만 엄마나 아빠가 곧 집을 나갈 것 같다는 예상을 할 수 있었다. 무서워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쓰고 누워있었다. 그렇게 공포 속에서 잠들었다. 다음날 거실로 나가보니 아빠가 없었다. 이후로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했다.

    

부모님이 이혼한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가난하고 못생기고 성격도 소심하고 공부도 못하는데 이혼마저 밝히게 된다면 따돌림을 당할 것 같았다.    

  

3학년이 되던 날 2학년 담임선생님은 학생들을 한 명씩 안아주었다. 내 차례가 되자 선생님은 나를 안아주며 살짝 물었다.     


"아빠는 돌아오셨니?"     


숨기고 싶었던 일을 알고 있었다는 충격과 1년간 친절로 대해주었던 담임선생님의 태도가 나를 가엾게 생각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나를 나로 온전히 바라보는 사람이 없어진 기분이었다.    

 

학부모 참관 수업이나 졸업식 같은 날은 더더욱 싫었다. 엄마는 애써 시간을 내서 참여했지만 나는 엄마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엄마를 부끄러워해서가 아니라 엄마와 아빠가 함께 오지 못하는 순간이 부끄러웠다. 많은 친구들은 엄마와 아빠에게 축하와 응원을 받는데 나는 한쪽에만 받으니까 반쪽짜리 인생이라 생각했다.    

 

학교에 유난히 비싼 물품을 선물하고 돈을 지불하며 친구를 사귀는 A가 있었다. 나와 함께 다니던 친구들은 A를 보며 이런 이야기를 자주 꺼냈다.  

   

"A는 엄마 아빠가 이혼했대. 그래서 제대로 된 가정교육도 못 받았나 봐. 그러니까 친구들을 돈으로 사귀려고 하지."     


나는 그 말을 듣고 감히 웃어 보일 수가 없었다. 그저 부모님이 이혼한 사실을 더욱 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이런 세상에 손가락질을 받을까 봐 너무 두려웠다. 이혼이 누구의 잘못이라고 탓하기 힘들지만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부모님의 이혼을 맞이했기 때문에 더욱 힘들었다.    

 

중학생쯤 되었을 때 학교 선생님은 자주 이런 말을 했다.   

  

"자식은 부모의 삶과 비슷한 삶을 산단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무서웠다. 부모님의 이혼한 삶이 내 삶 속에 물들어 버릴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럴수록 행복한 가정에 대해 상상하고 결혼에 대한 환상을 품어왔던 것 같다.     


한 번은 글쓰기 대회에 엄마와 아빠의 다툼으로 인해 괴로웠고, 아빠가 훌쩍 집을 떠났다는 글을 썼다가 수상을 했던 적이 있다. 그 일을 축하하기 위해 선생님은 내 글을 학급일지에 올렸고 나는 적지 않게 부끄러움을 가졌다. 최선을 다해서 숨겨왔던 일들이 세상에 알려졌던 첫 번째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당연스럽게 가정에 대해 물어오는 경우가 많다.     


“인희씨 부모님은 어땠어요?”     

“글쎄요...”     


그저 방어적이게 두 분의 이야기를 했다. 이혼한 사실을 굳이 밝혀도 되지 않을 정도로만 부모님의 성격과 에피소드를 전달했다.      


가끔 지인들은 내게 가정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대부분 아버지가 보수적이고 때로는 폭력적이라는 이야기나 취업을 위해 부모님이 자신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이야기였다. 그들이 안쓰럽게 느껴져 최선을 다해 위로했지만 나는 속으로 그들을 부러워했다. 한 부모 가정의 자녀는 그저 부모님이 두 분이 완전체로 존재하고 살아가는 것 자체만으로 그들이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나는 친구들의 집에 걸려있는 가족사진이 언제나 부러웠다. 죽을 때까지 가져볼 수 없는 사진이었기 때문이다.     


2년 전 베트남에 여행을 갔을 때 가족사진을 가지고 싶다는 꿈을 이루어냈다. 나만의 가족사진을 만들었다. 엄마 아빠와 함께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었던 나는 그들의 사진을 각각 보여주며 가족사진을 그려달라고 했다. 나란히 셋이서 웃고 있는 그림을 받아 들었을 때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이내 바보 같은 짓을 했다는 생각에 그림을 돌돌 말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두었다.     



나와 가장 친했던 친구들은 불행하게도 한 번도 우리 집에 와본 적 없다. 부모님의 이혼 사실도 아는 사람이 없다. 그만큼 철저히 숨겨왔고 티를 내지 않았다. 아주 가까웠던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을 공개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뿐이다. 이제는 이러한 거짓말을 그만둘까 한다. 이혼은 나의 잘못도 부모님의 잘못도 아니었다.

    

나를 가엾게 쳐다보는 그 시선이 사라지고 이혼한 가정 아래서 자란 아이를 창피하게 만들지 않는 사회가 온다면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반쪽짜리 인생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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