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엄마와 연락이 뜸했다. 엄마는 그게 조금 섭섭했던 모양이다. 왜 이렇게 연락이 없냐며 대구에 좀 내려오라는 말을 했다. 평소 같으면 바쁘니 시간 나면 내려오라는 사람이 생전 처음으로 보고 싶다고 했다.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동시에 걱정이 되었다. 내가 내 삶을 살아가느라 엄마에게 안부 전화 한 번도, 방문도 못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쓰였다.
대구에 가보니 엄마는 너무 연약하고 푸석푸석하며 생기가 없었다.
“웬일이래. 먼저 오라고 하고?”
그러자 엄마는 코를 찡긋하며 말을 했다.
“엄마가 죽기 전에 봐야 할 것 같으니까 오라고 했지! 딸 얼굴도 못 보고 죽으면 안 되니까.”
한동안 많이 아팠다고 한다. 당뇨 합병증으로 한쪽 청력을 완전히 잃었다고 한다.
“몸이 완전히 고장이 났어.”
일주일 내내 대학병원을 오가느라 고생을 했던 모양이다. 나는 특별히 해줄 것이 없어 엄마를 꼭 안아주었다. 내가 안아주자 미소를 지었다.
“딸! 잘 지냈나? 어디 다친 데는 없고?”
그렇게 무심한 듯 물어보다가 갑자기 몸을 푸르르 떨며 엉엉 소리 내며 눈물을 터트렸다.
“엄마 좀 봐. 이제는 맘대로 할 수가 없어. 이제는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렇게 몇 분 정도 내 품에서 눈물을 쏟고는 민망한 듯 웃어 보였다.
이내 번쩍 일어서더니 주방에서 요란스럽게 요리를 시작했다. 나는 엄마에게 소리를 쳤다.
“엄마, 아프다면서 무슨 밥을 해? 배불러!”
“너 주려고 감자도 사놓고 굴도 사놓고 김치도 남겨놨어. 힘이 벌떡벌떡 난다.”
나는 그렇게 해줄 수 있는 거라고는 맛있게 밥을 먹어주는 일 밖에 없었다.
“내가 대구에 오면 어떤 게 하고 싶었어?”
엄마는 얼굴을 만져 보였다.
“여기저기 난 상처들 가릴 파운데이션이랑 집에서 쓸 로션이 좀 필요해. 백화점 갈까?”
그렇게 팔짱을 끼고 백화점을 갔다. 엄마는 나와 나갈 때면 유난히 얼굴에 이것저것 찍어 바르고 반창고를 붙여댔다.
“사람들은 엄마가 아파 보이니까 닿으려고 하지도 않아. 상처들을 가려야 해.”
나는 그대로가 더 아름답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팔짱을 꼭 낀 채로 백화점을 다녀올 수 있었다.
그날 밤 엄마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혹여나 엄마가 죽거든 장례절차는 따르지 말고 바로 화장을 해. 죽은 사람에게 많은 돈 붓지 말고 너랑 오빠는 다시 정신을 다잡고 열심히 살아가.”
“네-네.”
나는 그저 상상하기도 싫어서 대충 말을 던지며 상황을 피했다.
사람은 언젠가 떠나간다. 하지만 나는 엄마를 떠나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다. 부디 오래도록 나와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언제나 내가 50살 정도에 생을 마감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빠가 떠나갔던 나이도, 엄마가 중증환자가 된 것도 딱 그 시점이기 때문이다. 내가 50이 되는 날 엄마와 함께 한다면 그보다 더 특별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너무 큰 꿈을 꾸는 게 아닌가 싶다.